사전(辭典)도 아름답다

채인선의 <아름다운 가치 사전>

등록 2007.11.08 12:18수정 2007.11.08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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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단어 외울 때 가장 좋은 방법은 '사전(辭典)'한 장을 다 외우고 나면 찢어서 먹는 것"이라던 중학교 선생님 말씀이 기억난다. 사전(辭典은 그 만큼 익숙하지만 지겨운 것이다. 한 단어를 정의할 때 반드시 동반되는 설명은 '사전적 의미'다. 이는 사전에서 설명하는 의미를 그릴 탐탁하지 않게 생각할 때 자주 쓰는 말이다. 사전에서 설명하는 의미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는 반증이다. 사전적인 의미보다 더 깊고, 넓은 의미를 찾아나서는 것이 지적인 사람들이 즐기는 삶의 방편이기도 하다.

a  아름다운 가치 사전

아름다운 가치 사전 ⓒ 한울림어린이

아름다운 가치 사전 ⓒ 한울림어린이

하지만 한 단어의 의미를 깨닫는 아이들에게는 사전적인 의미가 매우 중요하다. 사전적인 의미를 분명히 알고 생각이 깊어지고 배움이 더 해질 때 아이는 그 단어에 대한 풍부한 의미를 알아갈 수 있다. 역시 기초가 중요하다. 기초가 중요하지만 아이들에게 어른들이 사용하는 사전을 주면 아이는 두께와 무게에 질려 다시는 사전을 찾고 싶은 마음이 사라져버릴 것이다.


채인선 씨가 지은 <아름다운 가치 사전>(한울림어린이)은 이런 의미에서 매우 좋은 책이다. 사전을 '아름답다'로 표현한 자체가 우선 흥미를 끈다. 물론 책에서 담고 있는 단어들이 '아름다운' 단어들이기에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지만 일반 사전이 주는 중압감에 비하면 얼마나 적절한 표현인지 모른다.


<아름다운 가치 사전>은 아이들에게 아름답고 가치 있는 단어 24개를 말한다. 아이들에게 믿음 있는 사람이 되라고 가르칠 때, 대뜸 하는 말이 "엄마! 아빠! '믿음' 무슨 말이야?" 묻는다면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사전을 찾을 것인가? 선뜻 설명할 수 없다. 채인선은 믿음을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


"믿음이란, 자전거를 타러 가며 언니가 혼자만 앞서 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


아이들 삶에서 믿음을 말하고 있다. 이는 설명이 아니다. 언니와 자전거를 타는데 언니가 혼자만 가지 않고 자기와 함께 갈 것이라는 생각을 믿음이라고 생각한다. 믿음은 종교와 깊은 연관을 가지고 있다. 관념이라 개념을 설명하려면 복잡하다. 언니가 자기를 버려두고 가지 않고 함께 가려는 생각을 믿음이라 말하면 아이들은 나중에 동무에게도 믿음을 연관시킬 수 있고, 나중에 종교를 가진다면 자신이 믿는 신과 연결시킬 수 있다.


'감사, 겸손, 공평, 관용, 마음 나누기, 믿음, 배려, 보람, 사랑, 성실, 신중, 약속, 신중, 예의, 용기, 유머, 이해심, 인내, 자신감, 정직, 존중, 책임, 친절, 행복'이란 단어가 <아름다운 가치 사전>에 담겨졌다. 어느 단어 하나 아이들이 물을 때에 쉽게 답할 수 없다. 관념과 추성적인 단어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이 단어들을 알고, 삶을 살아간다면 세상이 더욱 밝아지고, 아름다운 모습이 될 것이다. '아름다운 가치 사전'이라 이름 지은 뜻을 알 것 같다.


"공평이란 강아지와 고양이를 똑같이 사랑해주는 것, 강아지 밥을 줄 때 고양이 밥도 같이 주는 것"(본문 20쪽)


애완동물을 키우는 아이들이 많다. 강아지를 좋아하는 아이, 고양이를 좋아하는 아이가 서로 자기가 좋아하는 동물만을 사랑하고 다른 동물을 미워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공평하지 않는 것이다. 공평이 무엇인지 말할 때 똑같이 사랑해주는 것이라 말하면 아이들은 쉽게 깨닫게 되리라. 하지만 공평은 무조건 똑같이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공평이란 필요한 사람에게 더 많이 주는 것."(21쪽)


매우 중요한 뜻이다. '똑같이'라는 말은 두 사람일 때 둘로 나누어 가지는 것이 아니라 약하고, 부족한, 힘없는 이가 조금은 더 가질 수 있는 것이 공평이라는 말이다. 자본주의 사회에 완전히 물들어 살아가는 어른들에게도 공평을 필요한 사람에게 더 많이 주는 것이라는 뜻이 매우 중요한 설명이다.


단어를 설명만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때는 '만화'로, 어떤 때는 '이야기'를 통하여 단어를 어떤 상황에서 사용할 수 있는지 말해주고 있다. 나열식, 주입식 사전이 아니라 아이들이 책을 읽어가면서 만화와 이야기를 통하여 자연스럽게 단어 뜻을 알게 하는 배려가 보인다.


"관용이란 공통점도 있지만 다른 점도 있다는 것을 즐겁게 받아들이는 것."(25쪽)


다원주의 사회를 살아가지만 왠지 획일성이 지배하는 사회다. 아이들 신발을 보면 딸 아이 신발은 다 분홍색이다. 어디 사줄만한 신발 색깔이 없다. 관용이 없다는 것이 여자 아이는 모두 분홍색 신발을 강제적으로 신어라는 말밖에 다른 뜻이 없다. 누구를 좋아한다고 할 때 자기가 좋아하는 연예인, 운동선수, 정치인이 아니면 무조건 욕하거나, 비난한다. 관용이 상실되어 버렸다. 관용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만 당신도 좋아해야 한다는 획일성을 비판하면서 다양한 사회를 위해서 매우 필요한 삶의 방식임을 아이들은 알 것이다. 치마를 입을 수 있고, 바지를 입을 수 있다. 관용이란 말속에는 다양성을 담고 있다는 것을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알게 한다.


어른들이 24가지 단어를 읽어가면서 자기 자신도 얼마나 획일적인지 알 수 있다. 상상력과 풍부한 감성을 상실해버린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관용을 말할 수 있지만 공통점과 다른 점이 있다는 사실까지도 망각하면서 살아가는 모습을 발견할 것이다. 정치 계절이다. 다른 정파를 인정하지 않는다. 관용이 사라져버린 어른들의 삶을 발견할 것이다.


우리 시대는 상상력이 사라졌다. 아이들이 셋이지만 나 역시 획일적이다. 강압이 몸에 배여 있다. 상상력과 다양성, 배려와 관용이 없는 나 자신이다. 내가 읽어야 할 책이다. 설명하는 사전이 아니라, 아이들이 살아가는 자리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통하여 그 단어가 무엇을 뜻하는지 말한다. 두꺼운, 무거운 사전에 주눅들 것이 아니라 아주 평범함 속에서 단어 하나하나를 알아가는 것은 아이들과 부모가 함께 읽어가면서 이야기와 만화, 자신들의 삶에서 관용과 공평, 사랑을 삶에 적용해보는 재미가 크다.

덧붙이는 글 | <아름다운 가치 사전> 채인선 글 ㅣ김은정 그림 ㅣ 한울림어린이 ㅣ 12,000원

2007.11.08 12:18ⓒ 2007 OhmyNews
덧붙이는 글 <아름다운 가치 사전> 채인선 글 ㅣ김은정 그림 ㅣ 한울림어린이 ㅣ 12,000원

아름다운 가치 사전

채인선 글, 김은정 그림,
한울림어린이(한울림), 2005


#가치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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