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쁘다와 못생겼다, 맛있다와 못 먹겠다

[사진] 서로 상반된 이미지를 가진 사과와 모과

등록 2007.11.08 20:46수정 2007.11.10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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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일 중의 과일
과일 중의 과일이승철



“사과가 아직도 그대로 열려 있네.”
“저 탐스럽고 예쁜 모습 좀 봐, 한 개 뚝 따서 아작아작 씹어 먹었으면 좋겠다.”


엊그제 전국 100대 명산 중의 하나를 찾아 충북 괴산의 산골 마을에 이르렀을 때였다. 마을 바깥쪽 밭에 빨간 사과가 주렁주렁 열린 사과밭이 나타났는데 그 모습이 정말 싱싱하고 탐스러웠다.

가을이 깊어지면서 산과 공원, 과수원이나 담장 뜰 안의 풍경도 많이 변했다. 여름내 무성하던 나뭇잎들이 단풍이 들고, 어떤 나무들은 잎이 모두 져버려 앙상한 가지와 줄기만 남아 초라한 모습이다.

그래도 요즘 보기 좋은 과일나무는 감나무다. 잎이 모두 지고 노란 열매만 주렁주렁 열려있는 모습이 꽃보다도 더 예쁘기 때문이다. 감나무와 함께 아직도 열매가 열려있는 나무는 늦은 사과와 모과가 있다. 어른 주먹만큼씩이나 커다란 사과가 탐스럽게 열린 사과나무도 감나무 못지않게 아름다운 모습이다.

산자락 밑에 자리 잡은 마을이어서인지 이 마을에는 사과밭이 많았다. 더구나 대부분의 사과밭들이 아직 수확 전이어서 곱고 싱싱한 사과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모습이 그렇게 풍성해 보일 수가 없었다.


 어떤 것이 맛이 더 좋을 까?
어떤 것이 맛이 더 좋을 까?이승철


 수확을 기다리는 사과밭
수확을 기다리는 사과밭이승철



“나는 과일 중에 사과가 제일 좋더구먼, 모양도 예쁘지만 달콤 시큼한 맛이 다른 어떤 과일과 비교가 되지 않아.”

일행 중 한 사람이 사과를 칭찬한다. 사실 나도 과일 중에서 사과를 제일 좋아한다. 그래서 나는 사과를 과일 중의 과일이라고 부른다.

등산을 마치고 내려오는 길에 일행들은 사과를 조금씩 샀다. 운반이 곤란하여 많이 살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즉석에서 한입씩 베어 문 사과 맛은 모양과 빛깔처럼 정말 맛이 좋았다.

“사과 많이 드세요. 과일 중에서도 사과가 얼마나 좋은지 다들 아시죠?”

사과농장에는 노인부부 둘이 산을 찾은 등산객들에게 즉석에서 딴 사과를 팔고 있었다. 노인부부가 관리하는 농장은 1500평인데 비용을 빼고 나면 1500만 원 정도의 수익이 난다고 했다.

미국에는 ‘매일 사과 한 개씩만 먹으면 의사가 필요 없다’라는 말이 있다. 사과는 비타민과 미네랄이 풍부해서 사람들의 건강을 위해서 아주 필요한 과일이란 뜻이다. 특히 칼슘 함량이 풍부하여 체내의 염분을 체외로 배출시키는 작용을 하고, 섬유질도 풍부하기 때문에 정장에도 효과가 좋은 것으로 알려졌다.

사과는 또 스트레스로 인한 긴장을 완화시켜 주는 진정작용도 한다고 한다. 특히 사과가 함유하고 있는 유기산은 위액의 분비를 촉진하여 소화가 잘 되게 하고 철분의 흡수도 높여 준다고 한다. 그 외에도 구연산과 주석산 등이 풍부하게 포함되어있어 몸 안에 쌓인 피로물질을 제거하고, 여성들의 피부 미용에도 좋다고 한다.

 바닥에 깔아놓은 것은 반사광으로
     사과의 빛깔과 맛을 좋게 하기 위한 것이다
바닥에 깔아놓은 것은 반사광으로 사과의 빛깔과 맛을 좋게 하기 위한 것이다이승철


 참 곱고 먹음직스럽지요
참 곱고 먹음직스럽지요이승철


사과가 함유한 섬유소는 혈중 인슐린을 통제하여 혈당치 변동을 예방하기 때문에 당뇨병 환자에게 좋다. 그밖에 칼륨 등을 많이 함유하고 있어 혈압의 균형을 이루는데 도움이 되고, 풍부한 비타민 C는 흡연자와 만성치은염 보유자에게 매우 좋다고 한다. 맛뿐만 아니라 건강식품으로도 부족함이 없는 과일인 것이다.

처녀 엄마의 눈물만 받아먹고 살다가
유모차에 실려 먼 나라로 입양 가는
아가의 뺨보다 더 차가운 한송이 구름이
하늘에서 내려와 내 손등을 덮어주고 가네요.
그 작은 구름에게선 천년동안 아직도
아가인 그 사람의 냄새가 나네요.
내 자전거 바퀴는 골목의 모퉁이를 만날 때마다
둥글게둥글게 길을 깎아내고 있어요.
그럴 때마다 나 돌아온 고향 마을만큼
큰 사과가 소리 없이 깎이고 있네요.
구멍가게 노망 든 할머니가 평상에 앉아
그렇게 큰 사과를 숟가락으로 파내서
잇몸으로 오물오물 잘도 잡수시네요.

- 김혜순의 시 '잘 익은 사과' 뒷부분

 나뭇잎이 거의 지고 열매만 남은 모습
나뭇잎이 거의 지고 열매만 남은 모습이승철


 사과밭 풍경
사과밭 풍경이승철


“어 저기 좀 봐. 저건 모과 아냐?”
“맞는데, 저건 모과야, 그런데 나무가 왜 몽당연필처럼 생겼지?”

마을을 벗어나 점심을 먹기 위해 도로변의 음식점에 들렀을 때였다. 길 건너편에 있는 집의 마당가에 몇 그루의 키 작은 나무들이 서 있었는데 그 나무에 노란 열매들이 매달려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니 모과나무와 열매였다. 그런데 나무들이 키가 작고 통통한 것이 분재처럼 보였는데 그 작은 나무에 연출이라도 해놓은 것처럼 몇 개씩의 모과가 열려 있었다.

마침 마당에 나와 있던 주인에게 물으니 모과나무는 분재처럼 가지를 잘라냈지만 큰 줄기 옆에 있는 작은 가지에 열매가 열려 있는 것이라고 한다. 모과를 손으로 만져보니 돌덩이처럼 단단한 느낌이다.

나무 밑에는 떨어진 모과열매 몇 개가 나뒹굴고 있었다. 주인에게 주워가도 되겠느냐고 물으니 그렇게 하라고 한다. 손에 들고 조금 전에 과수원에서 사온 사과와 비교하니 영 볼품이 없다. 너무 못생긴 모습이 초라하기까지 하다.

“그거 모과 아냐? 먹지도 못할 걸 뭐 하려고 주워왔어?”

일행 한 사람이 손가락으로 툭 건드리며 ‘뭘 이런 걸’ 하는 표정이다. 하긴 그럴 만도 하다, 생기길 예쁘거나 곱게 잘 생겼나. 그냥 먹을 수가 있길 하나. 그러니 나무 밑에 떨어져 있어도 주인이 거두지 않고 지나가던 행인들도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아니야? 이 모과 이거, 못생겼어도 향기롭고 쓸모 있는 과일이야.”
“쓸모는 무슨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게 모과인데, 그래서 '모과도 과일이냐'라는 말이 있잖아?“


두 사람이 쓸모가 있다느니 없다느니 이야기가 길어지자 음식점 안으로 들어갔던 다른 일행이 나와 끼어들었다.

 꽃보다도 더 상큼하고 아름다운 모습
꽃보다도 더 상큼하고 아름다운 모습이승철


 못생긴 모과의 모습
못생긴 모과의 모습이승철


“이 모과 이거, 사람을 네 번 놀라게 한다는 과일이야.”

첫 번째는 모양이 너무 못생겨서 놀라고, 두 번째는 못생겼지만 향기가 그윽해서 놀라고, 세 번째는 맛이 너무 떫어서 놀라고, 네 번째는 좋은 한약제로 쓰임새가 좋아서 놀란다는 것이었다.

모과는 알칼리성 식품으로 기침과 관절염, 그리고 관절통 완화에 효과가 있으며, 조혈작용을 하기 때문에 빈혈이 있는 사람에게 좋다고 한다. 그리고 기관지염의 예방과 치료에도 도움이 되고 신진대사와 소화촉진, 피로회복에 좋으며 여성들의 피부미용과 당뇨병환자의 혈당조절에도 상당한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다른 과일처럼 생으로 그냥 먹을 수 없는 것이 가장 큰 약점이다. 차로 끓여 먹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는데, 끓일 때도 철제용기는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고 신장과 심장질환, 그리고 고혈압 환자에게는 금기로 되어 있다고 한다.

“맞아! 모과가 못생겼지만 향기가 끝내준다고 했지. 나도 몇 개 얻어다가 차안에 싣고 다녀야지.”

아무짝에도 쓸모없다던 친구에게 당장 쓸모가 생긴 것이었다.

“거봐! 외모만 보고 판단하지 말라고, 이 세상에 쓸모없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 다 쓸데가 있는 법이야. 더구나 사람을 외모만 보고 판단하지 말라고, 못생긴 사람이 속은 더 깊은 법이니까. 하하하.”

과일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사람이야기가 끼어든다. 하긴 요즘이 한창 군웅할거시대가 아니던가. 어찌 사람이야기가 빠질 수 있겠는가. 모든 것은 사람들로부터 비롯되는 걸, 제발 사과처럼 모양도 좋고 맛도 좋은 그런 사람이 등장했으면 좋겠다.

그게 아니라면 교언영색(巧言令色)이라고 했던가. 속은 시커먼 사람이 다른 사람들에게 적당히 꾸민 말과 얼굴빛으로 현혹하는 사람보다야 모과처럼 겉은 못생겼어도 속은 정직하고 향기로운 사람이 좋을 것이다.

 못생겼지만 향기롭고 쓸모 많은 모과
못생겼지만 향기롭고 쓸모 많은 모과이승철


올해는 모과가 빨리 썩었다 채 한 달도 못 갔다. 가장 모과다운 걸, 가장 못생긴 걸 고르고 골라 올해도 제기 접시에 올렸는데 (중략) 순수한 것이라야 빨리 썩는다. 나는 아예 글렀다, 다만 너와 나의 사랑이 그토록 일찍 끝난 것도 그러한 연유에서였을까. 첫 사랑은 늘 깨어지게 되어 있다. 그런 연고다. 순수한 것은 향기롭게 빨리 썩는다. 절정에서는 금방인 저 쪽이 화안하다. 비알 내리막은 속도가 빠르다. 너와의 사랑이 한창이었던 그때 늘 네게서는 온몸으로 삭힌 술내가 났다. 싱싱한 저승내가 났다. 저승내는 시고 달다 그런 연고다.
- 정진규의 <모과 썩다> 중에서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사과 #모과 #과일 #괴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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