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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은평구 구산동 일대는 꽤 교통이 번잡한 곳이다.
많은 사람이 오가는 이 거리에서 유난히 눈에 띄는 두 분이 있다. 이춘성(79) 할아버지와 박순옥(68) 할머니 부부다. 이 지역에 사는 사람이라면 이 부부의 이름은 알지 못해도 '또 나오셨구나' 할 정도로, 매일 거의 같은 시간에 정답게 손을 잡고 골목 여기저기를 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얼른 보아도 할머니의 몸이 편치 않다는 것을 눈치 챌 수 있다. 할머니의 걸음걸이가 어린아이처럼 조작조작 걷는 모습이어서 행동이 자유스럽지 못한 모습이 역력하다.
구산역에서 약 100여m 떨어진 골목길에 조그만 헌책방이 하나 있다. '행복 나눔 중고서점'이라는 간판만큼이나 자그마한 이 책방 안에는 나이 든 할머니 두 분이 열심히 책을 정리하거나 손님들과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이춘성 할아버지와 박순옥 할머니 부부가 이 책방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따라 들어갔다.
구산동 일대에 소문난 이분들의 모습을 보고 궁금증이 나서 만나 뵙기로 한 것이다. 이춘성 할아버지께 명함을 내밀면서 너무 자주 뵙게 되지만 보통 사연이 아닌 것 같아서 궁금증이 발동해 만나 뵙고 싶었다는 말로 인터뷰를 요청했다.
"이 사람이 이렇게 된 것은 2005년 초부터였어. 집에 전화해도 잘 못 받고 다른 곳에서 온 전화는 받으려고도 안 해. 그래서 이상하다고 생각은 했지만 다른 특별한 증상은 없으니 병원에는 가보지 못하고 지내다가 그 해 4월 5일에야 겨우 은평 정신병원을 찾았어. 거기서 치매 초기라는 진단을 하더구만. 그래 더 확실한 진단을 받아 보자고 서울대 병원에 신청했으나 쉽지 않더구만. 두 달이 지나서야 겨우 진단이 내려졌는데 역시 치매라는 거야."
할아버지는 이런 이야기를 하시면서도 아내의 손을 꼭 붙잡고 있었다. 할머니는 무슨 얘기인지 모르겠다는 듯, 멀뚱멀뚱하게 이 사람 저 사람의 얼굴을 바라보기만 했다. 말을 하지 못하신다고 했다.
"그래 방법이 없지 않아. 하는 수 없이 서울대 병원 박사님께 부탁을 드려서 더 이상 진행이나 막을 수 있게 약을 처방 받아서 먹으면서 온갖 좋다는 것은 다 해주고 싶지만 돈도 없고, 딱하기만 해."
"이렇게 다니면 멀쩡해 보이니까 이상하게 생각들을 하는 데 나는 치매라는 사실을 이야기해. 그래야 이상한 사람으로 여기지 않을 것 아냐? 특별한 치료 방법이 없다고 하니까 답답하지 않게 매일 서너 시간씩 산책을 시키는 것밖에 다른 방법이 없어."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매일 운동을 시키기 위해 골목길을 다니는 것이라고 했다. 이춘성 할아버지는 아내를 위해 집에서 모든 일을 스스로 한다고 했다. 식사, 집안 청소는 물론이거니와 아내가 화장실 다니는 일이나 목욕은 물론 밖에 나올 때는 화장도 일일이 해주고 옷도 가장 멋진 것으로 갈아입히곤 한단다.
할어버지 손에 꼭 쥐어졌던 할머니 손에는 단정하게 매니큐어도 발라져 있었다. 옷도 예쁘게 차려입고 쌀쌀해진 날씨 탓에 모자를 썼는데, 모자챙 위에는 앙증맞은 선글라스까지 준비 되어 있었다.
"얼마 전 어느 잡지에서 아내를 요양원에 보낸 남편이 아내를 걱정하는 글을 쓴 것을 읽으면서 나는 생각했지. '나는 돈도 없지만, 호화 요양원에 보낼 만큼 여유가 있으면서 왜 요양원에 보내나 싶어. 자기 손으로 하면 걱정하지 않아도 될 일을…' 사랑하는 사람을 그렇게 걱정하면서 왜 남에게 맡겨 자기가 직접 돌보아 주어야지."
할아버지의 역정내는 모습에서 할머니를 진정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정성을 엿볼 수 있었다.
이춘성 할아버지는 뒤늦게 95년부터 목회활동을 시작했다고 한다. 본래 평안남도 출생인 할아버지는 황해도 재령에서 살다가 1·4 후퇴 때에 혈혈단신 남하했다고 한다. 군대에 다녀와서 혼자 몸으로 살다가 박순옥 할머니를 알게 되어서 결혼하려 했지만, 11살의 나이 차에다 돈도 없고 부모도 없어 고아나 다름없는 것을 안 신부 측 어머니의 반대로 결혼은 깨어지고 말았다.
이렇게 헤어진 후 각자 결혼을 하고 30여 년이 지났다. 그런데 지난 80년 두 사람은 우연히 서로 연락이 되었다. 아내를 잃은 이춘성 할아버지와 도박으로 살림을 박살 낸 남편과 헤어져 혼자 살고 있던 박순옥 할머니는 자연스럽게 재혼을 하게 되었단다. 못 이룬 첫사랑의 재결합은 행복한 생활로 이어졌는데 부인이 치매라는 몹쓸 병에 걸려 이 두 분의 행복은 또다시 아픔을 앓고 있는 것이다.
이춘성 할아버지는 이제 교회보다도 이렇게 첫사랑이자 사랑하는 아내를 하루 종일 돌보고 있다. 할아버지는 할머니의 손을 잡고 더 이상 나빠지지는 말았으면 하는 소원으로 오늘도 구산동 골목길을 나란히 걷고 있다.
덧붙이는 글 | 녹원환경뉴스, 디지털특파원, 개인불로그에도 올렸습니다.
2007.11.15 09:51 | ⓒ 2007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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