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지난 목요일 수능 시험 당일 아침 시험장 밖 풍경은 여느 때와 다름이 없다.
봉사점수 따러 오긴 했지만 고생스럽게 새벽부터 나온 후배들이 진을 치고 있다. 선배들을 위해 따뜻한 차와 초콜릿 같은 먹을거리를 나눠주며 수험장의 밖의 분위기를 잡고 있다.
7시를 넘어 입실시간인 8시 10분이 가까워지자 후배들의 응원가와 격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애들을 태운 차들이 하나 둘씩 고사장 앞에 들어선다. 엄마와 함께 온 애들이 많고, 아빠나 부부가 함께 온 경우는 많지 않다.
나같이 수험생을 격려하러 나온 사람들은 잠시 인사를 나누고 돌아서지만, 부모들의 모습은 다르다. 특히 엄마들은 학생이 고사장에 들어간 후에도 아이에게서 눈길을 떼지 못한다.
아이의 모습이 사라진 후에도 바로 고사장을 떠나는 엄마는 없다. 한참을 고사장 주변을 서성거리며 마음을 졸인다. 고사장은 제대로 찾아 들어갔는지, 제대로 된 책상에 앉았을지, 교실이 춥지는 않을지.
입실시간이 지날 때까지 한참을 그러다가 대부분 교회나 성당이나 절로 발길을 돌렸을 거다.
작년 수능 시험날 제법 큰 중형 교회에서 수험생의 시험 시간과 똑같이 예배 시간을 정해 놓고 같이 기도하며 찬송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거기도 대부분 엄마들이었다. 물론 아빠들은 대부분 돈벌러 갔겠지만. 온 가족이 함께 온 훈훈한 모습, 부부가 함께 와서 정겨운 모습도 있었다.
목사가 명단에 적힌 수험생의 이름을 하나씩 불러가는 사이, 부모들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헌금을 바치고 그런 부모들의 명단을 목사가 다시 부른다.
아마도 주일의 어떤 예배보다 이날 부모들의 심정은 절실할지도 모른다. 바로 이 시각 내가 하는 기도가 하느님을 통해 자식에게 간절히 전해지길 바라기에.
공부 잘하는 애들보단 공부 못하는 애들이 훨씬 많다. 모의고사 성적으로 결과는 어느 정도 예상되어 있고, 평소 실력만 발휘해선 도저히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없는 애들이 대부분이다. 그런 자식을 둔 부모들이 거기 대부분 앉아 있다.
그들은 지난 1년의 시간들이 그 이전 자식과 함께 했던 어떤 세월보다 훨씬 갈등과 안스러움이 많았다. 도저히 어찌할지를 몰라 습관적으로 자식을 질책한 시간을 떠올리며 기도하는 그 시간만큼은 부모들의 심정은 자책으로 가득했을 거다.
좀 더 잘해주지 못한 안타까움.
언제나 부모의 맘은 그렇다. 좀 더 잘해주지 못한… 나의 어떤 것을 희생하더라도 자식이 항상 먼저이다.
수능 보는 날 감사하며 자식의 안위를 기원하며 헌금이나 시주를 하고픈 부모들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뭔들 못하겠는가. 그날 기적이라도 일어난다면.
그러나 교회나 성당이나 절 같은 곳에서 그날 제발 돈은 받지 말았으면 좋겠다.
최소한 그동안의 부모들의 물질적 정신적인 노고를 같이 아파하고자 하는 맘이 있다면 그 돈 받지 말았으면 좋겠다.
정신적인 노고는 기도와 찬송과 불공으로 어루만져 줘서 고맙지만 종교기관이 자의적으로 성경을 해석해서 회사처럼 그러지 말았으면 좋겠다.
물질적인 부담에서 그날 하루만큼은 벗어나게 좀 도와주면 안되나.
그동안 부모들 충분히 물질적, 정신적, 육체적으로 봉사하며 섬기지 않았는가?
내가 갔던 그 교회의 담임목사는 십일조는 절대적인 의무 사항으로 설교 때마다 강조하는데 한 달에 한번 불우 이웃에게 내는 성금함에는 마음이 동하는 분만 내라고 한다.
목사님! 십일조와 불우 이웃 성금은 달리 쓰이는 다른 돈이란 말입니까?
영화 '공공의 적 1'에서 엄마의 자식에 대한 근원적인 마음을 볼 수 있는 인상적인 대사가 나온다. 강철중 형사(설경구)가 유산을 노리고 부모를 살해한 증권사 펀드매니저 조규환 (이성재)에게 한 대사. 그 장면을 다시 잠깐 보자.
철중, 비닐봉투 안에서 손톱 쪼가리 하나를 끄집어낸다.
철중이 꺼낸 손톱을 보곤 낯빛이 굳는 규환.
조규환: 뭐, 뭐야?
철중: (씩 쪼개며) 매직이다, 이 씹새야.
아줌마 이름이 뭐래드라. 김영순? 자식새끼가 실수로 떨어뜨린 이걸,
그 아줌마가 죽기 전에 먹은 거거든. 왜 그랬다고 생각하냐?
조규환: .....
철중: 부모가 그런 거거든. 자식새끼가 자기를 제낀 씹새든, 자기를 찌른 개새든, 숨겨주고 싶은 거거든. 어떻게 생각하냐?
궁지에 몰린 규환, 본연의 살벌한 표정으로 철중을 노려본다.
조규환이 부모를 살해하면서 깨져서 떨어진 손톱을 엄마가 증거를 감추기 위해 삼킨 것이다. 정말 부모란 그런 거다. 특히 아빠보다 자식을 열 달이나 먼저 뱃속에서 길러온 엄마는 더 그렇다.
자신을 평생 품어준 자식이 자기를 죽이더라도 그 자식의 죄는 면하게 해주고 싶은 그런 심정. 도저히 자식이 부모가 되어보기 전엔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마음이다.
영화 속의 조규환과 엄마는 좀 극단적인 경우이지만 우리 대부분 비슷한 경험을 이미 했거나 앞으로도 반복할지도 모른다.
학창시절에 소설가 최인호씨의 '가족'이란 제목의 가족 연재 스토리를 읽으면서 참 흐뭇했던 기억이 있다. 다혜란 딸과 도단이란 아들이 성장하는 얘기가 아직도 떠오를 만큼.
어머니 얘기는 없었던 것 같은데…
그가 쓴 '어머니는 죽지 않는다'란 돌아가신 자신의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담은 책을 최근 보고선 참 담담한 느낌이다.
부모를 더 생각할 만큼 나이는 들었는데 슬퍼지지가 않는다. 나의 어머니를 생각하고 슬퍼지지 않는 내가 불쌍하기도 하구. 전화 한번 드려서 따뜻한 말 한마디 하지 못하는 내가 언제나 인간이 되려나 싶다. 이미 충분히 나이가 들었는데….
추석 때 개봉한 하명중 감독이 아들과 함께 만든 영화 '어머니는 죽지 않는다'가 박스 오피스 맨 밑 칸에 있는 걸 보구 씁쓸했었다. 새끼들끼리의 사랑 영화 '사랑'이나 '행복'이 박스 오피스 맨 윗칸에 있을 동안에….
2007.11.19 11:25 | ⓒ 2007 OhmyNews |
|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