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청소년 행동의날입시문제와 두발규제, 비정규직 문제를 비판하고 있는 학생들.
성하훈
우리사회에서 청소년운동이 시작된 것은 198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군부독재정권에 저항하던 학생 및 민중운동이 활발하던 시절, 정치의식이 있던 고등학생들이 조직적 움직임을 보였던 것이 당시 고등학생 운동(현 청소년 운동)의 시발점이었다. 이는 87년을 뜨겁게 달군 6월 항쟁의 영향이기도 했다.
이후 사회민주화 요구가 확산되면서 89년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 결성됐고, 선생님들에 대한 대량해고가 발생하는 과정에서 학생들의 움직임 또한 활발해진다. 90년대 초 교사와 학생들에 대한 세찬 탄압 속에 주춤거리기도 했지만, 이를 자양분으로 삼아 성장한 것이 바로 지금의 청소년 운동이다.
그간 청소년운동이 성장한 것은 20년의 세월동안 조금의 변화도 보이지 않는 교육현실에 기인한다. 입시 중압감에 목숨을 끊는 자살학생 문제와 사학 비리, 학생 권리 제한 등은 변화의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하지만 그에 비해 학생들의 요구는 조직적으로 다양한 방법을 통해 나타나고 있다. 부당한 처우나 비민주적 비교육적 처사에 대해서는 당당히 목소리를 높일 만큼 그들의 운동역량은 성장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청소년 운동이 2000년 이후 안정된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던 데는 청소년 활동가들의 헌신이 존재한다. 2~3년간의 짧은 활동을 마치고 대학이나 사회로 진출하는 청소년들의 여건상, 이들의 권리를 찾아주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청소년운동이 현재의 모습을 갖기는 어려웠기 때문이다.
삶의 가치를 느끼게 해 준 학생회 활동대표적 청소년 운동단체인 '21세기 청소년 공동체 희망'의 경기지부를 책임지고 있는 연미림씨는 청소년 운동에 14년째 정성을 쏟고 있는 청소년 전문가다. 92년 고등학교에 입학한 연씨가 청소년 운동에 대해 자각한 때는 고등학교 2학년 때.
고등학교 시절 학생회 간부였던 연씨는 학생 권익 신장 활동을 통해 얻는 가치가 너무 소중했고, 그 경험을 많은 학생들에게 주고 싶은 마음에 청소년 운동가의 길로 들어섰다. 단체도 없고 황무지 같은 현실에서, 청소년들에게 도움을 주자는 사명감이 작용했던 것이다.
"고등학교 때 활동이 뭐랄까 너무 유익했어요. 삶의 가치를 발견했다고나 할까? 학생으로서 권익을 찾아나가는 것이 재밌었고… 그래서, 내 경험을 통해 청소년들에게 새로운 생각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자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지요."30대를 훌쩍 넘긴 나이지만 연미림씨가 늘 가까이 하고 있는 사람들은 10대 중 고등학생들이다. 14년째 활동하면서 10대들과의 삶이 익숙해진 그녀에게 청소년 문제는 끊임없이 헤쳐 나가야할 숲과도 같다. 올해 초 지부를 확장하면서 경기지부를 자원한 것도 서울에 비해 환경이 열악한 지역 학생들을 도와주고자 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그는 청소년 운동에 대한 희망을 이렇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