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 반노가 아니라 극노다

진정한 차별화는 노무현과 참여정부 때리기로 안된다

등록 2007.11.20 10:51수정 2007.11.20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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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에 대한 반사이득인가?


많은 여론 조사기관에서 대선 관련 표적집단 심층면접(FGI)을 실시하였다. 결론은 대동소이 하다고 한다. 반노무현 정서가 범여권 후보들의 지지율 상승의 발목을 잡고 있고, 경제성장에 대한 열망이 매우 강력하게 나온다는 것이다.

 

이는 민초들의 일상 대화에서도 무수히 확인되기에 한국 정치판에서는 거의 상식으로 통한다. 이런 인식에 기초하여 정동영, 문국현, 이인제, 권영길, 손학규, 천정배 등은 노무현과 차별화하려고 별 짓을 다했다. 경제성장에 대한 열망에 화답하느라고 이명박은 ‘747과 국민성공시대’를, 정동영은 ‘차별 없는 성장과 가족행복시대’를, 문국현은 ‘진짜 경제와 8%성장론’을 들고 나왔다.

 

결론만 먼저 얘기하면, 나는 앞에서 거명된 모든 정치인들이 공히 반노무현 정서의 실체를 잘못 읽었고, 경제성장에 대한 열망을 잘못 받아 안았다고 생각한다. 반노무현 정서는 노대통령의 노선과 통치 행태와 말에 대한 것이 아니라 노무현으로 상징되는 민주개혁진보가 1987년 6월 항쟁과 노동자대투쟁, 그리고 1997년과 2002년을 거치면서 만들어낸 빛나는 성공신화의 그늘에 대한 반감이다.

 

물론 민초들의 푸념에서는 노 대통령의 자극적인 말과 독선적 정치행태와 부동산, 교육, 비정규직, 양극화 문제 등에 대한 성토가 봇물처럼 터져 나온다. 그러나 ‘그 놈의 말과 정치행태’와 상관없고, 주요 정책 실패(?)와도 별 상관 없는 범여권 후보들에 대한 질긴 외면은 어찌된 일인가?

 

게다가 이명박, 이회창을 지지하는 사람들 중에서 두 이씨가, 노 대통령이 실패했다고 성토 당하는 경제·사회적 현안을 잘 해결 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을 찾기는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이씨 중 한 명의 승리를 의심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바로 그래서 반사이익이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민주개혁진보의 유력 주자들은 이를 2002년(노무현과 참여정부)에 대한 반사이익이라고 생각하고, 더욱 매몰차게 노무현과 참여정부를 때리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문국현은 참여정부의 5대 실정에 대한 공개 사과 없이는 단일화 논의를 할 수 없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고, 권영길은 한 술 더 떠서 11월 11일 서울 도심에서 경찰과 한판의 큰 육박전을 벌였고, 자신이 범여권으로 분류되는 것 자체를 거부하고 있다.

 

칼로 일어난 자, 칼로 망한다


‘칼로 일어난 자는 칼로 망한다’고 한다. 정확히 말하면 칼로 성공신화를 창조한 세력이 붓을 들어야 할 상황에서도 계속 칼을 휘두르면 망한다는 것이다. 남한과 북한의 역사에는 이 교훈의 기념비가 정말 많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반공건국과 불공정과 불공평을 지렛대로 삼은 국가 주도의 산업화로 ‘한강의 기적’이라는 대역사를 창조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짙어지는 성공신화의 그늘을 직시하지 못하여 6월 항쟁, 노동자대투쟁, 외환위기와 국민의 정부의 탄생을 계기로 망해버린 구보수 세력의 전철이다.

 

지금 ‘자랑스런 민주화 신화’를 창조한 한국 민주개혁진보의 위기도 본질적으로 구보수 세력의 위기와 다를 바 없다. 둘 다 세계가 부러워할 만한 성공신화를 창조했지만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면서, 자신이 만든 짙은 그늘을 해결 할 의사도 능력도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는 질문 양식을 달리하여 심층면접을 해 보면 반노무현, 반민주개혁진보 정서는 기본적으로 1987년 이후 20년 동안 한국 사회를 주도적으로 끌어오면서 수많은 성공신화를 창조한 세력의 가치, 정책, 행태, 문화의 그늘에 대한 반감으로 나올 것이라고 확신한다.

 

민주개혁진보의 그늘


도대체 이 그늘이 무엇인가? 그것은 민주개혁진보가 이뤄낸 성과와 중시하는 가치, 정책, 행태, 문화를 뒤집어 보면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민주개혁진보는 대중운동에 기반하여 아래로부터 민주화를 성공시켰다. 민주화가 만들어낸  공간을 ‘단결하면 힘 생기고, 투쟁하면 쟁취한다’는 이념 아닌 이념으로 무장한 민중운동이 노도처럼 진출하였다. 아래로부터의 민주화는 조직된 이익집단들이 민주화의 과실을 과점 하게 되어있다. 또한 한 때 독재의 하수인이었던 죄로 기존의 사회적 권위와 공권력과 질서가 지나치게 훼손, 폄하되게 되어있다.

 

한편 한국의 민주화는 독재세력과 타협에 의한 불철저한 민주화였기에 반공건국과 불공정과 불공평을 지렛대로 산업화를 주도한 세력의 특권과 특혜를 제대로 합리화 하지 못하였다. 더욱이 한국의 민주화 운동과 민중운동은 국가의 중장기적 발전 전략(사회주의와 사민주의를 뛰어넘는 국가개조의 비전과 전략)을 가진 ‘좋은 정당’에 의해 지도된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의 야당이나 반공근대화(?) 세력이 민주화 운동과 민중운동의 폭발력을 합리적으로 조정하고 제어한 것도 아니었다. 이 귀결은 힘있는 진보와 보수 이익집단들과 공공부문(정치, 관료, 공단 등)에 의한 가치생산사슬의 왜곡으로 나타난다. 게임규칙 자체가 기득권자 위주로 짜여지기에 기득권으로 올라가는 사다리 아래서는 경쟁이 치열하지만 일단 사다리를 올라가고 나면 귀족계급이 된 것처럼 치열한 자기 혁신 노력 없이도 편안한 나날을 보낼 수 있다.

 

한국의 공무원 시험 열풍, 유학열풍, 10대 중 후반에는 과열되고 20대 중 후반 이후에는 과냉되는 이상 교육열은 이런 구조의 소산이다. 비정규직 문제가 심각한 것도 정규직과 공공부문의 고용임금체계가 성과, 직무, 시장 수요에 전혀 연동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부동산 문제가 심각한 것은 이른바 토건족들과 정보에 앞서는 한국 노블레스 전반의 농간을 빼놓고는 설명할 수가 없다.

 

국가의 생산력이나 평균 소득 수준에 비해 복지시스템이 취약한 것은 힘있는 이익집단들은 자력으로 처우를 대폭 개선해버리고, 관료마피아 집단과 결탁한 이익집단들의 재정 약탈이 횡행하면서, 세금과 사회보험료를 획기적으로 올릴 수 있는 사회심리적인 기반이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의 제반 사회적 강자들이 화전민적, 도적떼적 행태를 버리지 않은 상황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중시한 도덕적 신뢰, 분권과 자율, 대화와 타협, 탈권위주의(탈제왕적 대통령제), 탈지역주의라는 가치는 이 그늘을 더욱 짙게 했다. 이 그늘이 바로 NEIS 갈등, 천성산 터널 공사 6개월 중단, 부안사태, 허준영 경찰청장 경질, 도심 시위로 인한 교통 체증의 빈발 등으로 터져 나왔다.

 

따지고 보면 검찰, 선관위, 헌법재판소, 사법부의 과잉 권력(주권재민 원칙의 훼손)과 부동산 폭등, 대통령 탄핵사태, 전효숙 헌재소장 후보자 인준을 둘러싼 국회파행, 열린우리당의 지리멸렬 해체, 개헌 시도의 좌절도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다. 참여라는 가치가 만든 공간 역시 먼저 조직되어 있던 이익집단(공급자 집단)의 선점 내지 과점을 초래하였다.

 

그래서 한미FTA 협상 과정에서도 조직된 공급자 집단의 입김은 과잉 반영되었으나 조직되지 않은 소비자 집단의 입김은 과소하게 반영되었다. 요컨대 민주개혁진보가 만든 성공신화의 그늘은 가치생산 사슬의 왜곡, 기강과 질서의 지나친 훼손과 소모적인 갈등, 국가차원의 발전드라이버 전략의 혼미(부재)라고 할 수 있다. 진보 이익집단과 보수 이익집단은 이 그늘을 짙게 하는데 일조하였지만 책임은 참여정부와 민주개혁진보 정치세력이 질 수 밖에 없다.

 

본래 그늘이 크고 짙으면 양지가 크고 빛나는 법이다. 노 대통령이 만든 크고 빛나는 양지(성공신화)는 정말 많다. 노 대통령은 대통령에게 법률상 주어진 권한만 행사하였다. 검찰, 국정원, 국세청, 법원, 언론 등을 명실상부하게 독립시켰다. 단기 경기부양책을 고집스럽게 거부했고, 대통령 프로젝트를 철저히 챙겼고, 많은 권능을 관료들과 당에 나눠주었다.

 

관료들이 시스템 속에서 일하도록 하였다. 도덕적 신뢰를 위해 대통령직을 걸었다. 대통령도 법 아래 있다는 것을 명확히 하였다. 마키아벨리즘도 버렸다. 반칙, 특권, 변칙을 추구하는 문화에도 상당한 타격을 가하였다. 이외에도 무수히 많은 성과가 있다. 비록 지금은 성과의 그늘이 눈에 크게 들어오기에 성과를 무차별 폄하하는 사람이 많지만, 차기 대통령이 누가 되든 노무현 옆에 서면 대체로 왜소해 보이리라 생각한다.

 

깨끗한 손과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손


노무현 때문에 범여권 후보들이 지지율이 안 오르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민주개혁진보의 성공신화의 그늘을 극복할 가치, 비전, 전략을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명박과 이회창이 대운하와 반미친북좌파 운운하는 헛소리도 많이 늘어놓고 있긴 하지만 어쨌든 진보 이익집단과 이들의 행태에 대한 거부감을 등에 업고 기강과 질서를 고창하고, 국가 주도의 발전드라이버 전략, 규제완화, 철밥통과 공공부문 축소 등 민주개혁진보가 주도적으로 만든 그늘을 해소할 것 같은 이미지를 분명히 주고 있다.

 

그런데 범여권 후보들은 이 그늘을 양극화와 비정규직 폭증과 취약한 사회안전망의 문제로만 해석한다. 헌법, 선거법부터 시행령과 조례에 이르기까지 무수히 많은 불합리한 게임규칙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성장을 통해서, 단순한 정치리더십 교체를 통해서 이 모순을 덮어버리겠다고 하는 것은 모든 대권주자들이 공히 내지르고 있는 헛발질이다.

 
정치 세력은 어디까지나 대중의 욕망을 실현하는 도구이다. 도덕적 하자가 크더라도 도구로서 기능을 충실히 할 것 같으면 대중은 그 도구를 사용한다. 기왕이면 깨끗한 손이 좋겠지만, 미칠 정도로 가려우면 더럽더라도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손을 좋아한다.

 

반노가 아니라 극노를!


선술집에서 터져 나오는 노 대통령에 대한 국민들의 푸념을 곧이 곧대로 해석하면 안된다.  그 푸념 이면에 있는 심층 심리를 읽어야 한다. 이 푸념을 낳은 대중들의 삶의 조건과 대한민국의 속살을 보아야 한다. 사실 신자유주의 시비나 반미친북좌파 시비는 국민들의 푸념에서 곧바로 튀어나온 것이 아니라, 이 푸념을 정치적 통찰력으로 해석한 결과이다. 물론 제대로 해석하지는 못했지만!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국민들의 푸념도 정치적 통찰력으로 해석해야 한다. 국민들이 이구동성으로 경제성장을 얘기한다고 해서 이를 곧이 곧대로 받아들여 ‘진짜경제’니 ‘차별 없는 성장’으로 받아서는 안 된다. 불의한 게임규칙에 대한 혁파의지를 보이고, 이를 옹호하는 정치사회세력을 정치적 생명을 걸고 때려야 설득력을 가진다.

 

반노를 버려야 한다. 극노를 잡아야 한다. 노무현의 성과를 아낌없이 긍정하고, 한계를 인정, 두둔하고(특히 민주개혁진보는 그래야 한다), 오류는 가열차게 비판하되 반드시 이를 극복할 가치, 비전, 전략을 내놓아야 한다. 이것이 좋으면 노무현을 두둔하고 긍정하는 것이 오히려 근사해 보이고, 따라서 득표에 도움이 된다. 이것이 탈노무현이자, 진정한 차별화다. 나는 이회창이 이런 전략으로 나올까 두렵다. 극노는 민주개혁진보의 전유물이 아니다. 정동영, 문국현은 환골탈태해야 한다.

 

너무 높아지려고 하다가 너무 낮아진 사람 

 
나는 인생 역정으로 볼 때 민주개혁진보의 합리적 핵심을 수용하고 그 그늘을 극복할 가치, 비전, 전략을 고창하기에 가장 좋은 사람, 한마디로 극노를 표방할 가장 좋은 조건을 갖춘 사람 중의 하나가 문국현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문국현은 어리석게도 반노를 통한 차별화에 나섰다. 또한 반미친북좌파처럼 유령이나 다름없는 신자유주의를 주적으로 설정하고 왼쪽으로 왼쪽으로 갔다. 뿐만 아니라 이명박의 대운하 공약처럼 언뜻 보면 획기적이고 그럴 듯해 보이지만 까보면 허점투성이인 공약과 전망(건설비리 70조, 부패청산으로 200억불 외자유치, 8% 성장론, 비정규직 절반 감축론, 노동시간 단축 및 4조2교대 방식을 통한 500만개 일자리 창출론, 50~60명의 의원 합류설 등)을 수두룩 내놓았다.

 

원래 강점이 많은 사람이었기에 겸손했으면 훨씬 높아지고 빛났을 사람이 교만하고 허언을 하면서 빛이 많이 바랬다. 저쪽은 박근혜, 오세훈, 김문수, 홍준표 등 쟁쟁한 차기 주자들이 넘치는 상황에서, 꽤 괜찮은 차기 주자 문국현이 망가지는 것은 여간 답답한 일이 아니다. 물론 향후 한 달 동안 어떻게 처신하느냐에 따라 여태까지 잃어버린 점수를 많이 벌충할 수도 있겠지만…… .

덧붙이는 글 | 김대호 기자는 '한 386의 사상혁명'(2004년 시대정신) '진보와 보수를 넘어'(2007년 백산서당), '희망한국 프로젝트'(2007년 백산서당)의 저자로 현재 '사회디자인연구소' 이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폴리뉴스와 중복 게재)

2007.11.20 10:51ⓒ 2007 OhmyNews
덧붙이는 글 김대호 기자는 '한 386의 사상혁명'(2004년 시대정신) '진보와 보수를 넘어'(2007년 백산서당), '희망한국 프로젝트'(2007년 백산서당)의 저자로 현재 '사회디자인연구소' 이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폴리뉴스와 중복 게재)
#반노무현 #민주개혁진보의 그늘 #극노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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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사회디자인연구소 소장 전 김대호산업경영연구소 소장(2005) 전 대우자동차기술연구소 차장(2003) '노무현 이후-새시대 플랫폼은 무엇인가?-'(2009) '희망한국프로젝트'(공저)(백산서당, 2007) '진보와 보수를 넘어'(백산서당, 2007) '한386의 사상혁명'(시대정신, 2004) '대우자동차 하나 못 살리는 나라'(사회평론,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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