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홍기
- 지난달 29일 '삼성의 불법행동'에 대한 사제단의 1차 양심고백이 있은 뒤 3주가 지났습니다. 21일 오후 4차 기자회견이 예정돼 있는데요. 어떻게 이 사건과 함께 하시게 됐나요.
"87년 6월 민주항쟁 20주년을 맞이하는 올해, 저는 민주화운동의 기억과 그 창조적 가치를 화두 곧 묵상주제로 삼고 있습니다. 지난 1월 14일 박종철군 20주기 추도식에서 그의 아버님은'‘나는 이제 한 아버지로서의 울음을 멈추겠습니다. 박종철은 내개인의 아들이 아닌 시대의 아들입니다. 박종철이 염원했던 세상을 후배들이 이뤘으면 하는 꿈을 지닙니다'라고 말했습니다.
20년 전 평범한 공직자였던 박군의 아버지는 당시 몹시 괴로워했고, 두려워했습니다. 그는 박군의 죽음이 사건화 되는 걸 원치 않았어요. 그러나 우리는 그분을 설득했고, 결국 이 일은 우리 모두의 보편적 사건이 되었습니다. 그 당시 독재정권의 화신이었던 경찰, 안기부, 검찰이 이 사건을 어떻게 조작하고 은폐했는지 그 내용을 이미 다 아실 겁니다.
저는 올해 이런 생각을 했어요. 한 청년학생의 순수한 죽음이 결국 우리 사회를 아름답게 바꿨구나, 그래서 박종철군의 죽음에서 순교의 의미를 확인하곤 합니다. 이한열군의 죽음도 마찬가지죠. 87년 6월항쟁 당시 독재타도를 외쳤던 그 거리에서, 20년이 지난 오늘날에는 젊은 청춘남녀들이 자유롭게 대화하는 걸 보고 저는 큰 감회를 느꼈습니다.
다만, 오늘의 젊은이들이 그들이 누리고 있는 자유와 기쁨이 누구의 덕분인지를 알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선배세대들의 민주화․인권을 위한 피눈물 나는 희생의 결실임을 꼭 알고 기억했으면 합니다. 그런 면에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의 주제인 '역사에 대한 기억', '고통에 대한 기억' 곧 기억투쟁이 더 큰 미래를 창조할 수 있다는 걸 함께 되새겼으면 합니다.
그러던 참에 김용철 변호사가 몇 분의 동료들과 함께 저를 찾아왔습니다. 삼성에서의 자신의 삶을 고백하더군요. 그분이 양심선언을 하겠다는 뜻을 전해 듣고 저는 그분께 서면으로 모든 내용을 정리하라고 당부했습니다. 사제단에게 보내는 호소문과 함께 양심고백의 글을 정리하는 게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이대로 가면 김 변호사는 변호사 자격을 상실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김 변호사에게 앞으로 법조세계, 재벌세계, 언론과 검찰을 정화하는 시민운동가로 거듭나자고 약속했습니다."
- 김 변호사와 만난 뒤 어떤 대화가 오갔나요?
"그때 우리는 1시간 이상 대화를 나눴고, 몇 가지 핵심질문을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그분이 먼저 스스로의 잘못을 고백했고, 잘못에 대한 대가를 치르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감옥에 갈 각오가 돼 있냐고 물었더니 너무나 명쾌하게 그렇다고 말했습니다. 김 변호사와 만난 뒤 저는 동료, 선후배 사제들과 면담했고, 최종적으로 현재의 정의구현전국사제단 실무 책임을 맡고 있는 신부님들, 교구 상임위원들과 상의하게 됐지요. 그 과정에서 20년 전 박종철군의 죽음의 진실을 알렸던 사제들이 또 다시 시대의 십자가를 져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 지금까지 오시는데 어떤 어려움이 있었나요?"검찰은 부끄럽게도 삼성과 공범자가 돼서 먹이사슬로 연계돼 있습니다. 모든 걸 돈으로 해결하려는 자본독재의 영향권 아래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죠. 더 어려웠던 점은 우리를 아끼고 사랑하는 많은 분들이 '뜻은 좋은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정치권은 물론 언론, 국세청, 재경부, 검찰, 금감원 그리고 부분적으로 청와대까지 삼성의 영향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고 걱정해주셨습니다.
그때 저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고민이 되어 하느님께 9일기도를 올렸습니다. 저는 김용철 변호사가 우리 시대의 하나의 징표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걸 제대로 포착하지 못하면 개인이나 민족에게 더 큰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다는 성서적 가르침을 되새기며 깨달았습니다. 김 변호사의 양심고백과 호소는 시대의 명령이었고 그것을 전달하는 것은 신앙인에게 주어진 책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돈으로 안되는 게 있다는 걸 깨달을 때 삼성 성장 할 것"- 막강한 삼성이 많은 로비를 해왔을 텐데요."아무리 삼성이라는 기업이 돈으로 모든 걸 움직인다고 하더라도 진실을 왜곡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링컨의 유명한 격문을 기억합니다. 일부 사람을 얼마간 속일 수는 있지만 모든 사람을 영원히 속일 수 없다는 가르침 말입니다. 모든 사람들을 돈의 노예로 만들려는 삼성의 경영정책을 근원적으로 바꾸는 노력이 필요하겠다는 깨달음 속에서 신부님들이 이 일을 결단하게 된 것입니다."
- 직접 삼성그룹의 고위간부들이 찾아오기도 했다고 들었습니다."저를 찾아온 삼성인들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선생님들을 보낸 분을 직접 모셔오시오. 선생님들과 무슨 얘기를 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상부에 전하라고 말했습니다. 특히 돈으로 모든 걸 다 할 수 있다는 인식을 바꾸라고 말했습니다. 돈으로도 안 되는 게 있다는 걸 깨달을 때 삼성이 성장할 수 있다고 말했고, 그걸 책임자에게 전하라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