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방굴사 입구 소나무2백 전 쯤 심어졌다고 한다. 수문장처럼 굴을 지키고 있다. 사계리 장부 유명록이 심었다는 설이 있다.
장태욱
이 산방굴 입구에는 오래된 소나무 한 그루가 마치 문지기처럼 버티고 서 있는데, 유명록(柳命祿)이라는 사계리 장부가 심었다는 설이 전해온다. 유명록은 이 소나무만큼이나 기개가 등등한 인물이었다.
현종 11년(1845)의 일이었다. 영국 선박이 우도에 나타나 섬 위에 깃발을 세우고 섬 근처에서 수심을 측량하고, 방위를 표시하였다. 권직 목사는 크게 놀라 변란에 대비하였다. 이 때 대정현 사계리 사람 유명록이 목사를 찾아가 “소인에게 화약을 주시면 배에 싣고 몰래 다가가 화약에 불을 놓아 저들과 함께 죽겠습니다”라고 했다.
권직 모사가 그의 충의에 감탄하였고, 그에게 화약을 준비하여 거사를 도모하려 하던 중 영국 배는 돛을 올리고 떠나 버렸다. 기정진(奇正鎭)은 을사록에서 “우리나라 3백 주에 대정현의 기풍이 있고, 천만 사람에게 유명록의 담력이 있었다면, 비록 수백의 양이(洋夷)가 온들 어떠하겠는가”라고 하여 그의 용기를 높이 칭송했다.
이 소나무를 유명록이 심었다는 주장은 바위덩어리에 뿌리를 박고 산방굴사를 든든히 지키고 서 있는 소나무에게서 유명록의 기개와 흡사한 면이 있다고 생각해서 나온 것이리라.
풍수지리학적으로 산방산은 금장지지(禁葬之地 : 무덤을 쓸 수 없는 곳)로 알려져 있다. 산방산의 산세가 너무 좋아서, 이곳에 산을 쓰면 겨드랑이에 날개를 단 장수가 태어나지만, 더불어 심한 가뭄이 들어서 사람들이 굶어 죽는 일이 생긴다는 것이다.
과거 민중들은 늘 가렴주구에 시달리며 살았다. 그들을 늘 자신들을 지켜줄 영웅이 나타나길 기대하면서도, 영웅출현은 수많은 민중의 피를 요구한다는 것을 체험적으로 알고 있었다. 이곳을 금장지지라고 했던 이면에는 영웅출현에 대한 기대와 두려움이 혼재된 민중의 심리상태가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