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수한 입담 넘치는 시골 김장하는 날

농촌마을에서 이웃과 함께 담그는 김장의 맛에 반하다

등록 2007.11.25 09:29수정 2007.11.25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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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마을 주민들이 모여서 김장을 담그고 있다.

마을 주민들이 모여서 김장을 담그고 있다. ⓒ 이인옥

마을 주민들이 모여서 김장을 담그고 있다. ⓒ 이인옥

24일 아침, 자욱한 안개 속을 헤치고 충남 연기군 서면에 위치한 청라2구 마을을 찾았다. 그 동네 이상훈씨 댁에서 김장을 담근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이웃과 함께 김장하는 날 풍경을 사진으로 담기 위해 나선 길이다.

 

청라2구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로 주민들이 가족 같은 분위기에서 오순도순 정답게 모여 살고 있다. 예전부터 가끔씩 일 때문에 이 동네를 방문하곤 하는데, 옛 어른들이 나눠주던 인심과 따뜻한 정을 그대로 대물림 하고 있는 아름다운 마을이다.

 
a 시래기 헛간에 매달린 시래기의 모습

시래기 헛간에 매달린 시래기의 모습 ⓒ 이인옥

▲ 시래기 헛간에 매달린 시래기의 모습 ⓒ 이인옥

특히 대소사를 이웃들과 함께 나누는 모습은 이 동네의 가장 큰 매력이다. 오늘 김장을 담그는 이상훈씨 댁에 도착하자, 황색 대문 사이로 분주하게 김장 담그는 어르신들의 모습이 보인다.  마당에 들어서자 구수한 입담으로 반갑게 맞아주신다.

 
a 절인 배추 절인 배추를 씻어서 물이 빠지게 쌓아둔 모습

절인 배추 절인 배추를 씻어서 물이 빠지게 쌓아둔 모습 ⓒ 이인옥

▲ 절인 배추 절인 배추를 씻어서 물이 빠지게 쌓아둔 모습 ⓒ 이인옥

알맞게 잘 절인 배추를 커다란 고무 대야에 넣고 두 사람이 짝을 이루어 배추 속을 넣는 장면은 고향에 온 착각이 들 정도로 정겹다. 단지 변한 것이 있다면, 예전에는 커다란 항아리가 준비되어 있었는데 지금은 김치냉장고 용 김치통이 대신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빨갛게 버무린 김치를 보자 나도 모르게 침이 꿀꺽 넘어간다. 예전에는 넓은 마당을 가득 메우고 백포기, 이백포기는 보통이었다. 그만큼 김치 소비가 많아 김장하는 날이 연중 큰 행사의 하나였다. 요즘은 옛날처럼 이웃이 다 함께 모여서 차례대로 돌아가며 김장을 담그는 정경이 흔치 않다. 대부분 가족끼리 적당한 양만큼 담기 때문이다. 그만큼 김치 소비가 적어졌고, 대형 김치공장에서 완전하게 가공하여 배달하는 김치를 먹는 경우가 많아진 까닭이다.

 
a 절인 배추 김치 속을 박기 위해 준비된 절인 배추

절인 배추 김치 속을 박기 위해 준비된 절인 배추 ⓒ 이인옥

▲ 절인 배추 김치 속을 박기 위해 준비된 절인 배추 ⓒ 이인옥

다행히 오늘 방문한 집에는 이웃들이 마당을 가득 메운 채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며 맛깔스런 김치를 담고 있다. 마당 한 편에 있는 헛간에는 이엉처럼 엮인 시래기가 햇살과 바람을 벗 삼아 내년을 준비하고 있다. 대보름날 요긴하게 쓰일 임무를 완수하기 위한 모습 또한 멋스럽다. 또 마당 한 편에 있는 절구통이 시골의 운치를 더해준다.

 
a 김치 담기 속을 채운 김치들이 모아지고 있다.

김치 담기 속을 채운 김치들이 모아지고 있다. ⓒ 이인옥

▲ 김치 담기 속을 채운 김치들이 모아지고 있다. ⓒ 이인옥

김장속이 다 채워질 무렵, 김이 모락모락 나는 고기 한 접시와 방금 담은 맛깔스런 김치가 한상 차려져 마당으로 나온다. 머리를 떼낸 김장김치를 손으로 길게 쭉 찢어 고기 한 점을 얹어 입에 넣으면 둘이 먹다가 셋이 죽어도 모를 정도로 맛이 기막히다.

 

김장을 지켜보던 아저씨는 뒷짐을 지고 밖으로 나가더니 동네 어르신들을 모시고 왔다. 김장김치와 함께 이웃과 술 한잔도 기울이고 따끈한 밥 한 끼 나눠먹기 위해서다. 한 분 한분 늘어나는 이웃들과 함께 마당에 앉아 음식을 나눠먹으며 정담을 나누었다. 마루 뒤에 있는 방안에서는 큰 상이 다시 차려지고 있다. 김장을 끝내고 수고하신 분들과 함께 밥을 먹기 위해서다. 이 얼마나 정겹고 아름다운 장면인가.

 
a  김장김치를 안주 삼아 이웃과 함께 술 한잔을 나누고 있다.

김장김치를 안주 삼아 이웃과 함께 술 한잔을 나누고 있다. ⓒ 이인옥

김장김치를 안주 삼아 이웃과 함께 술 한잔을 나누고 있다. ⓒ 이인옥

하얀 쌀밥에 빨갛게 버무린 김치를 쭉 찢어 얹어 먹다 보면, 고봉으로 꾹꾹 눌러 푼 밥 한 사발을 뚝딱 해치우게 된다. 바로 코앞에서 도둑맞은 기분이다. 이웃과 함께 즐거운 마음으로 나눠먹는 밥이기에 방안에 웃음과 함께 이웃 사랑이 가득 넘쳐흐른다.

 
a 먹음직 스러운 김치 김장김치로 보쌈을 싸 먹는 모습

먹음직 스러운 김치 김장김치로 보쌈을 싸 먹는 모습 ⓒ 이인옥

▲ 먹음직 스러운 김치 김장김치로 보쌈을 싸 먹는 모습 ⓒ 이인옥
a 텃밭 배추가 뽑힌 공백을 대신하는 우거지 모습

텃밭 배추가 뽑힌 공백을 대신하는 우거지 모습 ⓒ 이인옥

▲ 텃밭 배추가 뽑힌 공백을 대신하는 우거지 모습 ⓒ 이인옥

사진을 찍기 위해 방문한 나에게도 커다란 통으로 김장김치를 가득 담아주시는 어르신들, 그들을 뒤로 하고 가슴에 훈훈한 정을 안고 돌아왔다. 얻어온 김치 통 뚜껑을 열자 김치 속에서 함께 어울려 나누던 정과 사랑이 행복으로 물들며, 얼굴 가득 미소를 짓게 한다.

 
a  완성된 김치를 김치통에 담갔다.

완성된 김치를 김치통에 담갔다. ⓒ 이인옥

완성된 김치를 김치통에 담갔다. ⓒ 이인옥
2007.11.25 09:29ⓒ 2007 OhmyNews
#김장 #농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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