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훈 대법원장이 취임 후 사법개혁 작업의 ‘첫 삽’으로 법원행정처의 비대화를 막기 위해 대법관이 맡는 법원행정처장을 정무직으로 전환했으나, 2년도 채 안 돼 원점으로 되돌려 사법개혁이 ‘도루묵’이 되고 말아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때문에 손바닥 뒤집듯이 법원조직법을 개정하고, ‘눈 가리고 아웅’식으로 사법개혁을 원점으로 돌리는 대법원과 국회가 비난을 면키 어려울 것으로 보여 체면을 구겼다.
법원조직법상 대법관은 1987년 12월 이후 20년 가까이 대법원장을 포함해 14명이었다.
그런데 이용훈 대법원장은 2005년 9월 취임하자마자 대법관 가운데 한 사람이 맡도록 돼 있는 법원행정처장 자리를 대법관이 아닌 일반 법관이 맡는 ‘정무직(장관급)’으로 바꾸는 법원조직법 개정 작업에 착수했다.
법원행정처장 자리를 대법관이 아닌 정무직이 맡도록 해 사법행정조직과 재판조직의 분리를 통한 사법행정의 전문성을 한층 제고하고, 특히 법원행정처의 지나친 비대화를 막기 위한 것이 당초 취지다.
역할을 보면 법원행정처장은 인사와 운영 등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대법원장으로부터 사법행정사무의 지휘·감독권 일부를 위임받아 사무를 처리하는 사법부의 핵심 요직으로, 통상 대법원장의 의중을 가장 잘 헤아리는 최측근 대법관이 맡아 왔다.
법원행정처장을 지낸 이력은 재판업무 뿐만 아니라 사법행정 전반에 관한 경험을 두루 갖추는 ‘검증’ 계기가 돼 향후 탄탄한 진로가 보장될 정도로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최근만 보더라도 이용훈 대법원장의 전임자인 최종영 전 대법원장도 법원행정처장 출신이고, 현재 이강국 헌법재판소장도 대법관 시절 법원행정처장을 역임했다.
또 당시 이강국 법원행정처장을 바통을 이어받은 손지열 대법관은 법원행정처장을 맡은 뒤 재판업무에 복귀하면서 2005년 10월 제14대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그런데 이용훈 대법원장은 취임하자마자 이 같이 사법행정에 관한 막중한 사무를 처리하는 핵심 요직인 법원행정처장 자리를 대법관이 아닌 법원장이 맡는 정무직으로 전환했다.
현행법상 대법관이 아닌 법원행정처장은 대법관 회의에 배석만 할 뿐 주요 결정사항에 대한 의결권이 없다.
따라서 정무직 법원행정처장은 사법행정업무에 있어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데 다소 지장이 있을 수 있어, 법원행정처의 지나친 비대화를 막는다는 대법원의 법원조직법 개정안 취지와 딱 맞아떨어진다.
대법관 퇴임 후 변호사로 활동하다가 5년 만에 사법부에 다시 복귀한 이용훈 대법원장의 이런 사법개혁 발상은 당시 사법개혁을 원하는 국민의 목소리에 힘을 얻어 2005년 12월 국회에서 원안대로 통과됐다.
대법관은 고유의 역할에 걸맞게 대법원 재판에만 관여하도록 한다더니
그러나 문제는 사법개혁 일환으로 법원조직법을 개정한 지 불과 2년도 채 안 돼, 아무런 명분도 없이 다시 법원행정처장을 대법관이 맡도록 하면서 대법관 수를 고무줄 다루듯 슬그머니 ‘줄였다, 늘렸다’ 번복하는데 있다.
국회는 지난 23일 본회의를 열어 대법관 수를 대법원장을 포함해 14명으로 하고, 법원행정처장은 대법관 중에서 대법원장이 임명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법원조직법을 새로이 개정했다.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변호사 출신 임종인 의원은 제안이유에서 “법원행정처장을 대법관 중 한 명으로 임명해 대법관 회의에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게 함으로써 법원행정처장이 사법행정에 있어 주도적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번 개정안은 이 대법원장이 취임 당시 ‘국민을 섬기는 법원’을 슬로건으로 내걸며 개정안을 마련했던 것과 정면으로 배치됨에도, 대법원은 아무런 반대입장을 표명하지 않았다.
이 대법원장은 2005년 9월 취임 기자간담회에서 “대법관은 고고하게 재판을 해야 하는데 법원행정처장을 맡으면 행정부에 예산을 따야지, 국회에서 답변해야지 하는 문제 등이 있기 때문에 대법관이 법원행정처장을 맡는 제도는 바꾸는 게 좋다”며 “법원행정처장은 법원행정 경험이 있는 법원장 중에서 맡는 게 좋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의 일환으로 대법원은 10월 손지열 법원행정처장의 후임으로 장윤기 창원지법원장을 ‘법원행정처장 권한대행’으로 임명하면서, “대법관은 고유의 역할에 걸맞게 대법원 재판에만 관여하도록 하고 법원행정처장은 대법관이 아닌 ‘정무직(장관급)’으로 임명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었다.
이후 12월 법원조직법 개정안이 통과됐는데, 이 같이 대법관이 맡는 법원행정처장의 정무직 전환은 이 대법원장이 취임 후 법원행정처의 비대화를 막겠다며 추진한 사법개혁의 ‘첫 삽’이나 다름없었다.
그럼에도 대법원은 사실상 사법개혁을 원점으로 돌려놓는 개정 작업에 반대하기는커녕, 오히려 올해 안에 추진해야 할 핵심사업으로 삼고 강력히 추진했다는 후문이다.
법원행정처장 자리를 대법관이 아닌 법원장이 맡은 이후 별다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었고, 대법관 회의에서도 법원행정처장은 의결권이 없어 의견을 관철시키기 어렵다는 것이 그 이유인데 명분이 너무 약하다.
왜냐하면 대법관이 아닌 법원행정처장은 대법관 회의에서 배석만 할 뿐 의결권이 없어 사법행정업무에 있어 지장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법원행정처의 비대화를 막겠다며 그렇게 개정해 놓고, 이제는 의결권을 행사 못해 사법행정상 주도적 역할을 할 수 없어 다시 원점으로 돌린다는 것은 ‘눈 가리고 아웅’ 식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번 개정안을 검토 및 심사를 맡은 법제사법위원회 박기준 전문위원은 “법원행정처장을 대법관 중에서 보임하도록 개정하는 것은 특별한 사정변경이 있는지 면밀히 검토해 결정할 문제”라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박 전문위원은 “현행 법원행정처장 임명방식은 법개정 당시 제안이유에서 사법행정조직과 재판조직의 분리를 통한 사법행정의 전문성 제고 및 법원행정처의 비대화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던 점에 비춰 결정할 문제”라고 강조했다.
뿐만 아니라 이번 개정안에 대해서는 법무부도 신중하게 검토해 처리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비록 대법원이 이번 개정안을 마련하지는 않았지만, 사법개혁이라며 대법원 스스로 마련한 개정안을 불과 2년도 채 안 돼, 다시 원점으로 돌리는 것에 대한 국민의 비판에 부담을 느껴, 국회를 통한 우회적 방법을 선택했을 가능성이 농후한 대목이다.
2007.11.26 09:02 | ⓒ 2007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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