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나기 꽃그릇겨우나기를 앞두고 말끔히 비워 놓은 꽃그릇들. 그동안 애 많이 썼습니다.
최종규
일요일 저녁에 우리 집에 놀러 온 손님을 배웅하러 나선 월요일(26일) 아침입니다. 이슬비랄지, 는개랄지, 겨울이면서도 찬비 아닌 따순비가 내린 길을 걷습니다. 저는 걷고, 손님은 자전거를 끌고.
그냥 보내기 섭섭하고, 빈속에 자전거 타고 짧지 않은 길을 돌아가자면 힘들이라 보고, 창영초등학교 앞 분식집에 들릅니다. 무얼 먹으면 좋을까 생각하다가 냄비라면을 먹어 보기로 합니다. 그리고 튀김 한 접시.
이렇게 시켜 놓고 기다리는데, 집부터 분식집까지 걸어온 길 느낌이 자꾸만 머리에서 맴돕니다. 집으로 얼른 뛰어가서 사진기를 들고 나올지, 그냥 라면 한 그릇 먹고 배웅을 마치고 돌아갈는지. 앉은 자리에서 끙끙거리다가, 안 되겠구나 싶어, 잠깐 다녀오마 이야기한 뒤 집으로 부리나케 달립니다. 탁 탁 탁 탁. 비가 살짝 적신 아스팔트 길을 달립니다. 계단을 쿵쾅쿵쾅 뛰어오릅니다. 가방에서 사진기를 꺼내고 오던 길을 되짚습니다.
막걸릿집 앞에 선 자전거 한 대 찍습니다. 탁 탁 탁 탁. 두 갈래 길 모퉁이 집에서 자라는 넝쿨 풀을 하나 찍습니다. 분식집 앞에 세워 둔 자전거를 찍습니다. 숨을 고르며 안으로 들어갑니다.
라면은 진작 나와 있고, 손님은 저를 기다리며 안 먹고 있습니다. 미안하네요. 매운 것을 못 먹는 저는, 면발에 올려진 고춧가루를 살며시 덜어냅니다. 후루룩 짭짭. 고춧가루 덜어냈어도 많이 매워서 국물은 모두 들이마시지 못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