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노현 방송대 교수.
장윤선
다음은 곽노현 방송대 교수와 나눈 일문일답.
-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 불법행위 고발이 1개월째다. 어떻게 보고 있나.
"전례 없는 생생한 증언이 나왔다. 재벌중심의 앙시앵 레짐(구체제)의 맨살이 드러났다. 썩어문드러진 부패의 실상이 드러나면서 국민들의 부패청산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이 기회를 잘 살리지 못하면 제2의 경제위기가 올 수밖에 없겠구나 생각이 들 정도다. 한국사회 최상층의 부패가 아주 심각하다.
김인국 신부의 말처럼 한국 최고 엘리트인 검찰·재경부·국세청 고위공직자는 물론 회계법인과 법무법인 최고 전문가들이 진실과 정의는 외면하고 뇌물과 향응에 영혼을 팔고 있다.
이 부분을 바로잡지 않고는 부패청산은 요원하다. 부패로 썩은 영혼을 우리가 건져내고 진실에 터 잡은 신뢰와 정의를 회복시키라는 역사의 준엄한 명령이다. 재벌일가를 개혁할 수 있는 다시 오지 않을 기회다.
구체제를 청산할 수 있는 본격적인 새로운 사태로 봤다. 삼성 비자금 비리 고발은 구체제 청산의 마지막 뇌관이다. 김 변호사의 기자회견으로 시한폭탄이 됐다. 구체제는 언제든 터지게 돼 있다."
- 지난달 29일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사제단)의 1차 기자회견 이후 김용철 변호사와 만났던 걸로 알고 있다. 주로 어떤 대화를 나눴나.
"에버랜드사건의 불법성에 대해 집중 물었다. 그 당시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던가, 전적으로 구조본(현 전략기획실)의 연출로 이뤄진 것이라든가 등등을 물었다. '떡값 검사' 명단 중 한 가지만 확인해달라고 부탁했다. 임채진 내정자에 관한 것이었다."
- 임채진 신임 검찰총장과 관련해 어떤 내용을 확인해줬나."임채진 총장이 삼성장학생 중 으뜸이라는 것이었다. 김 변호사에게 세 번이나 물었지만 번번이 같은 답이 돌아왔다. 그 뒤로 임채진 총장 내정자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게 됐다. 사제단이 3차 기자회견에서 임채진 총장과 이종백 국가청렴위원장, 이귀남 대검 중수부장이 삼성의 관리대상이었다는 내용을 밝힌 뒤로 충격이 더 커졌다. 국내 최고위 부패사정기관 3인이 떡값 검사 3인방이라는 사실에 넋이 나갔다. 아찔했다. 정신의 공황을 맞이했다. 국가의 공황상태라고 봤다."
"공직자윤리위, 직무 연관성 엄격하게 따져야"- 임채진 총장 등 '떡값 3인방'은 현재도 직무를 유지하고 있는데."노 대통령은 증거주의와 무죄추정원칙에 서서 여론재판을 배격하려고 하고 있다. 그 충정은 이해한다. 그러나 뇌물사건은 은밀하게 이뤄진다.
준 사람의 신빙성 있는 진술이 일관되고 기타 정황증거가 있으면 인정하는 게 법원의 입장이다. 뇌물사건에 관해서는 증거주의가 약화되는 거다. 무죄추정의 원칙은 인권의 대원칙이다. 이것은 가장 힘없는 사람에게 적용될 때 진가를 발휘하게 된다. 그런데 이 분들은 최고의 법률전문가이자 최고의 권력자다. 검찰조직의 후배들은 그들을 두려워하지만, 그들은 검찰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세상에 이런 사람들이 다 있나.
임채진 신임 검찰총장과 이종백 국가청렴위원장은 서울지검장을 지낸 바 있다. 2004년부터 2006년까지는 이종백 위원장이, 2007년에는 임 총장이 지냈다. 두 사람이 연속으로 서울지검장을 지냈다. 2004년 12월 에버랜드 1심 재판이 끝났고, 그 뒤로 끊임없이 이건희 회장을 소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1심 재판 끝나면 '보자'고 했었다.
수사검사들도 이건희 회장을 소환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검찰 수뇌부에서 막았다. 이건희 소환을 막은 게 서울지검 수뇌부다. 또 이를 노무현 대통령이나 청와대 민정수석이 모를 수 없다. 몰랐다면 더 큰 문제다. 법무부도 몰랐을 리 없다. 법무부 장관도 감찰을 해왔어야 하는 문제다. 임채진 총장과 이종백 위원장은 서울지검장 재직시 현장 수사팀의 이건희 소환조사를 묵살해왔던 사람들이다."
- 이 분들이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나."김 변호사가 밝힌 삼성 관리대상 의혹명단 1순위면 해당자들은 그 사실만으로도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만일 부끄러운 사실이 없다면 당당하게 나를 조사하라, 그리고 공정한 조사를 위해 내가 비켜주겠다고 하고 사표를 내야 한다. 사정기관의 공신력 회복을 위해서라도 물러나야 하는데 안 물러나고 있다. 노 대통령이 이런 사람들을 최고위 공직에 둔 것은 인사실패다.
'안기부 X파일 사건'이 터진 게 2005년 8월이다. 그때 이미 삼성장학생의 존재는 널리 알려졌고 확인됐다. 적어도 청와대는 그 후에 모든 검찰 고위직 임명에서 삼성장학생의 존재여부를 확인하고 검증해서 걸러냈어야 한다. 그런데 '떡값명단' 3인방을 보면 모두 최근에 임명된 사람들이다. X파일 폭로 이후에 임명된 사람들이다. 이건 청와대 인사검증시스템을 관장하고 있는 곳에서 제대로 확인도 안하고 한 것이고,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이다."
- 정부는 인사검증시스템에 직무연관성을 적용하지 않는 걸로 알고 있다.
"노무현정부 이후 삼성은 법무팀을 대폭 확대하고, 국세청·공정위·재경부·금감원 출신을 대거 영입했다. 현직에서 바로 삼성으로 건너간 경우가 많다. 이것도 문제다. 방침이 필요하다. 적어도 고위 공직자를 기업이 '전관 영입'하는 것이 관료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정부는 알아야 한다.
예컨대 '에버랜드 배임승계(편법증여) 사건'을 조사하다 바로 삼성 에버랜드 변호팀으로 넘어가는 게 바람직한 것일까. 정권 차원의 관리지침이 있어야 한다. 삼성은 안정적으로 경영권 승계를 이룰 목적으로 무차별적 전방위 로비를 폈다. 그 로비의 일환이 '전관 영입', '사외이사 임명' 등이다. 삼성그룹 계열사들의 사외이사 명단을 보라. 국세청 사람이 많다. 이건 맥락상 분명하다. 공직자윤리위원회에서 직무연관성을 엄격히 해석해서 못 가게 했다는 말을 들어본 일이 없다. 정권 차원에서 관리가 안 되고 있다는 거다.
고위 공직자들이 삼성뿐만 아니라 다른 재벌도 간다. 고위 공직에 있다가 재벌로 넘어가는 시스템이 정착된다면 재벌규제는 미온적이고, 적극적으로 친재벌정책을 할 마음이 더 커지지 않겠나. 민간영역에서 몸값이 높아진다고 느껴지는 순간 어떤 정책이 나오겠나."
- 김 변호사와 만났을 때 임채진 신임 총장에 주목한 별다른 이유가 있었나."검찰총장 내정자이기 때문이다. '떡값검사 명단'과 삼성장학생에 대해서는 사전에 들은 것은 전혀 없지만 말이다.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있는데 혹시나 임 총장이 '삼성장학생'이라면 어떻게 될까 해서 관심을 갖게 됐다. 김 변호사에 따르면 '떡값 검찰 간부'가 서울에만 40명이라는데 임채진 총장이 낙마하면 다른 대안이 나올 수 있을까, 이것은 노무현정부의 임기 말 정국운영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생각했다.
무엇보다 검찰총장이 삼성장학생이라면 결단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삼성에 영혼을 판 검찰총장을 우리가 모실 수는 없다. 검찰총장은 정의의 여신만 믿고 모든 외풍을 진실의 칼끝 하나로 이어가야 하는데, 이 분은 삼성문제가 불거진 뒤 조만간 조사받지 않을 수 없는 새로운 사태에 직면하지 않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