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대 대명사 병천, 유관순 김시민 등 인물 수두룩

등록 2007.12.01 11:35수정 2007.12.01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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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청양하면 고추, 전주하면 비빔밥을 떠올린다. 그렇다면 병천에 대해선 제일 먼저 무엇을 떠올릴까. 아마도 백이면 구십 이상이 모두 순대라고 답할 듯 싶다. 그 정도로 '병천순대'는 이제 고유어가 되어 버렸고 전국 곳곳엔 그 이름을 단 간판들이 발에 채일 만큼 흔하다. 가히 병천순대의 전성시대라 할 만하다. 그런데 병천(並川)의 옛 이름 혹은 별칭이 '아우내'라는 사실을 혹시 기억하시는가. 이는 한자를 있는 그대로 풀이한 것으로 토말(土末)이 땅끝마을로 불리는 것과 똑같은 맥락이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지만 한때 이곳엔 아우내중학교가 있어 아름다운 한글 이름으로 선정되기까지 했다.


사실 순대가 아니었다면 병천은 아직도 세인들에겐 낯선 이름에 불과할지 모른다. 아우내라는 징검다리를 통해야만 비로소 "아~ 거기"라는 반응이 나올 수 있던 곳이었다. 지금 병천이 순대와 쌍을 이뤄 꼭 붙어 다니듯 아우내는 장터와 짝을 지어 늘 어울렸다. '아우내장터'가 바로 그것이다. 영원한 누나로 한국인의 가슴 속에 아로 새겨진 유관순이 10대의 어린 나이로 항일운동을 주도했던 유서 깊은 곳이다. 때문에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아우내장터를 기억하고 그곳에서 어떤 신성스러움마저 느낀다.


그러면 아우내에 장터가 생긴 것은 언제였고 여기엔 또 무슨 연유가 있었을까. 이런 부분은 아무래도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귀가 쏠리기 마련이다. 어사로 유명한 박문수가 병천에 머물고 있었을 때, 유명한 지관 하나를 만나 묘자리를 부탁했다고 한다. 며칠을 여기저기 돌아다닌 지관은 근처 은석산 중턱에서 장군대좌형을 발견하였다. 하지만 모양새가 장군만 앉아 있을 뿐 그를 호위할 병졸이 보이질 않았다. 이에 박문수는 은석산 아래 쪽에 시장을 하나 만들기로 했다. 장터를 찾는 많은 사람들이 군사 역할을 한다는 논리였다. 기회가 되면 사료를 찾아 사실을 확인해 보고 싶다.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목천 IC를 빠져 나와 병천으로 향하다 보면 피라미드 같은 산 하나가 왼쪽에 보이는데, 이것이 은석산이다. 여기에 영조 때 명신 박문수가 잠들어 있다. 그러나 그의 처음 묏자리는 은석산이 아니라 목천의 흑성산이었다고 한다. 역설적이지만 그곳이 너무 명당이었던 게 문제였던 모양이다. 이에 어느 지관이, "흑성산은 천하의 길지이다. 그런즉 흑성산에 묘를 쓰면 나라에서 이곳을 크게 쓸 일이 생겨 반드시 나중에 이장하게 될 것이다. 차라리 10리 남쪽으로 내려가 은석산에 묘를 써라"고 권하였다. 그래서는 아니겠지만 지금 흑성산엔 독립기념관이 들어서 있다.


은석산은 7~80년대 학생들의 소풍지로도 널리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그때는 길이 불편해 산에 들어가는데 애로가 많았다. 지금은 산등성이를 따라 길을 잘 닦아 현지인들은 물론 외지에서도 등산객들이 몰려든다. 산행을 마치고 아우내장터에서 병천의 명물인 순대국을 안주로 하산주를 마시면 신선이 따로 없다. 병천은 일개 면에 불과한 소읍이지만 역사적 유산이 도처에 서려있다. 그만큼 답사지로서도 손색이 없다는 이야기이다. 때문에 병천은 산행과 답사를 겸하기에 아주 제격이다.


은석산 박문수묘와 아우내장터 말고도 이곳엔 유관순과 관련된 더 많은 유물, 유적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지령리에 남아 있는 유관순의 생가와 읍내를 굽어보는 그의 추모각이 여기에 속한다. 둘은 어린 유관순이 직접 봉화를 올리며 신호를 보냈던 매봉산을 앞과 뒤로 두고 존재하고 있다. 이들을 통해 한국사에서 병천이 갖는 역사적 비중을 진하게 느낄 수 있다. 추모각에선 매년 열사의 순국일을 기념하여 백일장이 펼쳐지곤 했다. 하지만 최근 열사의 영정이 친일파 화가가 그린 것으로 알려져 한바탕 난리가 나기도 했다. 곧 새로운 영정으로 교체가 될 예정이라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다. 우리 사회에 얼마나 친일의 잔재가 짙게 드리웠는지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었다.


병천의 서부에 해당하는 가전리엔 시대를 한참 거슬러간 유적이 우리의 눈길을 끈다. 바로 임진왜란시 3대첩의 하나로 꼽히는 진주대첩의 영웅 김시민의 생가이다. 영웅에 전설이 깃드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 김시민에게도 다음과 같은 재미난 일화가 따라다닌다.


옛날 잣밭 마을 거북이 바위에 아주 큰 뱀이 살고 있었는데, 자주 사람과 가축들을 해쳤다. 모두들 겁에 질려 벌벌 떨고만 있는데, 겨우 아홉 살 난 소년이 아이 하나를 데리고 뱀의 퇴치에 나섰다. 아이가 바위에 올라가 그 앞의 냇물에 그림자가 비치자 기다렸다는 듯이 뱀이 슬슬 기어 나왔다. 소년은 이때를 놓치지 않고 재빨리 몇 개의 화살을 날려 뱀의 머리를 정통으로 맞추었다. 이에 뱀은 그 자리에서 피를 쏟고 죽었는데, 10여 일이나 냇물이 붉게 물들었다고 한다.


이 용감한 소년은 물론 김시민이다. 그가 화살로 뱀을 쏘아 죽인 곳엔 현재 사사처(射蛇處)라는 비석을 세워 그의 기상을 기리고 있다. 잣밭은 가전리의 한 지명으로 사실 여부는 모르겠으나 예전에 잣이 많았음을 충분히 추측할 수 있다. 상백(上栢)과 하백(下栢)으로 불리는 현대적 지명도 당연히 잣과 관련이 있다. 이곳엔 안동김씨들이 아직도 일가를 이루며 집단적으로 살고 있다. 순조 때 충렬사를 이곳에 지어 김시민을 배향했으나 고종 때 폐지되고 그 흔적만이 전해져 왔다. 하지만 천안시에서 사당의 재건 등 유허지를 대대적으로 정비해 유관순 사적과 함께 항일의 성지로 부각시킬 예정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시대는 달랐지만 유관순과 김시민 모두 일본을 상대로 목숨을 던졌던 것이다.


병천은 천안과 진천을 잇는 길목 한 가운데에 있다. 그림을 그려 보면 천안-목천-병천-동면(천동)-진천 이렇게 된다. '천'자가 유난히 많이 들어가 혼자 '오천벨트'라는 억지 이름을 붙여보기도 했다. 병천에서 20리 남짓한 목천엔 독립기념관과 이동녕 생가가 있고 진천엔 김유신 생가와 농다리가 유명하다. 때문에 좀 더 넉넉한 시간에 부지런을 피운다면 고대와 현대를 넘나드는 답사를 즐길 수 있다. 특별히 수려한 산세나 아름다운 풍치는 없어도 이 지역 일대가 나름대로 답사객들의 마음을 붙드는 이유이다.


지금도 아우내장터엔 1과 6으로 끝나는 날마다 여전히 5일장이 선다. 그러나 오늘날 이곳에서 순대 냄새보다는 유관순의 만세 소리를 먼저 떠올리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일본 담배 마일드세븐이 폭발적으로 소비되고 일본 영화가 아무 거리낌 없이 상영되는 이 시대에 어쩌면 유관순으로 상징되는 민족적 이데올로기는 철 지난 상품이 되어버렸는지도 모른다. 때문에 유관순보다는 좀 더 부드러운 코드인 순대가 병천의 이미지를 대신해 가고 있는 건 아닐까.


지방화가 진전되면 경산=사과, 청양=고추 식의 이미지 작업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이제 사람들은 유관순을 통해 최종적으로 순대에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순대를 통해 병천을 알고, 그것을 거쳐 유관순을 인식하는 과정에 훨씬 익숙해지지 않았나 싶다. 그러는 동안 유관순과 순대 어느 하나 병천인들에겐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 버렸다. 유관순이 그들의 마음을 살찌웠다면 순대는 병천의 경제에 활력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순대는 순간 사라질 수 있어도 유관순은 병천에 영원한 존재라는 점에서 그 의미는 늘 구분될 터이다. 정신의 힘이란 바로 그런 것이다.

덧붙이는 글 | <'테마'가 있는 나만의 여행 응모글>

2007.12.01 11:35ⓒ 2007 OhmyNews
덧붙이는 글 <'테마'가 있는 나만의 여행 응모글>
#아우내장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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