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남소연
<녹색평론>의 발행인인 김종철 전 영남대 교수를 만난 것은 지난 9월 17일이었다. 그러니까 이 인터뷰는 무려 3개월 전에 있었던 만남을 '복기'하는 셈이 된다. 복기라는 표현이 등장했는데, 사실 나는 그간 김종철이 실천해왔던 사상의 궤적을 자못 골똘하게 '복기'해왔다.
한국의 지식인 지도를 작성한 윤건차 가나가와대 교수에 따르면, 김종철은 '급진적 민주주의자'로 분류되며, 그 사상의 핵심은 '환경 근본주의'로 명명되고 있다. 일찍이 김종철과 인터뷰를 진행했던 <여의도통신>의 정지환 대표기자 역시 그렇게 보는 듯 하다. 그런 까닭인지 그는 2000년에 <비평과전망>을 통해 진행된 인터뷰의 제목을 "파국을 향해 달리는 기차를 멈추게 하라"라고 뽑았다. 산업화 이후의 자본주의적 세계질서야말로, 인간과 지구의 생물학적 토대 자체를 붕괴시키는 커다란 위협이라고 생각하는 김종철 사상을 압축하는 표현이라고 판단된다.
그러나 나는 김종철 사상을 '환경 근본주의'나 '급진적 민주주의'로 확정하는 것은 좀 경솔하다고 생각한다. 지금 김종철이 <녹색평론>을 통해서 제기하고 있는 민주주의에 대한 물음들은, 뒤의 대화에서 밝혀지겠지만 '급진적'이라는 표현만으로는 포괄하기 힘든 '근원적' 물음을 던지고 있고, '환경 근본주의'의 명명법을 뛰어넘는 '생태 평화주의'의 시각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녹색평론>을 통해 그가 던지는 물음그는 인간과 자연의 공생(共生)은 물론이고, 인간과 인간의 공락(共樂)이 가능한 세계에 대한 비전을 꾸준히 <녹색평론>을 통해서 우리에게 제기하고 있다. 김종철의 이러한 '공생공락의 비전'은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것은 마치 <녹색평론>이 생태잡지가 아닌데도,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인 데서도 확인할 수 있다. 좌우지간, 이제 김종철 자신의 육성을 들어보도록 하자. 나는 먼저 안정된 대학교수 생활을 스스로 청산하고 <녹색평론>에만 전념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내 나이가 많아졌다. 공부도 안하는 사람이 대학에 있는 게 염치 없다는 생각도 있었다. 동시에 변화하는 대학에 우리같이 낡은 체질을 갖고 있는 사람이 적응하기 쉽지 않다는 것도 한 이유다. 예를 들어 내 경우는 아니지만 대학에서 영어로 강의를 하라든지 하는 식의 변화. 그런 분위기가 나에게 거부감을 느끼게 했다. 대학 내에서 비판적인 지식인이 활동할 수 있는 가능성이 줄어들고 있구나 하는 깨달음이랄까. 대학은 우리 같은 사람이 나름대로 보람 있는 일을 해보자는 분위기는 이미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여러 해 전부터 많이 들었다. 또 기본적으로 경제적으로 대학을 그만 무어도 생활하는 데 별 지장이 없다는 것도 그 이유일 수 있겠지."오늘의 대학이 신자유주의적 재편과 구조 조정기를 거치면서, 대학 본연의 기능을 상실하고 있음은 잘 알려져 있다. 교수사회와 관련해서도 갖가지 추문들이 터져 나오고 있다. 빈번하게 제기되는 표절 사태는 물론이고, 한탕주의적 연구풍토와 이완된 윤리의식은 이른바 '황우석 사태'와 '신정아 사태'에서 꼭짓점을 이루지 않았던가. 한 마디로 지식인 본연의 기능이 추락하고 있는 게 오늘의 현실 아닌가.
"사실 나 자신에게도 아픈 질문이다. 내가 지식인다운 지식인으로 살아왔는가 묻는다면 자신 있게 답할 수는 없다. 하여간 과거에 우리나라가 지식인다운 처신을 할 만한 상황이었는가 하는 질문을 해 보면 상황이 점점 더 나빠지는 것이 사실이다. 지금은 대학 내에 지식인보다는 지식기술자만이 존재하는 게 아니냐는 생각도 과장이 아니다. 옛날보다는 확실히 요즘의 대학선생들이 개인적인 공부나 논문을 많이 쓰는 것은 사실이다. 과거와 비교하여 오늘의 대학 지식인들이 책상에 앉아있는 절대시간은 늘어났다. 하지만 교수나 학자라면, 그런 개인적 작업 이외에도 우리사회의 공동의 삶에 대해 근원적으로 고민하고, 먹고 사는 일에 바쁜 대중들이 미처 생각할 수 없는 문제에 대해서 근원적인 성찰과 실천을 해야 하는 게 아닐까. 또 객관적인 지식을 대학이 많이 소유하고 있으니, 이에 대한 응분의 사회적 책임감을 갖고 공적 기능을 좀 더 확대하는 자세를 잃지 않아야 하지 않겠나. 그런데 한국의 지식인풍토가 유난히 신자유주의 풍토에 적응력이 빠른 게 아닌가 싶다. 지식인 사회가 위기상황인 것은 틀림없다. 안타까운 것은 이에 대한 타개책이 있는가 하는 문제다."
위에서의 '지식기술자'라는 표현이 거슬리는 사람도 있겠지만, 실제로 대학을 거점으로 활동하고 있는 전통적인 지식인 그룹이 '논문쓰기 노동자'로 전락했음은 잘 알려져 있다. 사회적으로 강요되는 분류체계에 그 누구보다도 앞장서 저항해야 하는 지식인들은 무엇을 하고 있나. 학술진흥재단이 분류한 '등재지 시스템'에 순응하면서, 연구업적 부풀리기와 연구비 수주행위에 골몰하고 있다. 인문학을 살리겠다면서 수백억 원의 연구비를 분배하는 인문한국 프로젝트야말로 사실은 반인문적인 발상인데, 이에 대해 비판하는 목소리는 소수의 연구자들에게서나 나오고 있다. 인문학자들조차 프로젝트에 동원되는 일의 문제성에 대한 근원적 문제의식을 보이지 않고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문제 아닌가.
대학에 사표를 제출하고 나온 김종철은 지금 서울에 있다. 난 선생이 귀농이라도 할 줄 알았다고 물었더니,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녹색평론>의 가치와 의미를 확산시키기 위해 가장 용이한 공간이 역설적이게도 서울이라는 것이다. 지방강연도 자주 다니는 편인데, 그러자면 서울이라는 장소의 효용성을 부정하기 힘들다고 말한다. <녹색평론>의 본사는 대구에 있다. 그는 서울에서 <녹색평론>에 게재할 원고를 번역하고, 필자를 섭외하고 대구에서 전송된 원고를 검토하면서 분주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녹색평론>이 격월간지이니까 그의 일상 모두는 <녹색평론>에 바쳐지는 셈이다.
매주 토요일, 이반 일리치를 읽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