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를 사랑하지 않고는 배기지 못하게 한다.” (작가 공선옥)
“출신은 서울이고 살기는 충청도 사는 내게도 정 깊고 인심 좋은 이름.” (판화가 이철수)
“거기엔 잊어버려서는 안 될 많은 기억들이 있다.”(변호사 박원순)
입에 발린 소리가 아니다. 그들은 하나같이 진정을 다해 그에 대한 자신의 소회를 말한다. 이름 석 자만 대면 알 만한 그들이 정 듬뿍 주고 있는 그는 잡지다. 전라도 광주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전라도닷컴>이란 월간지다.
그러니까 7년 전인 2000년 10월, 그는 온라인에서 처음 태어났다. 그리고 2002년, 오프라인에서 <월간 전라도닷컴>으로 다시 태어났다. 기자는 그때 그의 새로운 출발을 이렇게 전했다.
"어떻게 문화로 장사할 수 있느냐고 반문할지 모르겠다. 거기에 대해선 말하지 않겠다. 적어도 이 땅에서 '활자'는 근본적으로 수지맞는 장사가 아니었으니까. 이름 석 자만으로 책이 팔려 중산층의 반열에 올라선 몇몇 '유명작가'를 제외하고 누가 '활자'로 입에 풀칠이라도 하며 살고 있는가. '활자'가 잘난 지식인들의 굶주린 지적욕망을 채우기 위해 노력하기는커녕 도회지 변방이나 낙후된 촌락에 의탁한 무명씨들의 '개풀 뜯어먹는 소리'나 담아낸다면 누가 '금 같은 돈'을 낸단 말인가.
씁쓸하지만 현실이다. 이런 현실이 죽도록 싫어서일까? 나름의 매니아를 거느리며 전라도 사람과 땅을 줄기차게 얘기해온 온라인 문화잡지 <전라도닷컴>이 인쇄활자로 거듭 태어났다." (‘전라도 사람들이 만드는 전라도 이야기’ - 2002년 2월 26일자)
빌어먹을 기우(奇遇). 그로부터 5년이 흐른 2007년 12월, 그는 잠시 몸을 쉬고 있다. 그놈의 ‘돈’ 때문이다. 그동안 그를 후원해왔던 향토기업 빅마트가 경영난에 빠졌기 때문이다. <전라도닷컴>은 창간 때부터 고락을 함께 해온 7명의 기자와 함께 거리에 서고 말았다.
기사 7300건, 69호까지 발간한 월간지, 7권의 단행본. 숫자로 정리한 <전라도닷컴>이 살아온 지난 7년이다. 그러나 수치로 정리할 수 없는 끈적끈적한 그 어떤 것이 그에겐 있다. 소설가 임철우의 말을 빌리는 게 낫겠다.
“어느 사이 외면받고 잊혀 가는 이름들, 고속도로와 고속철에 실려 씽씽 지나쳐 가는 도시인의 눈에는 결코 보이지 않는 마을들, 결코 마주칠 수 없는 사람들, 결단코 느낄 수 없는 훈기와 냄새와 색깔들. 그러나 오히려 그러하기에 더욱 소중하고 아름다운 이 땅 이름 없는 사람들의 얼굴과 이야기들…. 나는 <전라도닷컴>에서 그들을 만날 때마다 감격한다. 이런 세상에도 아직 이런 책이 있다니, 내겐 하나의 작은 기적처럼 여겨지는 것이다.”
기적이 계속되길 바라는 철부지들이 아직은 많은 모양이다. 여기저기서 “<전라도닷컴> 하나는 살려야 하질 않나”하는 탄식과 응원의 목소리들이 모여들었다.
향토지리학자 김경수씨는 광주 북구 일곡동에 있는 건물 2층을 통으로 내줬다. 물론 2년 동안 보증금도, 임대료도 없이 말이다. 평소 남 어려운 것을 보면 참지 못하는 임의진 목사는 가수 한보리·오영묵씨 등과 함께 무료공연을 해준 것도 모자라 응원금까지 냈다. 지난달 30일 밤에 열린 ‘전라도닷컴 응원의 밤’ 행사에서다.
무엇보다도 <전라도닷컴>이 더없이 행복한 까닭은 독자들 때문이다. 전국에 흩어져있는 3000여 명의 독자들이 자발적으로 힘을 모았다. 독자배가 활동을 벌이고, 자동이체 후원자가 되고, 이름 숨긴 채 후원금을 보내고….
“막막하고 힘들었다. 심지어 폐간할 생각까지 했다. 그러나 우리 마음대로 폐간도 못 한다. 여러 독자들이 ‘광주가 문화수도라며 온갖 담론과 사업비가 돌아다니는데 <전라도닷컴> 하나 지키지 못하고 무슨 문화수도냐’고 탄식하셨다. 독자들이 퇴로를 다 차단해버린 것이다. 그래서 <전라도닷컴>의 가치와 의미를 인정하는 독자들을 믿고 계속 가기로 했다.”
황풍년 편집장의 말이다. 퇴로 없는 승부는 더 고되고 고민이 많은 법. 당장 직원들 월급을 줄만한 형편이 아니다. 꾸어다 쓴 돈의 규모는 슬슬 늘어간다. 무엇보다 월간 <전라도닷컴>의 휴식은 새해 1월부턴 끝내야 한다. 또 문제는, 돈이다. 어디 든든한 후원자 없을까….
“여태껏 고관대작 인터뷰 한번 안 할 정도로 상업성에 물들지 않고 순수성을 지켜 왔다. 힘 있고 돈 있는 사람과 거래를 안 했으니까 이만큼 온 것이다. 그들과 거래해서 <전라도닷컴>을 낸다는 건 안 내는 것만도 못하다. 독자들의 힘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물론 온전히 독자들에게만 기대겠다는 말은 아니다. 7명의 직원들은 지금 자기 기사 쓰는 것은 물론 자동이체 후원자도 모아야 한다. 밥은 사무실에서 해먹고 저녁엔 독자들에게 보낼 봉투작업까지 해야 한다.
사실상 제2의 창간을 앞두고 있는 <전라도닷컴>. 황 편집장은 “<전라도닷컴> 나름의 색깔과 정체성은 유지한 채 현재의 삶을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 전라도 젊은이들의 얘기를 많이 들려주고 싶다”고 한다.
사정을 전해들은 박원순 변호사는 “우리 사회가 건강하다면 이런 잡지 하나는 가질 수 있어야 한다”고 안타까워한다. 박 변호사는 “향토잡지 <전라도닷컴>은 계속 되어야 한다”며 “이제 나부터 빈 주머니라도 털어보아야겠다”며 “작은 힘들을 모아 이런 잡지 하나는 살려보자”고 호소하고 있다.
그대, 행복하게 주머니 한번 털고 싶지 않은가?
2007.12.03 19:53 | ⓒ 2007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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