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장손이 붉은 팟고물을 떼어 먹겠다 야단입니다.
윤희경
다음엔 떡을 접시에 담아 집안을 한 바퀴 돌며 여러 신에게 골고루 고사를 올립니다. 조상을 보호해 주는 조령신, 부엌을 지키는 조왕신, 집터를 다스리는 터줏대감, 자손 건강을 돌보는 삼신, 대문에 문신, 우물에 용왕 신 등.
어릴 적 이제나저제나 고사가 끝나 떡 맛을 보나보다 싶으면 어머닌 떡 심부름을 다녀오라 시킵니다. 고사 떡은 이웃과 나눠 먹어야 한다며 ‘냉큼 도르고 오라’ 등을 떠밉니다. 심부름이 다 끝나 허기가 질 무렵이면 눈처럼 하얀 멥쌀 떡과, 시린 동치미 국물, 붉은 팥 고물을 떼어먹던 추억이 어제처럼 어슴푸레합니다.
난, 고사를 지내지 않지만 요 며칠간 이웃집들이 나눠 준 고사떡 먹는 재미가 여간 쏠쏠하지 않습니다. 접시 대신 비닐봉지에 쌓여온 시루떡은 대개 김이 모락모락 나고 따끈따끈한 온기 그대로입니다. 그 따사로운 감촉이 하도 좋아 가슴에 안고 그 옛날 어머니의 훈기를 맡아내는 일 또한 행복한 순간입니다.
비닐봉지를 열면 대개 메떡 세 편, 찰떡 두 편이 들어 있습니다. 메떡을 들다 찰떡을 먹고 찰떡을 먹다 메떡을 떼어먹습니다. 이 떡을 만든 정성과 사랑을 생각하면 떡고물 하나 버리기가 아깝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