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하늘이다

가슴으로 세상을 내려다 봤던 장애우들의 연실봉 등정기

등록 2007.12.05 12:13수정 2007.12.05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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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봉주

 

장애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사회적인 차별과 편견은 물론 기본권인 행복추구권에서조차 소외받을 수밖에 없는 제도적인 제약 속에서 지난한 삶을 살아가야 하는 장애인들과 함께 험난한 산악을 오르면서 그들이 세상을 살면서 당하는 고통과 좌절이 얼마나 고단하고 뼈아픈 것인지를 몸소 체험하고 이해함으로써 장애인 복지향상에 대한 사회적인 합의를 도출해 내는데 힘을 더하고자 공기업인 영광원자력본부와 민간단체인 새마을운동영광군지회 가족들이 ‘함께 걷는 행복의 길’이라는 주제로 장애우등반대회를 개최하였다.

 

더불어 장애인들에게도 좌절하지 않고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떳떳하게 자신의 미래를 개척해 갈 수 있다는 자신감과 강인한 의지를 길러줄 뿐만 아니라 장애는 계층을 구분 짓는 잣대가 아니며 세상은 절대 혼자가 아닌 외롭지 않고 살 만한 곳이라는 아름다운 인간승리를 보여주고자 기획된 산행이다 -저자 주-

 

야, 하늘이다! 해발 516m의 불갑산 연실봉 정상. 지적(知的) 장애와 신체 장애를 같이 안고 있으면서도 연실봉 정상에 발을 들여 놓았던 정은이는 하늘을 끌어안을 듯 두 손을 크게 벌리고 서서 쾌재의 함성을 질렀다.

 

발 아래 납작 엎드린 저 아래 세상을 내려다보며 마치 세상을 호령하는 듯한 장군의 기상이었을까? 뒤이어 가쁜 숨을 몰아쉬며 차례로 정상을 밟은 장애우들도 ‘우리가 해냈다’는 자부심과 뿌듯함에 젖어 잠시 말문을 놓은 채 발아래 펼쳐진 세상을 한없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지난 달 30일 '함께 걷는 행복의 길'이라는 주제로 한수원(주) 영광원자력본부(본부장 이심교)가 주관하고 민간봉사단체인 새마을운동영광군지회(지회장 김원판)에서 후원한 영광군 장애인 등반대회가 영광군 명산으로 알려진 불갑산 연실봉에서 거행되었다.

 

한겨울의 찬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하는 쌀쌀한 날씨 속에서 진행된 이날 행사는 주관사인 영광원자력본부 직원 30여 명과 민간봉사단체인 새마을운동영광군지회 남녀가족 20여 명이 장애인 복지시설인 ‘해뜨는 집’에 거주하는 20명의 지적, 신체적 장애인들과 함께 산에 오르는 말 그대로 ‘함께하는 행복한 산행’이었다.

 

특별히 이 행사를 격려하기 위하여 산업자원부의 노영식 사무관과 한수원 본사 송재철 지역협력실장을 비롯한 직원 10여 명이 새벽부터 서울을 출발해 참석하는 정성을 보이기도 했다.

516m의 연실봉 정상 정복을 목표로 세운 장애우 등반대원(?)들은 천년 고찰인 불갑사 주차장에서 기념촬영을 하며 기어이 해내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오후 12시 30분. 장애우들을 격려하는 간단한 기념식이 이어지고 산자부와 한수원, 영광원전에서 장애우들의 복지를 위해 써 달라며 직원들이 정성들여 마련한 성금이 전달되었다.

 

이어 3인 또는 4인으로 팀 구성을 마친 대원들은 공터에서 이날의 험난한 여정을 해쳐가기 위해 준비운동을 했다. 준비운동이 끝난 후 서로 돌아가며 어깨를 주물러 주고 등을 두드리면서 벌써부터 장애우와 자원봉사자로 구성된 팀원들은 한 몸이 되어 있었다.

드디어 사회자의 출발 신호에 맞춰 모두 힘차게 출발했다. 호기심과 기대감으로 콧노래가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장애우들이 산을 오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평탄한 산길이 끝나고 오솔길로 이어지는 돌밭 오르막 길. 앞이 보이지 않는 김수민씨는 양쪽에서 자원봉사자의 부축을 받으며 힘겹게 자신과의 싸움을 벌여야 했다.

다리가 저려오는 고오순씨는 그만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그러나 자원봉사자들은 최소한의 도움만 주기로 미리 약속이 되어있었다. 등반대는 오래 가지 못하고 중간 중간에서 휴식을 취해야만 했다. 그럴 때는 어김없이 장기자랑이 이어졌다.

 

노래는 단연 정은이를 따를 사람이 없었다. 송대관, 태진아의 노래가 이어지고 효리의 노래도 흘러나온다. 사방에서 앵콜이 터져 나왔으며 얼마 후에는 앵콜이 없어도 마이크 대용으로 사용한 메가폰을 내려놓지 않는 열정도 보인다. 대원들은 서로 어울러 춤을 추고 박수를 치면서 잠시동안 피로를 잊는다.

 

그러나 마냥 휴식만 취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고지가 눈앞인데 예서 말 수는 없는 일이다. 다시 일어나 산행을 시작한다. 몇 발자국을 옮겨놓자 이곳저곳에서 실랑이가 벌어지고 있었다. 더 이상 못가겠다며 주저 앉아버린 몇몇 장애우들을 달래느라 봉사자들은 가슴을 태우고 있었다.

다리가 많이 불편한 장애우는 기어히 봉사자의 등에 업히고야 말았다. 또 다른 쪽에서는 다리를 주물러주고 힘을 내라고 맛난 귤도 까준다. 이렇게 다시 시작한 산행. 지친 발길을 무겁게 옮겨놓던 장애우들의 휴식이 자주 이어진다. 그래도 한 장애우는 봉사자의 손을 잡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로 꽃을 피운다.

 

눈이 잘 보이지 않는 장애우를 부축해가는 봉사자도 지쳐가는지 속도가 많이 떨어지며 터덕거린다. 한 대원이 다가가 “수민씨는 산 정상에 올라가도 산 아래가 잘 안 보일 텐데!”라고 하자 그가 화를 낸다. 발음이 정확치는 않았으나 앞뒷말을 맞춰 유추해 보면 “당신들은 눈으로 세상을 보지만 나는 마음으로 세상을 본다”며 항변하고 있었다.

순간 한방 크게 얻어맞은 듯 말을 붙인 대원은 지금까지 가졌던 장애우들에 대한 편견을 크게 반성하고 있는 듯 했다. 중간중간 땅바닥에 주저앉아 장애우들의 발을 주무르는 팀들이 늘어난다. 메가폰을 쥔 리더가 거꾸로 내려오면서 정상에 다 왔다며 나폴레옹 흉내를 낸다. 그 험한 길을 업혀서 가는 사람, 몸부림을 치며 바윗길을 기어오르는 장애우, 그러나 일곱 명은 결국 정상정복을 포기하고 하산을 하고 말았다.

 

드디어 정상, 땀으로 범벅이 된 정은이가 두 팔을 벌린 채 큰 소리로 외친다.

"야, 하늘이다."

 

높은 산에 올라와 볼 기회가 없었던 정은이에게 연실봉 정상은 말 그대로 하늘이었던 것이다. 항상 올려다만 보고 살았던 세상, 그 세상을 발아래 굽어보는 정은이의 표정에는 만감이 교차하고 있었다.

 
a 정상에서 행복한 함성 장애인과의 하나가되는 날입니다.

정상에서 행복한 함성 장애인과의 하나가되는 날입니다. ⓒ 고봉주

▲ 정상에서 행복한 함성 장애인과의 하나가되는 날입니다. ⓒ 고봉주

뒤이어 올라오는 장애우들과 봉사자들은 서로 손을 잡고 부둥켜안았다. 눈이 잘 보이지 않는 수민씨는 잠시 고개를 돌려보더니 이내 하염없는 눈물을 흘렸다. 발아래 펼쳐진 세상을 마음으로 바라보았을까? 20명 중 모두 13명의 장애우가 정상을 밟았다.

 

해발 615m 정상. 일반인들에게 별것 아닐지 모르지만 장애우들에겐 멀고도 먼 험난한 길이었다. 모두 정상 바닥에 주저 앉았다. 정상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봉사자들이 대신 짊어지고 간 간식으로 허기진 배를 채웠다. 또 한 번 어깨를 주무르고 토닥이며 서로 격려를 하는 진한 동지애가 펼쳐진다.

 

얼마간의 휴식 후 다음 순서는 관광안내도 제막식이었다. 자신들의 소원을 담아 허공 높이 날려 보내려던 계획은 준비가 덜 되어 취소되었다. 장애우들과 봉사자들은 안내 간판에 길게 걸린 천을 모두 함께 잡았다. 자신들도 지역발전을 위해 무엇인가 할 수 있다는 강한 메시지를 세상에 전달하기 위해 주관단체와 후원단체의 협력을 받아 지역의 관광지를 홍보하는 안내 간판을 정상에 세우게 된 것이다.

구령에 맞춰 줄이 당겨지고 드러난 안내간판의 멋진 모습에 모두가 힘찬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잠시 여흥의 시간이 이어졌다. 이번에는 장애우들 모두 나서 제 나름의 춤과 노래실력을 뽐낸다. 그동안의 피로가 싹 풀리는 순간이다.

 

모두 정상을 정복한 기념으로 기념촬영을 했다. 더 머물고 싶어 했지만 짧은 겨울 해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어 하산을 해야만 했다. 하산하는 길은 올라가는 길보다 훨씬 더 어려웠다. 다리가 풀린 장애우들이 곳곳에서 주저앉고 만다. 난감해 하는 자원봉사자들의 모습들이 보인다.

그러나 이런 고통쯤 이겨내지 못할 장애우들이 아니었다. 풀려서 비틀거리는 다리를 겨우겨우 봉사자들에게 의지하며 가파른 길을 내려간다. 생각 같아서는 업어주고도 싶지만 모두가 말린다. 나도 할 수 있다는 의지를 심어주자는 것이었다.

 

뒹굴고 넘어지고, 그래도 장애우들은 굳굳하게 버텨 주었다. 양 옆에서 부축해야 하는 봉사자들에겐 오를 때보다 두 배로 힘이 들었다. 드디어 가파른 내리막길이 끝나고 평탄한 길이 나왔다. 원자력본부 산악팀들이 다리가 풀린 몇몇 장애우들을 업고 내려온다.

동백나무가 많다는 동백골과 비단 잉어가 노니는 저수지를 지나 드디어 출발지인 주차장에 도착했다. 천년고찰 불갑사의 풍경소리가 모두를 반겨주고 있었다. 장애우들의 얼굴은 우리도 해냈다는 자부심과 뿌듯함으로 한껏 상기되어 있다.

 

‘함께하는 행복한 걸음’ 장애인 등반대회. 해발 516m, 험난한 연실봉을 정복한 장애인 등반대회는 겨울의 짧은 해가 서산마루에 얹힐 무렵 아쉬운 작별을 고하는 오랜 포옹과 손 인사를 끝으로 성대한 하루 일정을 마쳤다.

2007.12.05 12:13ⓒ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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