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살 지야의 위탁부모인 강선자 씨 집을 들렀다. 외관은 서민아파트지만, 전망이 좋다.
부두와 바다가 내다보였다.
“우리집은 가만히 있어도 뱃고동 소리가 울리고, 밤에는 크루즈선이 지나가고, 또 부경대가 우리 앞마당이거든. 잠옷 입고도 산책하러 가요.”
강선자씨는 밝은 사람이었다. 베란다에 섰다.
“저기가 대학 후문이에요. 우리 지야도 예사로 산책 나가요.”
아이는 어린이집에 가 있었다. 지야는 지난해 7월에 왔다고 한다.
“누구나 이런 생각을 하잖아요. 불쌍한 애들 지나갈 때, 내가 나중에 형편 되면, 하나 키워줄 수도 있겠다…. 인연인 거 같아, 지야가 우리집에 오게 돼 있었던 것 같은…. 처음에는말을 못해서 벙어리인 줄 알았어요. 네 살인데도 기저귀를 차고 걸음도 잘 못 걷고…. 먹는 걸 많이 욕심 내대요. 과자는 뜯어먹을 줄 모르고, 늘 김치 주세요, 김치, 그러대. 제일 기억에 남는 게, 따뜻한 걸 못 먹어요. 뜨거운 정도가 아니라 따뜻한 걸. 아주 난리였어요. 음식 욕심은 많아 뭐든지 지야꺼, 지야꺼…. 그래서 마트 가서 과자를 봉지 봉지 사줬지. 안고만 있더니만 겁나게 먹더라고요. ‘괜찮을라나?’ 싶을 정도로 먹어요. 그것도 얼마 안 가대. 삼사 일 지나니까 지야꺼 하면서도 살살 밀어놓더만…. 요즘은 과자를 본 체 만 체도 안 해요.”
“다리가 약하고 걸음걸이가 안 좋아서 매일 부경대로 데리고 갔어요. 가면, 동네 아줌마들이 운동하러 와요. 지야, 우리 지야, 하며 다 좋다고 안아줘요. 우리 나이 때는 지야 같은 애는 다 예뻐. 손이라도 잡아보고 싶어 다들 지야를 만지고. 요즘은 습관이 돼 저녁밥만 먹으면 ‘한 바퀴 하러 가자’ 해요.”
아이는 잠잘 때 자란다지만, 지야는 저녁 산책 때마다 자란 것 같다.
“군대 다녀온 아들이나 공부하는 딸이나 참 무난하게 키웠어요. 지야도 똑같이 잘 클 거란 생각밖에 없어요. 시집 갈 때까지 돌볼 것을 각오하고 있어요.”
여러 골치 아픈 상황을 상상할 수 있을 텐데, 미래에 대한 신비로운 믿음이 있다.
“얼마나 변했는지 몰라. 벙어리 같던 애가 지금은 엄청 시끄러워요. 잘 때까지 시끄러워요. 할 말이 없으면, 노래라도 부르며 돌아다녀요.”
어린이집에서 돌아온 지야를 보았다. 눈이 새까맣고, 동작이 빠르고, 팔팔하게 에너지를 뿜어내는 아이였다.
이튿날 오후, 장필남 씨 집으로 갔다. 우리는 집 마당을 보고 놀랐다. 재래시장 옆의 2층 주택인데, 채소와 꽃과 풀이 가득 자라고 있었다. 아이는 어린이집에 가 있었다. 이윤미씨는 “민이는 밤톨같이 생겼어요” 하고 말했다. 사진 속의 아이 얼굴은 하회탈 같았다. 떡과 과일과 전이 펼쳐졌다.
“풍성한 가을이니까 많이 잡수소.”
장필남 어머니는 코미디언 같았다. 요즘 개그맨의 세련된 토크는 아니지만, 또래 아줌마들은 배를 잡고 넘어갈 농이 연신 나왔다. 집 이야기부터 한다.
“이사온 지 1년 좀 넘었어요. 진짜 우리집은 거제도에 있고, 여기는 아이들 때문에 살고요. 마당 좋지요? 내가 이 동네에 오래 살았어요. 20년을 살다가 3년 전에 집 팔고, 고향 거제도에 집 사놓고, 이렇게 전세도 살아보고. 남의 집 사는 것도 재밌네요. 20년을 갇혀 살다가 마당 있는 집 살아보고, 주인은 우짜든지 오래오래 살다 가라 하고, 남의 집이라 세금 안 내서 좋고.”
어감을 못 살렸지만, 어머니의 모든 말에 음(音)처럼 농이 흘렀다. 이 정겨운 여인 밑에서 민이가 살고 있다.
결혼식을 올리지 못한 채 민이 친아빠는 군대에 갔고, 젊은 엄마는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다. 홀로남겨진 민이는 가정위탁지원센터에 왔다.
“나는 아이 키우는 게 참 즐겁대예. 뭣보다 우리 아저씨가 좋아하고. 일 마치고 딱 잔소리를 할라꼬 집에 들어오시잖아요. 큰아들은 만날 늦게 오고 집에 사람이 나밖에 없다가 민이가 있으니까 애한테 엎어져 갖고 좋아 죽는 거라. 예쁜 짓을 많이 해요. 애도 아빠한테 딱 붙어가지고…”
듣건대, 더없이 명랑한 가정위탁집이다. 이미 한 아이를 몇 개월 맡아 키워 보냈고, 민이는 두 번째라고 한다.
“이런 아이들 특징이, 내가 자리를 비우면 안 되는 거라. 두려움이 많아요. 말은 안 해도 진짜 엄마 아빠가 없다는 걸 알아. 아이를 항상 사랑해주고 좋다 해줘야 해. 하는 행동이 불편하고 버릇이 좀 어떻다 해도 다 터치하면 상처를 받아. 남들이 아이를 왜 그리 키우노 캐도, 다 크는 과정이다, 크니까 괜찮더라, 마, 사랑으로 다독거려줘야지, 질서 잡겠다고 스트레스 주면 안 돼요. 아이가 자유롭도록 해줘야 해.”
집 마당으로 나왔다. 포도, 배추, 열무, 메밀, 알로에, 토마토, 깻잎, 국화, 개나리…. 민이는 이 집 마당의 녹색들과 잘 놀았던 것을 커서도 기억할 것이다. 이 집 아이는 걱정할 게 없을 것 같다. 민이 아빠가 제대하고 엄마랑 결혼 할 때까지 세월만 기다리면 된다.
“거짓말도 엄마 사랑 받고 싶어서 하는 거죠”
최현자씨는 강한 어머니였고, 강선자·장필남씨는 명랑하고 유쾌한 어머니였다면, 문순옥씨는 더없이 신중한 어머니라고 할 수 있었다. “시행착오 중이고, 아직도 어렵기만 해요” 하고 그는 말했다. 양이는 일곱 살이다. 10개월 전에 왔다.
“제가 신앙이 있으니까, 사회복지 쪽에 관심이 있거든요. 성격이 내향적이라서 밖에 나가서 전도는 잘 못해도 한 사람의 영혼을 위해 기도해줄 수 있으면, 이건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닌가 해서요. 위탁부모 이야기는 텔레비전에서 처음 봤고, 시작할 때는 사랑만 있으면 되겠지, 마음 주면 오는 게 있겠지 우리 애들을 수월하게 키운 편이라 잘되겠지 했는데…. 양이가 딱 여섯 살, 일곱 살이니까 반항기가 있을 땐데, 키워보니까 힘에 좀 부치더라고요. 굉장히 활발하고, 외향적이고, 가만히 안 있고, 놀아도 엄청 어지럽게 놀고…. ‘24시간 어린이집’에서 4년을 갇혀 살았다니까, 밖에 나가 노는 걸 좋아하고, 밤늦게 깜깜해졌는데도 아파트 주위를 돌아다니고. 처음에 통제하기가 힘들었어요.”
양이 친엄마는 가출했고, 가난한 아빠는 생업전선에 나가 있고, 기독교인 고모가 보살피다가 기독교인 위탁가정을 찾아 이 집에 온 것이었다. 내후년에는 친가정으로 돌아갈 예정이다.
“양이는 보통 아이들보다 말이 좀 과해요. 정서불안이랄까, 쓸데없는 걱정을 많이 해요. 엄마, 이 집이 무너지면 어떻게 해? 도둑이 들어오면 어떻게 해?”
친아빠가 따로 있는 것을 양이도 아는데, 문순옥씨를 엄마라 한다. 아니 ‘24시간 어린이집’에서도 엄마 아빠라 부르는 사람이 있고, 문순옥씨 부부를 지금 엄마 아빠라 부르고 있고, 그러니 친아빠는 세 번째 아빠가 되는 셈이다.
“처음에는 큰엄마라 하더니, 엄마 하고 처음 부를 때… 참 신기한 일이죠. 피도 한 방울 안 섞였는데, 엄마, 아빠라 한다는 게…. 제가 종교가 있으니까, 하나님도 우리 부모인데, 아, 하나님도 이런 마음이겠구나, 느끼죠. 양이한테는 되도록 긍정적으로 말해주죠. 양이를 키워주는 사람이 엄마다, 어린이집 엄마도 있고, 친엄마도 있고, 지금 엄마는 널 키워줘서 엄마다, 엄마는 많을수록 좋은 거란다….”
양이의 좋은 점, 미운 점을 말해달라고 했다. “좋은 점이 더 많아요. 밝아요. 좀 단순하다 해야 할까, 좋으면 굉장히 좋고, 조금만 맘에 안 들면 잘 삐치고. 장난을 좋아하니까 때로 우리한테 엉뚱한 기쁨을 줘요. 미울 때야… 말 안 들을 때.” 거짓말을 하기도 한단다.
“자기가 그렇다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실제처럼 말해요. 어떨 때는, 어린이집에서 눈을 다쳐가지고 아팠다는데, 나중에 알고 보면 아닌 거죠. 엄마 하고 얘기하며 엄마 사랑, 관심을 받고 싶어서 그러는 걸까 싶어요.”
밤에 문순옥씨가 동화를 읽어주고, 그걸 들으며 잠이 드는 걸 좋아하는 양이. 스케치북에 그린 아이의 그림을 감상하고 집을 나왔다.
위탁가족도 또 하나의 가족이다
강진희 소장과 점심을 먹었다.
“요즘은 가족이란 의미가 무색해졌어요. 엄마 아빠 있고 자녀들 있고, 이걸 가족이라 생각했는데, 그룹홈도 가족이고, 혈연 없는 위탁가정도, 또 입양도 가족이고, 혼자 사는 싱글족들도, 소수 동성애자들도 가족이고…. 모두 어울려 사는 것이거든요. 위탁가정도 수많은 가족 중 하나로 봐주는 인식 변화가 필요하겠죠. 남의 아이지만, 우리 사회의 아이로 안아줬으면 해요.”
엄마는 많을수록 좋은 거다, 문순옥씨의 말이 오래 남는다. <예비 위탁부모 교육>이란 책자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아동을 양육하는 데는 한 마을이 있어야 할 정도로 많은 자원이 필요합니다. 아동기에는 애정이 가장 중요하고, 부모와 가족 뿐 아니라 지역 사회 및 국가의 사랑도 요구됩니다.”
부모와 가족, 사회와 국가가 아이들에게 줘야 할 것은 곧 사랑이다. 엄마가 많을수록, 즉 사랑이 많을수록 좋다.
장필남씨의 정겨운 마당도 어떤 의미에선 ‘사랑 또는 엄마’가 아닐까. 하늘과 비와 태양도 생명의 자라남에 그런 역할을 하고 있고,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서로에게 사랑을 주고 사는 고도 신뢰사회는 진정 엄마가 많은 사회일 것이다. 시련 속의 모든 생명, 위로 잘 자라고, 뿌리는 깊이 내려라.
덧붙이는 글 | 김곰치 님은 르포 산문집인 <발바닥, 내 발바닥>을 펴냈다.
2007.12.10 15:43 | ⓒ 2007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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