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네 한옥은 자연을 닮았다고들 합니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가능한 한 그것에 순응하고자 하는 정신. 사람이 자연같은 집을 지어 살다가 그가 죽어 자연으로 돌아가면 그 사람을 품어안고 살던 집 또한 자연의 품으로 그대로 돌아가는, 말하자면 사람과 집과 자연의 삼위일체가 우리네 전통 한옥이 아닌가 싶습니다.
위의 그림은 천년고찰 화엄사의 부속암자인 구층암의 모습입니다. 어느 익살스런 스님의 아이디어로 탄생되었음직한 이 집은 가운데 기둥 두 개를 자연 그대로의 모과나무로 세웠습니다. 건축주의 의도를 잘 간파한 목수 또한 재치있는 솜씨로 집의 정 중앙에 이런 파격적인 배려를 하였는데 기술적으로 보면 반듯한 기둥보다도 훨씬 작업하기가 힘들었을 것입니다.
충남 서산에 있는 개심사 범종각입니다. 이 집을 지을 당시에 이만한 크기의 기둥 네 개를 못구해서 이렇듯 휘이고 비틀어진 못난 나무로 집을 짓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밑에서 갑자기 휘몰아쳐 오는 강한 돌풍을 제멋대로 생긴 기둥 네 개가 그 힘을 각각 따로 받아 에너지를 분산시킴은 물론이고, 자연 그대로의 무질서한 형상을 은근히 내부로 향하게 하여 안쏠림 공법의 효과를 내고 동시에 자연을 닮은 집을 짓고자 하는 의도를 엿볼 수 있습니다.
위의 사진은 제주도의 강운봉 가옥입니다. 화엄사 구층암과 마찬가지로 집의 중앙에 있는 기둥이 특이한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나무를 베고 껍질만 벗긴 자연상태 그대로인데 기둥의 아래보다도 윗쪽이 더 굵습니다. 말하자면 기둥을 거꾸로 세웠다는 이야기인데 왜 그랬을까요? 예나 지금이나 나무를 거꾸로 세우지 않는 것이 목수의 기본이요 철칙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둥을 거꾸로 세운 것은 아마도 이 집이 지어질 당시 제주도에 목재가 귀했을 것 같습니다. 기둥을 제대로 세우면 기둥의 상부에서 도리와 보가 지나가는 장부를 제대로 딸 수가 없기 때문에 철칙을 차라리 무시하고 나무를 거꾸로 세워 도리와 보를 잇도록 한 것입니다. 용재의 기본 법칙을 무시한 이상 그 배치 또한 과감하게 툇마루 한 중앙에 그를 세워 뭇사람들의 시선을 받고 손때를 묻히게 함으로써 극과극이 서로 통하게 하였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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