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하라, 문학이 있는 목요일이여!

-포항문예아카데미10기『2007문학이 있는 목요일』(삼우애드컴,2007)

등록 2007.12.12 21:25수정 2007.12.15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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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사람과 경제는 물론 사회·문화 전 분야가 서울로 집중되어 있다. 문학도 그 예외일 수는 없다. 서울에 비해 지역 문학은 거의 빈사 상태에 처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역 문학이 처해있는 이러한 현실 속에서 '포항문학'의 선도적인 역할은 오랫동안 그 주목을 받아왔다. 지역의 문학에서만이 아니라 서울 유수의 문학지에서도 그것을 인정하는 바이다.

'포항문학'은 지난 28년 동안 기관지 '포항문학'을 한번도 거르지 않고 발간해왔고, '포항문학'을 통해 지역의 여러 문제들(노동, 환경, 종교, 정치 등)을 좌담과 세미나, 논문 등의 형태로 충실히 담아내고 또 올곧은 문학적 형상화의 성과를 이뤄냈다. 또 '포항문학'은 올해부터 발행인 김만수 시인을 중심으로 하여 연간지 '포항문학'을 상반기·하반기 형태로 펴내는 잡지 반년간지를 펴내는 성과를 이뤄냈다.


‘포항문학’에서 또 하나 주목해야 할 것은 부설 ‘포항문예아카데’(원장 하재영)의 성공적인 활동이다. 문학을 좋아하는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시민문예대학 강좌 형태인 ‘포항문예아카데미’는 올해로 10주년을 맞이했다. 얼마 전 10기를 졸업시키고 그 문집인 '2007문학이 있는 목요일'을 발간했다. 회장 김영권 씨를 비롯한 29명의 회원들이 1년 동안 배우고 익힌 작품들이 오롯이 이 문집에 담겨져 있다.

‘문학이 있는 목요일’은 그 수업 강의가 매주 목요일 저녁마다 이뤄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포항의 대표적 풍광인 포스코와 송도바닷가를 배경으로 한 이창연 화가의 아름다운 그림을 표지로 하고 있는 '2007문학이 있는 목요일'을 펼쳐본다.

녹음방초 우거진 유월이렸다/경상도 관찰사 시찰 나섰다가/청하현 이르러/경북팔경 내연산이 코앞에 지척이라/어찌 아니 들릴소냐//청하현감 앞세우고/연일현감 뒤세우고/하인 등에 주포과일/젊은 기생 몇 추려서/휘적휘적 오르는데//기린초 인동초 저 좀 보라 손 흔들고/쌍생폭 기화담 눈길마다 절경이라/잠룡폭 올라서서 선일대 바라보니 신선이 따로 없네/감로담에 발 담그고/한 순배 들이키니 가무가 빠질쏘냐//기생 달섬이 나풀나풀 춤을 추니/비하대 내려 온/네가 바로 학이로다/경치 좋아 취하고 춤 좋아 몽롱하다//석공 시켜 이름 석 자 바위에 새기니/이를 보던 달섬이년/엉덩이 살랑살랑 콧소리 흥흥/옷고름 입에 물고 이년도 새겨 달라 졸라대니//내연산 삼백예순/바위에 새겨진 이름 중에 홍일점으로/후세에 남았구나

포항문예아카데미10기 김재문 회원의 시 '달섬이'라는 작품이다. 시를 써보기는커녕 시집도 한두 권을 읽어 본 게 전부라는 사람이 8개월에 걸친 포항문예아카데미 수업을 통해 이런 작품을 써내다니 그저 놀랍기만 하다. 시 쓰기 공부를 갓 배운 한 시민에 의해 포항의 문화예술 이야기가 새로 하나 추가된 것만 같다.

하늘을 향해 자라나고 있는 보리를 보고서 “양지부터 청보리 꽃 피어/하늘에다 턱걸이 연습도 하고/바람 방향으로 메스게임도 하며/사는 법을 스스로 터득하고 있다”고 노래하는 김익수의「하늘보리」라는 시도 좋고, 이 빠진 그릇을 보고 “이 빠진 그릇 하나/어제는/멀쩡한 몸으로/밥이며/국이며/반찬이며/맛깔스레 담고 오더니/오늘은/상처 받은 몸으로/부엌 한 귀퉁이/바람소리만 휑하니 담고 있구나/내일은 햇살 드는 창가/접시꽃 닮은 네 몸 속/맑은 물 가득 어린 잎 띄워/아픈 몸/달매보면 어떨까”라고 적고 있는 이정란의 시 '그릇'이라는 시도 참 맛깔스럽게 예쁘다.


문집 '2007문학이 있는 목요일'에 수록된 상당수의 작품은 아직은 많이 미비한 것이 사실이다. 처음 써 보는 시, 수필이어서 자기감정 절제가 덜 되어 있고 제목 붙이기도 어색하지만 그 작품 하나하나가 모두 그들의 소중한 성과물이다. 이런 작품들을 쓰면서 자신의 삶과 이웃의 삶을 들여다보고, 또 반성하고 사랑하는 마음들을 만날 수 있는 것이니 어찌 아름다운 일이 아니겠는가. 이는 그들만의 것이 아니라 포항시민 모두의 기쁨이기도 한 것이다. 문집 '2007문학이 있는 목요일'에 수록된 작품 가운데 김철순의 시 '땡볕'과 신현린의 시 '허난설헌을 보았네'는 지금 당장 어느 문예지 신인상으로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빼어난 작품이다.

비온 뒤 땡볕에 붉은 지렁이
앞뒤 방향도 없는 굵은 선이 어디로 가야할지
몸 말리러 나온 길
먼 이국땅이다

꿈틀대는 선 위로
횟배 앓던 시절 포개어져
산토닌 한 알에 내장 생물 속 다 비워
보건부에 올라가던

양약이라곤 처음인 아이
샘가에 알약 두레박 다 비워도
혀 밑에 숨던 산토닌
철없는 세월이
늘 푸르기만 한데

누리한 과거 훌쩍 뛰어
사람답게 산다고 겉치레 요란해도
횟배보다 더 아픈
땡볕 지렁이 같은
우리들 자화상



-김철순「땡볕」전문.

한 여인의 생 유품으로 남아 박물관에 박제되었네 박제된 생 유품에서 복원되네 베틀 앞에 앉은 여인 있네 베틀에 묶여 수없이 만진 북 닳고 닳아 돛단배로 다듬어졌네 어디로든 가고 싶어 양 귀 뚫린 구멍에 시간을 꿰고 이승과 저승을 넘나드네 다섯 강을 거슬러 올라가면 실을 풀 듯 시상을 풀고 천을 짜듯 시를 짓는 허난설헌 있네 시는 천형이 되어 서낭당 새끼줄 두르듯 불행을 졸라 상처를 낳네 비통에 겨워 붓을 꺾고 시를 태워 부린 재 무덤가 떠돌다 검은 비로 내려 연못 넘치네 원혼을 먹고 오롯이 핀 연꽃 담장 밖으로 억겁의 생을 윤회하네 정 그리워 청사초롱 내건 여인네 되었다가 뜬금없이 매 맞고 밤새 베 짜는 여인도 되었네 그 여인 나에게로 왔네 한 생을 밝히기 위해 몇 겁의 생을 풀어야 할 유산을 가지고 시를 향해 가는 천형의 나를 보네

-신현련「허난설헌을 보았네」전문.
첨부파일
문학이 있는 목요일(10집).jpg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경북매일신문 '이종암의 책 이야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문학이 있는 목요일 #포항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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