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카로 접근하는 다이버항구가 없어 밀물에 다이버들이 방카로 가기위해 물속을 걸어 가고있다.
장호준
배 위에 올라가기 전에 B가 나를 한쪽으로 불렀다. 그리고 그는 주머니에서 비닐봉지에 싼 물건을 끄집어냈다. 눈처럼 흰 주먹만 한 조개였다. 개오지였다.
"이것 가져가세요. 이런 것 좋아하시잖아요. 미처 삶지를 못했는데 한국에 가시거든 바로 끄집어내서 조치를 하세요."그리고는 얼른 그걸 내 다이빙 가방에다 집어넣었다.
나는 그걸 가지고 와서 아파트의 베란다에 내어놓곤 까맣게 잊었었다. 그러다 어느 날부터인가 온 집안에 고약한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무엇이라 표현하기에도 어려운 냄새였다. 하여간에 이 세상에서 그토록 고약한 냄새는 없을 것이다. 며칠을 냄새의 근원을 찾지 못해 끙끙거리던 식구들이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 온 집안을 다 뒤져 베란다 한쪽 구석에서 내용물이 썩어가는 개오지를 발견했을 때는 구더기에 쌓여 있었다.
개오지를 찾아서 맑은 물에 말끔히 씻어도 그 냄새가 다 가시지 않아 개오지는 그 희디흰 눈부신 몸으로 다시 두 달간이나 베란다에서 이국의 바람을 맞아야만 했었다.
내가 열대지방 다이빙투어에 나가서 유일하게 관심을 두는 것이 있다면 이런 조개류이다. 물론 그것들은 이미 오래 전에 잡혀서 가공되어진 것들이다. 이런 조개들은 껍질에 묻혀 있던 세월의 흔적들이 깔끔하게 닦여나가 그 가치가 오히려 떨어지지만 우리가 손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은 그런 것뿐이었다.
그러나 개오지는 달랐다. 처음부터 희디흰 제 색깔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 껍질에 어떤 잡것도 묻어 있지 않았다. 눈처럼 흰, 눈부신 색깔을 자랑하고 있었던 것이다. 귀에 대면, 말할 것도 없이 바다의 소리가 들렸다.
B의 소식을 알게 된 것은 그로부터 일 년쯤 지난 뒤였다. 그즈음 나는 한 다이빙전문 잡지사에 글을 써오고 있었는데 서울에 올라온 김에 들른 거기서 B의 소식을 들었던 것이다.
"요번에 난 필리핀 사고 소식 들었어요?"
"무슨 사고인데요?"버릇대로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내 친한 친구이자 다이빙버디였던 Y와 다이빙 사부였던 S의 죽음 이후 생긴 버릇이었다.
이야기의 내용인즉슨 필리핀의 한 섬에서 다이빙시합이 벌어져 사람들이 죽었다는 것이다.
"다이빙 시합이라니?"그들은 탱크를 메고 무리하게 수심을 탔다는 것이다. 아마도 그들은 암암리에 다이빙 시합을 했을 것이라는 추측이었다.
"몇 미터나 들어갔는데?"
"백 미터나 들어갔다는데요."
"도무지 거기까지 왜 들어갔는데? 아니 다이빙 이론이 다 빠싹한 사람들 아니요?"숨을 쉬지 않고 수심을 타는 프리다이빙(영화 <그랑부루>에 나오는 다이빙)과 압축공기를 갖고 숨을 쉬는 스쿠버다이빙은 근본이 틀린다. 미 해군 잠수매뉴얼은 스쿠버다이빙의 한계 수심을 40미터로 잡고 있다. 사람에 따라서는 30미터만 내려가도 질소마취가 와서 더 이상 내려가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그들은 대체 거기까지 왜 들어갔을까? 다이빙이론이 그들을 비켜 가리라고 생각했을까? 물론 아직도 잠수의학이나, 잠수 생리학에서 우리가 모르는 부분이 많이 있다.
"그래 누가 죽었어?"
"B라 하던데……. 한 사람은 하체가 마비되었고……."
"B가 누구야?"내가 무심결에 물었다. 그러고 나는 깜짝 놀랐다. B는 내 기억 속에서 스위치만 누르면 금방 돌아오는 사람은 아니었다.
"제주도에서 교사를 하던 사람이라 하던데요."나는 B의 개인사를 모른다. 물론 내가 알고 있는 다른 사실도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없다. 그가 왜 다이빙에 집착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물론 나는 그가 다이빙으로서 자신을 나타내고 싶어한다는 느낌을 받기는 했다. 그 이후의 일도 모른다. 다만 또 하나의 인연이 마지막 희미하게 남은 불씨처럼 사그라졌구나, 하는 두렵고 쓸쓸한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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