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천교.창덕궁 금천교. 임금과 신하는 이 다리를 건너며 마음을 씻었다.
이정근
창덕궁으로 돌아온 세종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대비를 잃고 외로워 보이는 부왕의 모습이 눈에 밟혔다. 비어 있는 옆자리가 너무나 크게 보였다. 대비의 상중이지만 시간을 끌어서는 아니 될 것 같았다. 외로움이 병이 되어 몸져눕기라도 하면 큰일이다. 세종은 중전과 마주앉았다.
"중전! 아바마마께서 매우 적적하신 듯합니다."
"저 역시도 그렇게 보였습니다. 방법을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대비를 저승으로 떠나보낸 태종은 이직(李稷)의 딸 이씨와 이운로의 딸 이씨를 새로이 들였다. 이들은 공교롭게도 일찍이 홀로 된 33살 과부였다. 그러나 이들은 시녀일 뿐 대비 자리는 비어 있었다.
"대비마마의 상중이니 어찌하면 좋겠소?"
"전하께서는 잠자코 계시면 소첩이 알아서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시아버지를 장가 보내드리고 싶습니다공비도 이제 수줍은 새색시가 아니다. 대궐에 들어온 관록이 붙은 여인이다. 더욱이 대비가 없는 현재 내명부의 제일 큰 어른이다. 며느리가 시아버지를 장가 보내주겠다고 나선 것이다. 세종이 변계량과 조말생을 불렀다.
"중전이 대비전을 맞아들여 한다 하니 어찌하면 좋겠소?"
"훌륭하신 생각이십니다."
조말생이 찬성했다.
"대비가 이미 돌아가고 김씨도 나가 버렸으니 마땅히 상왕을 위하여 명가의 딸을 가려 빈(嬪)과 잉첩(媵妾)의 자리를 보충해야 될 것입니다."
변계량도 찬동했다. 이 무렵 경녕군을 낳은 효빈김씨는 궁에서 나가 있었다. 대소신료들이 풍양궁에 찾아가 대비를 모셔야 한다고 극력 주청했다.
"늙은이가 장가라니 당치않다."
태종은 불같이 호통 치며 반대했다.
"중전마마의 청이 간절하옵니다."
태종은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아찔했다. 아름다운 충격이었다. 며늘아기가 시아버지를 위하여 마음을 쓰고 있다니 고맙고 기특했다. 하지만 늙은 나이에 새 장가를 든다는 것은 뭔가 어색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