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을 나는 산수국 헛꽃의 모습.
안병기
북문(北門)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되는 지점을 통과해서 성안으로 들어선다. 오른쪽을 바라보니, 둥글게 푹 꺼진 부분이 눈에 들어온다. 아마도 봉수대(烽燧臺)가 있었던 곳인가 보다. 왼쪽엔 북벽이 있고, 오른쪽엔 남벽이 있다. 북벽은 등산로 가까이 위치해 있다. 허물어진 돌무더기가 수북이 쌓여 있는 북벽으로 내려간다.
1000년 세월, 그 풍찬노속을 온몸으로 견뎌내며 허물어지지 않고 당당히 서 있는 성벽을 바라보는 건 경이롭다. 저 성벽은 어떻게 시간의 덧없음, 제행무상을 훌쩍 뛰어넘어 버렸을까. 벌써 무너졌어야 마땅한 것이 여태 무너지지 않은 채로 있다는 것은 세상의 이치를 배반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차라리 무너진 성벽에서 시간의 따스한 실핏줄을 느낀다. 그 가느다란 실핏줄을 통해서 역사는 내게 무엇을 가르쳐주는가. 덧없이 흘러가는 시간은 목숨을 담보로 성을 공격하고, 성을 사수해야 했던 온갖 행위들을 부질없는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 부질없음, 그 허무함이 내 마음 안에서 연민의 감정을 불러 일으킨다.
간 밤에 조금 내렸던 눈이 돌을 덮고 있다. 봄에 이곳에 오면 산수국이 지천이다. 여기저기 산수국 헛꽃들이 남아 있다. 저대로 겨울을 나는 것이다. 고난의 역사가 점철된 성터에선 꽃도 덩달아 시련을 견뎌야 하는가.
전략적 중요성이 도드라져 보이는 지리적 위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