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천만' 치매노인 운전 막을 길 없나

치매는 운전면허 취소요건 해당 안돼...미·일 등은 노인운전 적격성 평가

등록 2007.12.21 15:12수정 2007.12.21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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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온통 사고 흔적투성이인 아버지차

온통 사고 흔적투성이인 아버지차 ⓒ 김혜원




“운전면허 시험장에 다녀와야겠다.”
“왜요?
“적성검사 받으라는 통지가 왔어.”
“어차피 운전 안 하실텐데 적성검사는 뭐하러 받으시려구요. 의사가 운전하시지 말라고 했잖아요.”
“의사 같은 소리하고 있다. 나라에서 면허를 해준다는데 뭐가 문제라는 거야? 운전할 거다. 내가 어디가 어때서 운전을 하지 말래?”


몇 년 전부터 손수운전을 하고 나가셨다가 사소한 접촉사고를 내는 일이 잦아지신 아버지.

커브를 돌 때는 맞은편 차선에 정지된 차의 앞부분을 들이받고, 주차를 하면서 옆에 주차된 차들을 긁어 놓기도 수차례, 도로에만 올라가면 과속을 일삼아 범칙금 고지서가 하루가 멀다고 날아오는 것은 물론 후진하다가 담을 무너뜨리기까지 하셨으니 치매진단 후에 아버지가 내신 크고 작은 사고에 대한 처리비만 합쳐도 새 차 한 대 값은 너끈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당신의 운전습관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며 손수운전을 고집하셨습니다. 전에 비해 사고가 훨씬 더 많이 나지만 모든 것이 상대방의 잘못이었다면서 핑계를 둘러대거나 가족들 몰래 합의금을 주고 마무리하기 일쑤였지요.

운전뿐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여러 가지 문제 행동을 보이시던 아버지는 심리검사와 신경과 검진을 통해 알츠하이머와 혈관성치매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는 진단을 받게 되었습니다.


잦은 사고와 길 잃어버리기가 결코 나이가 들어서 생기는 자연스러운 노화현상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병원 전문의를 통해 치매라는 진단을 받은 후에도 아버지의 손수운전에 대한 집착은 조금도 덜해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가족들 중 누군가가 당신의 차를 뺐어갈까 하는 의심에 자동차 키를 감추거나 걱정하는 가족들의 눈을 피해 몰래 운전하고 나가시는 등 집착이 더욱 강해지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20년 넘게 손수 운전을 하고 다니신 아버지는 늘 당신이 손수운전하는 것에 대해 자랑스럽게 여기신 분입니다. 당신의 회사 출퇴근은 물론 자식들의 등하교까지 책임져주던 아버지의 운전은 의미 있는 아버지의 또다른 역할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운전금지’라는 결정은 더욱 충격으로 와 닿았을 것입니다. 당신이 가족을 위해 혹은 당신 스스로를 위해 할 수 있는 중요한 기능 하나를 버려야 한다는 뜻이기 때문이지요.
a  진료를 받으시는 아버지

진료를 받으시는 아버지 ⓒ 김혜원



자식들은 그런 아버지의 집착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지만 나날이 위험천만해져가는 아버지의 운전을 보고만 있는 것 역시 무책임하다는 생각에 꾀를 내어 잠시 차를 막내사위에게 빌려 주는 것으로 해 두었습니다.

그렇게 차를 멀리하게 한 지 몇 달째. 갑자기 아버지에게 운전에 대한 집착을 강하게 불러 일으키는 사건이 생기고 말았습니다.

평소 우편물 챙기기를 좋아하시는 아버지의 수중에 운전면허 적성검사 통지서가 들어온 것입니다.

적성검사 통지서를 받아서 신이 나신 아버지는 당장이라도 면허증을 가지고 적성검사를 받으러 가야겠다고 하십니다. 막내사위에게 빌려준 차도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으니 가져와야겠다고 하십니다. 잊고 있던 운전에 대한 집착이 다시 생긴 것입니다.

가족들의 힘으로는 아버지의 운전을 더 이상 막을 길이 없기에 법적으로라도 위험한 아버지의 운전을 막을 길이 없을까 운전면허 시험장에 전화를 걸어 보았습니다.

치매라는 질병으로 인해 운전을 할 수 없을 만큼 인지와 운동기능이 떨어진 환자에게도 운전면허를 재발급해 주는지? 운전이 위험하다고 주치의가 진단한 환자인데도 면허증 재발급을 막지 못하는지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운전면허시험장의 담당자의 말은 의외였습니다.

“치매는 현행 도로교통법상 운전면허 취소 요건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법상에는 의사의 진단을 받은 정신병자, 정신미약자, 간질병자, 듣지 못하는 사람 (제1종 운전면허에 한함),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 그밖에 대통령령이 정하는 장애인, 그리고 마약, 대마, 향정신성의약품 또는 알콜중독자만 운전 면허가 취소 되는 것으로 나와 있구요. 치매는 해당되지 않습니다.”

치매 환자가 운전을 할 경우 분명한 위험요인이 있는 것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운전을 막을 방법이 아직은 현행법에 없기 때문에 치매노인의 운전방지는 오로지 가족들의 관심과 설득밖에는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치매환자인 아버지의 운전도 문제이지만 치매환자를 포함한 전체노인운전자들의 운전 역시 큰 주의를 기울여야 할 시점에 와 있습니다. 노인운전자들의 사고율이 해마다 증가해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올 초 발표한 도로교통안전공단의 자료에 따르면 2005년 65세 이상 운전자의 교통사고는 6111건으로 10년 전인 1995년에 1326건에 비해 360% 늘었으며 고령 운전자 교통사고는 전년대비 2003년 19.6%, 2004년 13.9%, 2005년 18.0% 등 매년 급증세를 보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고령 운전자의 사고유형(2005년 기준)은 차 대 차 사고 74.5%, 차 대 사람 18.8%, 차량 단독사고 6.7%였으며 법규위반별로는 안전운전 불이행 52.8%, 신호 위반 13.3%, 교차로 운행방법 위반 9.6% 등으로 노인운전자들의 운전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전체교통사고가 1995년부터 2005년까지 10년간 1.5% 감소한 것에 비하면 엄청난 증가가 아닐 수 없습니다.

a  재활치료실

재활치료실 ⓒ 김혜원



우리보다 먼저 고령화에 진입한 다른 나라의 경우를 눈여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미국과 일본의 경우 노인운전에 의한 교통사고 발생건수가 심각할 정도로 늘어나자 이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지난 2000년부터 노인인구가 많은 플로리다주를 시작으로 노인운전자들의 운전 적격성을 알아보는 UFOV(Useful Field of View) 테스트를 하고 있습니다. 이웃 나라 일본의 경우 역시 2002년 6월부터 노인운전자의 운전면허 경신 시 치매 유무와 인지능력판단검사를 실시해 적격자에게만 운전면허를 교부하는 등 노인운전자들의 교통사고 예방에 정부가 적극 나서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65세 이상 노인운전자에 대한 적성검사실시와 재교육에 대한 논의가 있긴 했지만 노인 차별과 보행권(운전권리) 논란에 부딪혀 법제화를 미루고 있는 실정입니다.

언제 국가적 차원의 대책이 마련될지는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오직 본인 스스로의 자율과 가족들의 설득과 이해만이 대책이라는 것이지요.

급속한 노령화가 진행되어가는 지금 노령운전자의 사고율 역시 같은 비율로 증가하는 것에 관심을 갖고 서둘러 대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노인들의 교통사고는 치명적 사고로 이어지기 쉬우며 그에 따른 개인적 손실은 물론 사회적 비용 역시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노인운전자에 대한 대책은 노령화 대책이기도 합니다. 빠른 시일 내에 노인운전자들의 운전적격여부판별과 노인운전자 재교육 법안이 마련되어 노인운전에 따른 사고를 줄여 나가야 할 것입니다.
#노인운전 #적성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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