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하는 자가 아름다울 수 있는 세상됐으면...

안성 농민회 고병국 회장의 농촌 이야기

등록 2007.12.22 10:50수정 2007.12.22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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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두막(?) 포도밭 끝자락에 세워진 자택은 흡사 그 옛날 원두막을 연상케 한다. 고병국 농민회장은 포도 서리를 당해도 좋으니 그런 아이들이라도 마을에서 보았으면 좋겠다는 씁쓸한 말을 해주었다.
원두막(?)포도밭 끝자락에 세워진 자택은 흡사 그 옛날 원두막을 연상케 한다. 고병국 농민회장은 포도 서리를 당해도 좋으니 그런 아이들이라도 마을에서 보았으면 좋겠다는 씁쓸한 말을 해주었다. 송상호

넓은 포도밭 끝자락에 위치한 그림 같은 목조 주택에는 안성 농민회 고병국 회장이 산다. 옛날 같으면 포도밭에 원두막이 있었건만 고씨네 포도밭은 아예 집이 들어서 있는 게다.


그 옛날 원두막이야 일하다가 더위 피하고 아이들 서리하는 걸 지키는 곳이었다만, 요즘 누가 원두막 지어 놓는 데가 있는가. 그냥 일하는 사람들이 쉬는 곳 정도의 나지막한 간이 집 정도가 아니었던가. 원두막이 시원하라고 높이 지은 것도 있지만, 서리꾼 감시도 큰 이유가 아니었던가. 

“솔직히 우리 포도밭 서리를 해갈 마을 아이들이라도 구경 좀 했으면 좋겠어요. 요즘은 아이들뿐만 아니라 마을 어른들도 보기가 힘들지요. 어른들도 농사짓는 것보다 직장에 나가거나 골프장 등에 하루 품 팔러 나가버리니 말이죠.”

17대 째 이 마을(안성 서운면 양촌리 동양촌)에 산다는 고 회장의 넋두리다.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건만 오늘따라 포도 서리를 해가도 좋으니 그런 마을아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이 가슴에 짠하게 와 닿는다.

“아 글쎄. 10년 전까지만 해도 농사지을 맛 낫지요. 그 때야 1년 농사지어서 수확하면 만족할 만큼의 소득도 따라오고, 사람들도 서로 교류하며 즐거웠었죠. 그런데 공교롭게도 10년 전 정권이 바뀌는 무렵과 한·칠레FTA 협정 체결 등이 맞물려서 농촌이 쪼그라들기 시작했지요.”

5년 전까지 담배 농사를 지었다는 고 회장 가족. 담배 농사를 지을 때는 아내와 함께 농사에 전념하며 나름 재미도 있었건만, 이젠 그것마저도 포기하고 집 앞에 있는 포도밭과 몇 천 평 논농사를 혼자서 짓는다.


그의 아내는 다른 곳으로 직장을 나가는 게다. 이런 식으로 가족이 찢어져서 ‘농사 반 직장 반’ 스타일의 농가는 이제 새삼스러운 이야기가 아니다. 농사만 지어서 밥을 못 먹고 산다는 이야기는 별로 새로운 게 아니라는 것. 

포도밭 근래 5년 동안 포도농사가 지독하게 안 되었다고. 자연환경 파괴로 인해 자연재해가 많아 포도농사가 어려웠다는 것이다. 사진은 고병국 회장의 자택 베란다에서 바라본 포도밭이다.
포도밭근래 5년 동안 포도농사가 지독하게 안 되었다고. 자연환경 파괴로 인해 자연재해가 많아 포도농사가 어려웠다는 것이다. 사진은 고병국 회장의 자택 베란다에서 바라본 포도밭이다. 송상호

“그래도 농사를 포기하지 못하는 것은 가을 추수 때의 기쁨 때문이죠. 그 맛을 누가 알겠습니까. 겪어본 사람만이 알죠. 그러다가도 소득이 양에 안 차면 갈등을 겪기도 하지만 그래도 수확의 기쁨이야 어디 가겠습니까. 그리고 이런 식으로 몇 년 만 버티다 보면 농가 인구가 줄어들어 농사꾼이 귀하게 대접받는 세월이 올 거라는 믿음 때문이죠.”


고 회장이 말한 수확의 기쁨이야 두 말할 것 없지만, 농사꾼이 줄어들어 귀하게 대접받는 세월이 올 거라는 것은 희망과 아픔이 교차하는 이야기다. 그러니까 결국 지금의 농부들이 농사를 포기하여 거의 10분의 1 정도 줄어들게 만들어 살아남은 농가를 대농으로 키운다는 정부정책이 밑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요즘 농부들은 공부해야 되요. 옛날처럼 농사만 지어서는 농사 못 짓지요. 한미FTA가 뭔
지, 그것을 왜 반대해야 하는지, 농촌이 살아남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을 체계적으로 공부하지 않으면 농사 못 짓지요. 정부만 믿고 있다가는 부채만 늘어나고 농업은 피폐되기가 일쑤니까요.”

이런 이유로 고 회장은 안성 농민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똑똑한 농민, 국제 정세에 밝은 농민, 자기 소리를 낼 줄 아는 농민, 때로는 투쟁도 할 줄 아는 농민 등을 이 시대가 요구하기 때문인 것. 그래서 안성 농민회는 ‘한미 FTA 반대 집회 참가, 농업 관련 세미나, 협동조합 개혁 교육, 통일 쌀 보내기 운동’ 등의 일들을 해오고 있는 것이다.

“농사  30년째지만 근래 5년만큼 농사가 안 되는 적도 처음 봤어요. 자연재해가 우리 농부를 버리더라고요. 가뜩이나 농사가 힘들어 논과 밭이 없어지는 추세인데. 자연환경이 그만큼 안 좋아진 탓일 겁니다. 이래저래 농민들에게 희망이 안 보여요. 이번 대통령 선거만 해도 12명의 후보 중 중소기업을 살리겠다, 비정규직을 해결하겠다는 등의 공략은 많이 내 놓지만 농업에 대해 제대로 된 정책을 내놓은 후보가 드문 걸 봐도 희망을 찾기란 어렵죠. 이 나라가 농업을 포기하려나 봐요.”

고병국 회장 우연찮게 고병국 회장이 앉은 자리 뒤로 '노력하는 자가 아름답다'는 글귀가 카메라에 잡혔다. 그의 딸이 써 놓은 문구란다. 그 문구대로 노력하고 노동하는 농민 들이 아름다울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고병국 회장우연찮게 고병국 회장이 앉은 자리 뒤로 '노력하는 자가 아름답다'는 글귀가 카메라에 잡혔다. 그의 딸이 써 놓은 문구란다. 그 문구대로 노력하고 노동하는 농민 들이 아름다울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송상호

이런 이야기들을 나누다 보니 고 회장이 앉은 자리 뒤에 ‘노력하는 자가 아름답다’는 글귀가 눈에 들어와 물으니 그의 딸의 작품이란다. ‘노력하는 자가 과연 아름다울까? 노력하고 노동하는 사람이 아름다울 수 있도록 허락하는 사회일까?’라는 부질없는 생각이 들지만, 고 회장은 딸이 써 놓은 그 문구처럼 노력하는 사람이 아름다울 수 있다는 끈을 놓지 않고 내년에도 포도밭 농사에 전념할 것이라고 확언을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인텨뷰는 지난 21일 고병국 회장의 자택(포도밭 옆)에서 이루어졌다.

*안성 농민회는 전국 농민회 산하 기관으로서 93년경에 창립되었으며 현재 안성에 100 여명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다. 그들은 ‘우리 땅에서 나는 먹을거리(쌀)를 지키는 것은 농민뿐만 아니라 우리 국민의 주권과 생명을 지키는 것이다’라는 주요 이슈 아래 농민 운동을 전개해나가는 단체이다. 안성 농민회 사무실의 연락처는 031-677-1338 이며 홈페이지는 nongmindl(농민들).net 이다.


덧붙이는 글 이 인텨뷰는 지난 21일 고병국 회장의 자택(포도밭 옆)에서 이루어졌다.

*안성 농민회는 전국 농민회 산하 기관으로서 93년경에 창립되었으며 현재 안성에 100 여명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다. 그들은 ‘우리 땅에서 나는 먹을거리(쌀)를 지키는 것은 농민뿐만 아니라 우리 국민의 주권과 생명을 지키는 것이다’라는 주요 이슈 아래 농민 운동을 전개해나가는 단체이다. 안성 농민회 사무실의 연락처는 031-677-1338 이며 홈페이지는 nongmindl(농민들).net 이다.
#안성농민회 #고병국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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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목사질 하다가 재미없어 교회를 접고, 이젠 세상과 우주를 상대로 목회하는 목사로 산다. 안성 더아모의집 목사인 나는 삶과 책을 통해 목회를 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문명패러독스],[모든 종교는 구라다], [학교시대는 끝났다],[우리아이절대교회보내지마라],[예수의 콤플렉스],[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자녀독립만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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