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두막(?)포도밭 끝자락에 세워진 자택은 흡사 그 옛날 원두막을 연상케 한다. 고병국 농민회장은 포도 서리를 당해도 좋으니 그런 아이들이라도 마을에서 보았으면 좋겠다는 씁쓸한 말을 해주었다.
송상호
넓은 포도밭 끝자락에 위치한 그림 같은 목조 주택에는 안성 농민회 고병국 회장이 산다. 옛날 같으면 포도밭에 원두막이 있었건만 고씨네 포도밭은 아예 집이 들어서 있는 게다.
그 옛날 원두막이야 일하다가 더위 피하고 아이들 서리하는 걸 지키는 곳이었다만, 요즘 누가 원두막 지어 놓는 데가 있는가. 그냥 일하는 사람들이 쉬는 곳 정도의 나지막한 간이 집 정도가 아니었던가. 원두막이 시원하라고 높이 지은 것도 있지만, 서리꾼 감시도 큰 이유가 아니었던가.
“솔직히 우리 포도밭 서리를 해갈 마을 아이들이라도 구경 좀 했으면 좋겠어요. 요즘은 아이들뿐만 아니라 마을 어른들도 보기가 힘들지요. 어른들도 농사짓는 것보다 직장에 나가거나 골프장 등에 하루 품 팔러 나가버리니 말이죠.”17대 째 이 마을(안성 서운면 양촌리 동양촌)에 산다는 고 회장의 넋두리다.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건만 오늘따라 포도 서리를 해가도 좋으니 그런 마을아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이 가슴에 짠하게 와 닿는다.
“아 글쎄. 10년 전까지만 해도 농사지을 맛 낫지요. 그 때야 1년 농사지어서 수확하면 만족할 만큼의 소득도 따라오고, 사람들도 서로 교류하며 즐거웠었죠. 그런데 공교롭게도 10년 전 정권이 바뀌는 무렵과 한·칠레FTA 협정 체결 등이 맞물려서 농촌이 쪼그라들기 시작했지요.” 5년 전까지 담배 농사를 지었다는 고 회장 가족. 담배 농사를 지을 때는 아내와 함께 농사에 전념하며 나름 재미도 있었건만, 이젠 그것마저도 포기하고 집 앞에 있는 포도밭과 몇 천 평 논농사를 혼자서 짓는다.
그의 아내는 다른 곳으로 직장을 나가는 게다. 이런 식으로 가족이 찢어져서 ‘농사 반 직장 반’ 스타일의 농가는 이제 새삼스러운 이야기가 아니다. 농사만 지어서 밥을 못 먹고 산다는 이야기는 별로 새로운 게 아니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