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나 정말 안됐다. 은퇴 준비가 안 된 남자가 얼마나 귀찮은 짐인 줄 아니? 다섯 살짜리 아이가 발을 질질 끌며 징징대는 것보다 더 심하다니까! 엄마 심심해. 뭐하고 놀아?...내가 정말 견디기 어려웠던 것은 오랫동안 얼굴도 제대로 못 본 낯선 남자랑 갑자기 같이 살게 된 거야. 그이도 일에 미친 사람이었거든. 내가 결혼한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을 발견한 것도 짜증났는데 맨날 귀찮게 엉겨 붙는 것 있지?...내 남편도 내 뒤만 졸졸 따라다니며 일일이 간섭한다니까! '점심은 뭐 먹을 거야?' '저녁은?' '왜 그렇게 큰 냄비에 물을 끓여?' '이십분씩이나 화장실에 쳐박혀 있잖아. 당신 책 읽어?' '무슨 책 읽어?' '베란다에 있는 화분에 물 줬어? 말라버릴 거야' 그러면서 자기가 물 줄 생각도 않지. 미치는 줄 알았다니까!...나도 얼마나 화가 나고 지겨웠는지 이혼까지 생각했어...."
36년 만에 가정으로 돌아 온 남편 때문에 평온한 일상을 빼앗겨 엉망이 되어버린 '당신'에게 당신보다 일찍 전쟁을 단단히 치른 그녀들-아나이스, 이자, 살로메, 베아트리스, 기유메트, 뤼시-은 이렇게 회고한다.
그녀들은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된 '함께 있음'을 견뎌내지 못하고 이혼했거나, 이혼 후 감당해야하는 것들이 엄두가 나지 않아 만족스럽지 못해도 어쩔 수 없이 살 수밖에 없는 경우 중 하나에 속해 있다.
어떤 경우에 처했든 공통점은, 젊은 날 남편을 빼앗아 갔던 일(회사)이 "다섯 살짜리 아이가 발을 질질 끌며 징징대는 것보다…" 더 난감한 상태의 남편을 당신에게 돌려보냈다는 사실이다. 그리하여 삶과 일상이 해고당하지 않았던 어제와 오늘 사이에 너무나 많이 달라져버렸다는 사실이다.
그리하여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보았던 노부부의 아름다운 황혼은 과연 가능할까? 싶을 만큼 생활이 달라져도 너무나 많이 달라진다. <당신 무슨 생각하고 있어요?>의 주인공처럼 회사에서 제공한 아파트에서 살고 있었다면 정해준 기일 안에 아파트에서 얌전히 쫓겨나야 한다.
운전수가 딸린 승용차 혜택을 누렸다면 미련이 많아도 어쩔 수 없이 반납해야 한다. '안(소설 속 그녀의 친구들)'만이 그나마 인정 있는 회사의 배려로 이런 느닷없는 변화에서 다소 해방될 수 있었다. 때문에 그녀들 중 대부분은 회사의 비정을 원망하지만, "아내들이여! 세상은 그대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훨씬 비정하다!"이다.
<당신 무슨 생각하고 있어요?>의 주인공 부부 역시 이런 조건들 때문에 새로운 아파트를 찾아 나서고 차를 새로 사게 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철부지 남편-자존심 때문에 서류가방을 쇼핑 카트와 장바구니 대신 사용하는-의 어이없는 짓에 황당한 일들이 속수무책으로 벌어진다. 그리하여 당신은 결국 어느 날 급기야 가출을 하고 만다.
(당신의 남편이 월급쟁이라면)언젠가는 소설 속 남편처럼 해고당하거나 일로부터 은퇴를 한 후 돌아올 남편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이것은 (일로부터의 은퇴는) 월급쟁이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언젠가는 돌아와 함께 살아가야만 하는 낯선 남자(남편)와 어떻게 상대적으로 많아진 시간들을 헤쳐 나갈 수 있을 것인가? 황혼이혼의 주인공이 되지 않고 말이다.
<당신 무슨 생각하고 있어요?>는 프랑스 중년 부부의 위기를 다룬 소설이지만 우리 주변에서 쉽게 벌어지고 있는 이야기를 다룬 것이기도 했다.
세상 물정에 일곱 살배기 아이보다 어두운 소설 속 당신의 남편도 우리 사회 정리해고 당한 남편들처럼 재기할만한 일거리를 찾아 나선다. 하지만 쉽지 않다. 이 남자는 사장이던 엊그제까지 단 한 번도 쇼핑센터에 가본 적이 없어 쇼핑 카트 사용법조차 모르는 수준이니까. 그럼에도 대책 없는 의욕만 넘쳐 끊임없이 일을 저지른다.
이 남자는-요리를 한답시고 주방을 홀랑 태워 다른 아파트까지 위험에 처하게 한다? 반려자인 당신을 개보다 못한 취급(?)을 한 것도 모자라 당신 뒤만 졸졸 따라다니는 것이 귀찮아 당신이 권유한 골프장에서 어떤 여자와 바람이 나고 말았다? -이정도면 이혼감 아닌가? 하지만 이 소설은 읽는 동안 전혀 슬프거나 짜증나지 않고 유쾌하다.
니콜 드뷔롱은 1960년대 프랑스 주부들을 사로잡았던 텔레비젼 시리즈 <센트 세리>의 작가로 <에로티시모>와 같은 코믹 영화 대본을 주로 썼다. 또한 코믹하고 유쾌한 소설 여러 편을 쓰기도 했다.
우리나라에 소개된 것은 <당신 내 말 듣고 있어요?>(2006년 10월)를 통해서다. 이 책은 가족간의 문제를 다루었고 <당신 무슨 생각하고 있어요?>는 가족의 중심이자 뼈대인 부부의 문제를 다루었다고 할까? 여하간 니콜 드뷔롱의 세계는 유쾌하고 즐겁다. 또한 재치있고 지혜롭다.
저자 ‘니콜 드뷔롱’은 한 이불속에서 잠을 자지만 전혀 다른 꿈을 꾸는 부부의 어쩔 수없는 틈, 그리하여 위기 앞에 쉽게 무너질 수도 있는 중년 부부의 위기를 유쾌하고 재치 있게 소설 속 주인공인 '당신과 당신의 남편'을 통하여 극복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니콜 드뷔롱의 유쾌한 재치를 배운다면 ‘황혼 이혼’이 훨씬 줄어들지 않을까?
그래서 소설을 다 읽을 무렵이면 어떤 복잡한 일도 어떻게 생각하고 해결하는가에 따라 그 결과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음을 새삼 깨닫게 한다.
삶의 고비가 비단 부부 문제뿐일까? 그리하여 이 소설은 우리 삶의 가장 기초적인 단계인 부부간의 문제를 다루지만, 나아가 사람간의 관계까지 좀 더 원활하게 풀어나가는 재치까지 선물하고 있는 것이다.
“당신 무슨 생각 하고 있어요?”
“당신, 내 말 듣고 있어요?”
이 말은 부부만이 아닌 우리 모두의 서로에 대한 관심과 애정의 시작이자, 관계를 지속하는 동안 결코 놓지 말아야 하는 그런 말이라는 것을, 사람간에 가장 기본적이면서 가장 소중한 말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면서 말이다.
“황혼 이혼이란 단어가 우리 문화 속에 자리를 잡고 있는 오늘 날, 가끔 우리 부부의 노후 생활을 그려보게 됩니다. ...(중략) 수많은 책을 읽으며 수많은 지혜를 배울 수 있지만, 니콜 드뷔롱 여사의 책은 특히나 가정생활에서 중요한 지혜들을 보여 주어 늘 감탄하게 됩니다. 언제나 즐겁게 일상을 바라보는 자세야말로 행복을 받아들이는 기본자세가 아닐까요?”-프랑스에서 박경혜(역자)
덧붙이는 글 | <당신 무슨 생각하고 있어요?>(니콜 드뷔롱 지음/박경혜 번역/푸른길/2007년 10월/1만원)
2007.12.24 09:47 | ⓒ 2007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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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무슨 생각 하고 있어요?
니콜 드뷔롱 지음, 박경혜 옮김,
푸른길,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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