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나 정말 안됐다. 은퇴 준비가 안 된 남자가 얼마나 귀찮은 짐인 줄 아니? 다섯 살짜리 아이가 발을 질질 끌며 징징대는 것보다 더 심하다니까! 엄마 심심해. 뭐하고 놀아?...내가 정말 견디기 어려웠던 것은 오랫동안 얼굴도 제대로 못 본 낯선 남자랑 갑자기 같이 살게 된 거야. 그이도 일에 미친 사람이었거든. 내가 결혼한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을 발견한 것도 짜증났는데 맨날 귀찮게 엉겨 붙는 것 있지?...내 남편도 내 뒤만 졸졸 따라다니며 일일이 간섭한다니까! '점심은 뭐 먹을 거야?' '저녁은?' '왜 그렇게 큰 냄비에 물을 끓여?' '이십분씩이나 화장실에 쳐박혀 있잖아. 당신 책 읽어?' '무슨 책 읽어?' '베란다에 있는 화분에 물 줬어? 말라버릴 거야' 그러면서 자기가 물 줄 생각도 않지. 미치는 줄 알았다니까!...나도 얼마나 화가 나고 지겨웠는지 이혼까지 생각했어...."
a
▲ <당신 무슨 생각하고 있어요?> 겉그림 ⓒ 푸른길
▲ <당신 무슨 생각하고 있어요?> 겉그림
ⓒ 푸른길 |
|
36년 만에 가정으로 돌아 온 남편 때문에 평온한 일상을 빼앗겨 엉망이 되어버린 '당신'에게 당신보다 일찍 전쟁을 단단히 치른 그녀들-아나이스, 이자, 살로메, 베아트리스, 기유메트, 뤼시-은 이렇게 회고한다.
그녀들은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된 '함께 있음'을 견뎌내지 못하고 이혼했거나, 이혼 후 감당해야하는 것들이 엄두가 나지 않아 만족스럽지 못해도 어쩔 수 없이 살 수밖에 없는 경우 중 하나에 속해 있다.
어떤 경우에 처했든 공통점은, 젊은 날 남편을 빼앗아 갔던 일(회사)이 "다섯 살짜리 아이가 발을 질질 끌며 징징대는 것보다…" 더 난감한 상태의 남편을 당신에게 돌려보냈다는 사실이다. 그리하여 삶과 일상이 해고당하지 않았던 어제와 오늘 사이에 너무나 많이 달라져버렸다는 사실이다.
그리하여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보았던 노부부의 아름다운 황혼은 과연 가능할까? 싶을 만큼 생활이 달라져도 너무나 많이 달라진다. <당신 무슨 생각하고 있어요?>의 주인공처럼 회사에서 제공한 아파트에서 살고 있었다면 정해준 기일 안에 아파트에서 얌전히 쫓겨나야 한다.
운전수가 딸린 승용차 혜택을 누렸다면 미련이 많아도 어쩔 수 없이 반납해야 한다. '안(소설 속 그녀의 친구들)'만이 그나마 인정 있는 회사의 배려로 이런 느닷없는 변화에서 다소 해방될 수 있었다. 때문에 그녀들 중 대부분은 회사의 비정을 원망하지만, "아내들이여! 세상은 그대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훨씬 비정하다!"이다.
<당신 무슨 생각하고 있어요?>의 주인공 부부 역시 이런 조건들 때문에 새로운 아파트를 찾아 나서고 차를 새로 사게 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철부지 남편-자존심 때문에 서류가방을 쇼핑 카트와 장바구니 대신 사용하는-의 어이없는 짓에 황당한 일들이 속수무책으로 벌어진다. 그리하여 당신은 결국 어느 날 급기야 가출을 하고 만다.
(당신의 남편이 월급쟁이라면)언젠가는 소설 속 남편처럼 해고당하거나 일로부터 은퇴를 한 후 돌아올 남편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이것은 (일로부터의 은퇴는) 월급쟁이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언젠가는 돌아와 함께 살아가야만 하는 낯선 남자(남편)와 어떻게 상대적으로 많아진 시간들을 헤쳐 나갈 수 있을 것인가? 황혼이혼의 주인공이 되지 않고 말이다.
<당신 무슨 생각하고 있어요?>는 프랑스 중년 부부의 위기를 다룬 소설이지만 우리 주변에서 쉽게 벌어지고 있는 이야기를 다룬 것이기도 했다.
세상 물정에 일곱 살배기 아이보다 어두운 소설 속 당신의 남편도 우리 사회 정리해고 당한 남편들처럼 재기할만한 일거리를 찾아 나선다. 하지만 쉽지 않다. 이 남자는 사장이던 엊그제까지 단 한 번도 쇼핑센터에 가본 적이 없어 쇼핑 카트 사용법조차 모르는 수준이니까. 그럼에도 대책 없는 의욕만 넘쳐 끊임없이 일을 저지른다.
이 남자는-요리를 한답시고 주방을 홀랑 태워 다른 아파트까지 위험에 처하게 한다? 반려자인 당신을 개보다 못한 취급(?)을 한 것도 모자라 당신 뒤만 졸졸 따라다니는 것이 귀찮아 당신이 권유한 골프장에서 어떤 여자와 바람이 나고 말았다? -이정도면 이혼감 아닌가? 하지만 이 소설은 읽는 동안 전혀 슬프거나 짜증나지 않고 유쾌하다.
a
▲ <당신,내 말 듣고 있어요?> ⓒ 푸른길
▲ <당신,내 말 듣고 있어요?>
ⓒ 푸른길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