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행 하던 일이 있어 시인과의 만남을 잠시 잊었다. 하는 일이라는 게 부조리한 세상과의 싸움이었다. 힘 없는 백성들이 권력자와 싸워 이기는 일은 이 나라에선 아직 힘겹기만 하다. 싸움은 지난 주 금요일(21일) 끝났다. 승패로 따지면 무승부쯤 될까. 그나마 지지 않았으니 다행인 세상이다.
파도는 누가 부르지 않았어도 뭍으로 온다
시인을 만난 것은 싸움이 한창 진행 중이던 지난 15일(토)이었다. 일주일이나 세수도 하지 못한 채 천막 생활을 하던 중 시인의 출판기념회에 오라는 전갈을 받았다. 부랴부랴 낮짝을 씻고 시인이 살고 있는 주문진으로 갔다.
새벽부터 내리기 시작한 눈이 손가락 두 마디 정도 내린 시간, 강릉행 버스를 탔다. 버스는 얼어 붙은 강을 끼고 달렸다. 눈은 불어오는 바람으로 인해 사선으로 날렸다. 골짜기를 훑어 내리는 눈발을 바라보다 까무룩 잠이 들었다. 버스 안의 따듯함이 지친 몸까지 녹아들게 했던 것이다.
언뜻 눈을 뜨니 강릉 시내. 버스터미널은 지척이다. 휴대폰이 울렸다. 끊어지려는 순간, 용케도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건 이는 출판기념회를 준비하고 있는 홍일선 시인. 왜 전화를 받지 않느냐고 지청구다. 이런, 전화가 오는 줄도 모르고 잠에 빠졌다.
홍 시인이 어디냐고 물었다. 곧 터미널이라 하니 방금 주문진에 도착했다며 "통화가 되었다면 함께 오는 걸" 하고 아쉬워 한다. 아쉬운 것은 전화를 받는 쪽이 더 크다. 출판기념회가 열리는 곳으로 가려면 주문진 행 버스를 갈아타야 하고, 주문진에 내려서도 택시를 이용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기 때문이다.
바다 나서면 아버지
늘 거기 살아 숨쉬고 있다
하얀 선체 푸른 깃발 달고
항해하는 곳 어디든 끄떡없었다
언젠가 내게 일러주시던 그 바다
어부가 섬기는 혼불이 있다는데
세월가며 바라보아도
그 빛 볼 수 없어 파도 몸 맡겨도
배만 덩그러니 서있는 곳에
종일 마주서서 찾아 헤매도
아버지 넋 찾지 못했다
- 김영현 시 '아버지 혼불의 바다' 전문
이왕 느린 걸음으로 가기로 작정한 주문진 행. 아쉬움을 접고 주문진 행 버스로 갈아 탔다. 속초까지 가는 버스는 사람을 가득 채우고서야 출발했다. 터미널을 벗어난 버스는 잠시 후 바다를 끼고 달리기 시작했다.
파도는 누가 부르지도,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시지푸스처럼 끊임없이 뭍으로 기어 올랐다. 하지만 인간은 파도의 넘나듦을 허락하지 않았고, 파도는 제풀에 지쳐 다시 흘러내려갔다, 오르기를 반복했다.
파도와 버스는 꼭 그 만큼의 거리를 두고 하얗게 부서지며, 씽씽 달렸다. 바다가 보이지 않는다 싶더니 버스는 이내 주문진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버스는 자리가 비는 만큼의 사람을 태우고는 양양으로, 속초로 달려갔다.
택시로 갈아타고 행사장에 도착하니 오늘의 주인공인 김영현 시인과 홍일선 시인이 반갑게 맞아준다. 출판기념회가 열리는 곳은 바다가 보이는 횟집. 시집 제목만 본다면 바닷가에 발을 담그거나 일렁이는 뱃전에서 해야 할 출판기념회였다. 그런 생각도 호사일까. 날씨는 옷깃을 여미게 할 정도로 추웠다.
시인이 품어주던 큰 인연 있어 주문진으로 간다
서울에서 오기로 한 이들이 대관령에서 사고를 만났다며 조금 늦을 거라는 연락이 왔다. 바쁠 일 없다 싶어 다들 모인 후 출판기념회를 시작하기로 했다. 횟집을 나와 바다로 갔다. 바닷가에는 낚시를 하는 이들이 제법 보였다. 한 사람에게 다가갔다.
"바람이 부는데도 잡히나요?"
"심심하니 나왔지요 뭐."
낚시꾼의 어망을 들여다보니 잔고기 몇 마리가 들어있다. 무슨 고기냐고 물으니 놀래미란다. 낚시꾼 옆엔 여조사도 보였다. 부인이냐고 물었더니 허허, 웃으면서 '딸래미'란다. 딸을 부인이라고 생각했으니 민망하기 짝이 없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딸과 낚싯대를 던지고 있는 사내가 그 순간만은 더 부러웠다.
부녀에게 많이 낚으시라고 인사를 나누고는 횟집으로 갔다. 그 사이 많은 이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서울에서 온 용환신, 이승철, 나해철, 유명선 시인, 권좌현 아동문학가와 경북 영주에서 온 권석창, 김승기 시인, 최대봉 소설가도 보였다.
강릉에서 온 축하객도 많았다. 홍동선 강릉 생명의 숲 고문과 목영주 강릉 한살림 이사장, 이언빈 시인과 오대산 산적인 김영욱 시인, 정토 시인. 한때 정계에도 몸을 담았던 함영회 전 청사출판사 사장, 속초에서 온 이상국 시인, 박종헌 시인 등도 자리했다.
이날 출판기념회에 참석한 이들만도 50여명이 넘는다. 참석자들의 면면을 보면 전국적인 행사이다. 환갑을 넘긴 나이에 첫 시집을 냈다고 이렇게 많이 모인 것은 아닐 것이다. 그동안 김영현 시인이 품었던 큰 인연이 있어 그들을 주문진으로 오게 했던 것이다.
주문진이 고향인 강세환 시인은 선배 시인을 뵙기 위해 서울에서 주문진까지 시속 170km로 달렸다고 했다. 김영현 시인의 무엇이 강세환 시인을 '마의 속도'로 달리게 했을까. 그 답은 나해철 시인이 대신한다.
"김영현 시인은 우리에게 있어 큰 산입니다. 언제나 우리들 곁에 있으면서 한없이 품어 주기만 했습니다. 이제 우리가 김영현 시인에게 경배를 올릴 차례입니다."
나해철 시인과 김영현 시인의 인연은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강릉의 한 병원에 의사로 근무했던 나해철 시인은 강릉 지역 문인들과 무크지 '새벽들'을 만들었다. 두 사람은 그 일이 인연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내 아버지는 가슴앓이 절름바리 선장
물어물어 귀동냥 들은 바
배도 없고 그물도 없는 아버지
황포돛 달고 청진 나진 서수리항
물때 보는 선원생활
한 밑천 잡아 정착한 곳
원산 갈마 아버지 고향
그 바닥 알아주는 선주이자
혼대구리 선장
내 어려 기억 없는 난리통
고향산천 다 버리고 와
물 거슬러 휘적휘적 배 저으며
가시는 얼굴 안에
아버지 닮아가는 내 얼굴이
지금 저 바다 한가운데 있다
- 김영현 시 '아버지 선장' 전문
주문진에서 태어나 지금은 강원도립대가 되어 버린 '주문진 수산고'를 졸업한 김영현 시인. 바다 사람으로 살다, 뭍 사람으로 살다, 환갑 넘은 나이인 지금에 와서는 바다를 깊은 눈으로 바라보며 산다.
돈 벌이를 위해 손 댓던 일에 실패한 후 삶의 끝자락까지 걸어 보았던 김영현 시인. 병마를 훌훌 털고 그동안 써 두었던 시편들을 다듬었다. 어느 시편은 구멍난 그물을 손질하는 마음으로, 어느 시편은 깊은 바다에 던져 놓았던 그물을 건져 올리는 강인함으로 시를 담금질 했다.
바닷가 사람들의 삶을 집요하게 추적한 시집 <바다의 일생>
그렇게 하여 탄생한 시집이 <바다의 일생>이다. 바다와 바닷가 사람들의 삶을 이토록 집요하게 추적한 시편도 드물다. 아니 지금까지 없다. 그렇기에 김영현 시인의 시집이 반갑고도 고맙다.
예순 다섯을 바라보는 김영현 시인의 시집에 발문을 쓴 서범석 문학평론가는 "앞으로 딱 서른 권의 시집만 더 펴내라"고 덕담을 건넸다. 주문진 바닷가에 던져 놓은 시편의 그물을 이제 건져 올리기만 하는 김영현 시인. 그물을 건져 올릴 힘 조차 없다 해도 그는 서른 권이 아닌 더 많은 시집도 낼 수 있는 가슴과 깊은 눈을 지녔다.
이제 주문진에 가면 가끔씩 걸려 드는 고래 소식에 반가워 할 일이 아니라 김영현 시인이 품고 있는 시인의 바다를 찾아야 한다. 이제 주문진에 가면 아들을 낳는다는 소돌바위를 찾을 게 아니라 한 시인의 속 깊은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이제 주문진 바닷가에 가면 일출을 보며 환호할 것이 아니라 잔 기침소리 쿨럭이는 한 시인의 생애를 더듬어야 한다. 이제 주문진에 가면 횟집 처녀의 옷자락을 훔쳐 볼 것이 아니라 한 시인이 토해낸 시편을 주워 담아야 한다.
그러할 때 우리는 여주할매 해장국집에도 시인을 만날 수 있고, 곰치국 집에서도 시인을 만날 수 있으며, 죽어가는 고래의 심장을 노려보는 시인의 강렬한 눈매를 만날 수 있다. 주문진에 가면 흰 파도보다 시인이 그리운 이유가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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