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경'으로 '성불하는' 묵선자 박지명 거사

길이 16km 너비 90cm 비단 위에 90만자 사경한 '대방광불화엄경' 완성

등록 2007.12.24 18:16수정 2007.12.24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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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묵선자 박지명 거사의 힘찬 붓질.
묵선자 박지명 거사의 힘찬 붓질.최용호
“사경은 제 삶의 전부입니다. 그 길도 역시 성불할 수 있는 방편이기 때문입니다.”

불교에는 도를 끼치는 수행방법이 수도 없이 많다고 한다. 이를테면 참선, 명상, 염창, 염불, 사경 등 자신만의 방법으로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면 되는 것이다. 묵선자(墨禪子) 박지명 거사는 이 가운데 사경으로 성불하는 수행자다. 30년이 훨씬 넘는 세월을 사경과 함께 살아온 그는 궁극적으로 사경을 통해 깨우침을 이루려고 한다.


최근 박지명 거사는 경남 울주군 상동면 보은리(통도사에서 언양방면으로 6km 지점)에 위치한 ‘묵선자불경전시관’에서 하루 3천자씩 10시간이 넘는 14개월의 강행군을 마치고 길이 16km, 너비 90cm의 칡으로 만든 비단 위에 무려 90만자에 달하는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을 완성했다.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이 대역사는 ‘불교사경 역사상 초유의 역작’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지난 22일 기자는 주변의 불교 인사들에게 수소문하여 묵선자 박지명 거사를 찾아 나섰다.

박지명 거사는 지금부터 16년 전인 1991년 전 대한불교 조계종 종정이었던 월하스님을 만나면서 본격적인 사경의 구도에 들어갔다.

일찍이 신라의 원효대사가 제자들에게 기도하는 법을 이야기하며 “절하는 무릎이 얼음처럼 시려도 볼 생각을 하지 말고, 주린 창자가 끊어져도 먹을 생각을 하지 말라”고 설파한 바 있는데, 이 가르침을 실천이라도 하듯 우유 한 병으로 사나흘을 연명하며 하루에 적게는 2천자에서 많게는 7천자씩 사경삼매에 젖어들었다.

‘대인이 대인을 알아본다’는 속설처럼 사경에 의한 수행을 해오면서 박거사는 서옹, 월하, 월산, 지종, 성수, 정관, 성오스님 등 근현대 불교계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큰스님들과 붓을 통한 인연의 틀을 놓았다.


전 조계종 종정 서옹 큰스님은 “글씨에 한 점의 때가 묻지 않고 참으로 곱고 맑은 기운이 가득하다”고 칭찬했고, 월하 큰스님은 “현존하는 우리 서예계와 불교계를 통틀어 박거사의 사경이 최고”라며 “박거사는 30년이 넘는 세월을 무량한 사경의 공덕과 사경보시의 공덕으로 이타행(利他行)을 실천했다”고 극찬한 바 있다.

 묵선자 불경전시관 별실에 쌓여 있는 박지명 거사의 사경작품들.
묵선자 불경전시관 별실에 쌓여 있는 박지명 거사의 사경작품들.최용호

박거사는 지금까지 경서만을 고집해 30년 필력을 오로지 부처의 금구명언과 법화경을 비롯한 금강경 750여벌, 반야심경 5000여벌 등의 사경에만 정진해왔다.


특히, 여러 서체에 두루 능하지만 행서와 초서에 있어서는 자신만의 독특한 창작기법으로 우아하고 율동적이면서도 역동적인 서체를 구축해 서옹큰스님에 의해 “행초서에 있어서는 서예의 재능이 선필(禪筆)의 경지에 이르니 현대의 추사요, 한석봉의 예지에 가깝다”는 극찬을 듣기도 했다.

더욱이 그의 손을 빌어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많은 금강경과 반야심경 및 사찰현판과 추련(사찰입구에 걸린 입간판을 이르는 말) 또는 경권(經卷)들이 국내 유수의 사찰들에 남아 있다. 지난 10월에는 남과 북이 3년6개월의 복원사업 끝에 복구된 금강산 4대사찰 가운데 하나인 신계사의 현판과 추련도 직접 제작해 그의 진면목과 위상을 드러내기도 했다.

 금강산 신계사 현판식 장면
금강산 신계사 현판식 장면중앙일보

일각에서는 그의 글씨에 위신력(치유력)이 있다는 소문도 들려온다. 부산 성재문화원 이강원 원장은 “묵선자 선생이 글씨에 임하는 자세는 한 치의 흐트러짐도 용인되지 않는 지고한 정(精)과 성(誠)의 마음을 모아 정진하는 도(道)그 자체”라며 “그래서인지 박거사의 글씨에서는 수맥파와 전자파가 차단되기도 하고 경사리(經舍利)에 준하는 이적현상들이 나타나기도 한다”고 전했다.

이토록 많은 종교적, 예술적 업적을 남기고 있는 묵선자 박지명 거사를 만나기 위해 기자는 울주군 상동면 보은리에 있는 ‘묵선자불경전시관’을 찾았다. 이곳은 보은리 가운데서도 ‘내외양’이라고 불리는 마을 입구에 위치해 있는데, 이 마을은 전형적인 산간벽지의 외딴 마을. 가뜩이나 황량한 이곳에서 박거사는 고독을 벗 삼아 화엄의 바다에 붓질을 해왔다.

그와의 첫 만남은 선입견을 깨는 즐거움과 신선함이 있었다. 박지명 거사쯤 되는 수행자는 으레 근엄한 개량한복이나 승복을 입었으리라는 예상을 깨고 간편한 모습의 트레이닝복과 허름한 조끼차림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만의 인간미가 물씬 묻어나는 대목.

 대방광불화엄경 옆에선 묵선자 박지명.
대방광불화엄경 옆에선 묵선자 박지명.최용호

“가족과 결별하고 30여년이 넘는 세월을 산중에서 사경에 빠져보았지만 깨달음은 저 멀리 허공에 떠 있을 뿐 쉬이 다가오지 않습니다.”

30여년의 풍상을 겪었음에도 득도하지 못했다는 그의 겸손한 표현이 왠지 모를 친근감으로 다가왔다. 고급스런 금분으로 시원하게 써내려간 금강경 병풍이 둘러쳐진 그의 방 한 켠에는 선친인 남곡 박시표 선생님의 작품이 걸려있다.

박거사는 궁궐에서 왕자들에게 서예를 가르쳤다는 조부와 선친을 이어 3대째 글씨를 쓰는 그야말로 ‘서예명가’ 출신이다. 어려서부터 부친의 어깨 너머로 글씨를 보고 배웠다고 하니 일생을 서예와 함께 해온 그이지만, 본격적으로 붓을 잡은 것은 30여 년 전의 일이다.

“어려서부터 불가의 연이 강했던 가문 탓에 어느 날 부처님의 경을 쓰고 싶어 사경을 시작했는데, 세월이 흐를수록 ‘바다의 한 컵 물밖에 되지 않는 아쉬움’을 느꼈고, 그 순간부터 사경을 이번 생의 천직으로 삼기로 결정했습니다.”

칠순이라는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젊어 보이는 박거사는 젊은 시절 ‘한 인물 했을 완소남’.
그러나 대화를 나누다 보면 그가 ‘외유내강형’의 강직한 인물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깨달음의 과정에서 발견한 진리를 거침없이 내뱉곤 해서 자칫 ‘독설가’로 비춰질 수 있기 때문.

그러나 사람들은 그의 그런 독설들이 성불에 임하는 진실한 수행자의 깊은 신심에서 우러난 말임을 오래지 않아 알게 된다. 특히 물량주의와 세속주의에 감염된 현대 불교의 실태에 대한 통렬한 자기비판이자 회개임을 알고 나면 그를 독설가라 감히 폄하할 수 없다.

“요즘 불가에는 참선과 수행없이 기름진 생활에 젖어 살아가는 자기이익 챙기기에 급급한 사판승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그들이 쏟아내는 행함이 없는 이론과 법문은 허탄하게 들릴 뿐이요, 일종의 거짓말일 수 있습니다. 성철큰스님도 2시간여의 법문이 끝나면 항상 자신의 말은 인간의 말이요 거짓말이며 부처님의 말씀만 믿어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셨습니다.”

매일 새벽 두 시간 정도의 참선을 가진 뒤 하루 10시간씩 계속되는 사경수행은 어지간한 큰스님들의 수행과 다르지 않다. 그런 면에서 박거사는 ‘반 출가인’이다.

 경남 울주군 상동면 보은리 내외양마을에 위치한 묵선자불경전시관.
경남 울주군 상동면 보은리 내외양마을에 위치한 묵선자불경전시관.최용호

1991년 월하 큰스님께서는 그의 글씨를 보고 감탄하신 후 “진정한 사경은 수행의 밑받침 없이는 불가능하다”며 “통도사로 거처를 옮겨 더욱 깊은 내면의 도를 쌓을 것”을 권유한 바 있다. 그런 후 월하스님의 상자로 들어와 출가하기를 강권했으나 곧바로 거절했다고 한다.

“정상에 오르는 게 모든 산행자의 목표지만, 그 목표를 향해서 가는 길은 저마다 다를 수 있지 않습니까? 심지어 같은 등산로를 택해 오르더라도 앞서 간 사람의 발자국과 뒤에 온 사람들의 발자국이 그대로 일치할 수 없습니다.”

등산로에도 일반인들이 가는 완만한 산책코스가 있고 때로 전문가들이 타고 오르는 험난한 암벽코스가 있듯 성불에도 저마다의 스타일이 있다는 얘기다.

“부처님이 심(心) 하나를 설명하기 위해 팔만사천법문을 설파한 만큼 반드시 한 가지 방법만을 모든 사람에게 옳다고 강요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생은 사경이라는 수행방법을 통해 열심히 살다가겠다고 양해의 말씀드렸지요. 그때 큰스님의 출가제안을 거절하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많은 일을 해낼 수 없었을 겁니다.”

 너비 90cm에 길이 16km가 넘는 대방광불화엄경이 두루마리로 쌓여있다.
너비 90cm에 길이 16km가 넘는 대방광불화엄경이 두루마리로 쌓여있다.최용호

전시관 별실에는 천에 쓰인 그의 사경작품들이 두루마리처럼 둥글게 말려 그득하게 쌓여있는 걸 볼 수 있다. 사실, 칡으로 만든 거친 천위에 글씨를 쓴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종이보다 먹과의 마찰력이 심하기 때문에 일필휘지의 힘찬 붓놀림이 없으면 번짐이 생기기 마련.

지금까지 박거사가 쓴 사경의 글자 수는 공식적으로 약 1300만자에 이른다. 하루만에 7000자까지 써내는 박거사를 본 스님들과 재가자들이 그를 ‘사경보살’이라 부를 정도다.

“사경을 통해 무엇인가 이익을 취하고 완성하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제 사경을 보고 한분이라도 고통과 번뇌에 찌든 마음이 맑아질 수 있다면 그게 바로 진정한 포교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종교 탓할 것 없이 가식적인 말과 허탄한 사설만 앞세우며 기만에 살찌는 종교인들이 판을 치는 현 세태에 묵선자 박지명 거사의 행함이 있는 삶은 모든 수행자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묵선자불경전시관 내부.
묵선자불경전시관 내부.최용호
#묵선자 #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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