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가장 혼란스러웠던 대선이 끝나고 며칠 후, 남대문 경찰서 뒤편 쪽방촌을 찾아가 봤다. 처음 가봤던 2002년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언제나 그랬듯이 남대문경찰서 쪽에서 보이는 쪽방촌 건물들 사이에는, 할리우드에서 천방지축으로 노는 것으로 유명한 패리스 힐튼네 호텔이 우뚝 서있다. 그 사이 골목안에는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고급승용차들 사이로 나라에서 주는 월 40만원이 조금 안 되는 돈이 없으면 당장 굶어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서성거리고 있었다.
이번 대선에선 기업경제를 살려야 투자가 늘어나고, 일자리가 늘어난다고 주장하는 대통령이 당선되었지만, 그리고 그것을 믿고 이 두평도 채 안되는 방에 사는 사람들 상당수가 그 사람을 뽑았지만, 그 어느 대통령 후보도 이 쪽방촌에 들어온 일은 없었다.
그리고 2009년에는 이 쪽방촌도 재개발사업으로 대기업의 사옥에 필요한 녹지부지로 헐린다고 한다. 기업이 돈을 많이 벌어 몇 백억의 땅값을 지불하고 사옥을 짓는 곳에, 쪽방촌 사람들은 마치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처럼 흩어지게 된다.
가난은 국가도 막을 수 없다. 이렇게 삶의 질이 떨어지는 현실을 살게 된 까닭도 개개인마다 다 다를 것이다. 하지만, 가난한 사람도 국민인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고, 부자의 복지를 위해 나라가 신경을 쓴다면, 가난한 사람들의 복지를 위해서도 같은 열정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그들이 왜 가난해졌는지보다도 얼마나 힘들게 살고 있는지, 그리고 구체적으로 무엇을 도와주어야 하는지를 알고 싶어서 한 방을 두드려 봤다.
"일흔 아홉입니다."
"가족은…?"
"없습니다…."
방을 열었을 때, 할아버지는 아무 것도 올려 놓지 않는 가스레인지에 불을 켜 놓고 혼자 덩그러니 앉아 계셨다.
채 2평이 안 되어 보이는 방은 창문도 없고, 허리를 곧바로 펴기에도 어려울 정도로 천장이 낮았다. 그곳에서 할아버지는 TV를 친구삼아 겨울을 나고 있었다. 이곳에 들어 온 지도 1년 반정도. 심장에 부정맥 증상이 나타나 적십자 병원에서 약을 타다 먹고 있다고 했다.
아궁이 2개의 연탄 보일러로 10여개 방에 한꺼번에 불을 넣고 있지만, 울퉁불퉁한 방바닥에서 따뜻한 온기는 전혀 느낄 수 없었다. 결국, 작은 전기장판 한장이 추운 겨울 몸을 따습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차라리 겨울이 나아요. 여름엔 더워 죽어. 그래서 자꾸 밖으로 나가요. 겨울엔 잔뜩 껴입고, 이렇게 방에 처박혀 사는 거지 뭐."
사진찍기를 거부한 여든다섯된 할머니는 온 몸이 아픈데도 불구하고 투표를 하고 왔더니 다리가 퉁퉁 부어서 꼼짝을 못하고 있다고 했다.
자기들을 찾아 오지 않아도 아픈 몸을 이끌고 직접 가서 뽑은 대통령에게 무엇을 기대하고 있을까? 과연 대통령은 세상에 이 사람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나 있을까?
국민의 복지문제는 예산만으로 개선되지 않는다. 삶의 질은 돈만으로 해결되어지지 않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기억되어 지고, 돌봄을 받는다는 것을 경험할 때, 내가 이 세상에 살아 있다는 의미를 느끼는 것이다.
성탄절은 2000여년 전 예수가 이 땅에 태어난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예수의 탄생은 여러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지금 나는 그 분이 오신 그곳을 기억하고 싶다.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태어 나셨고, 가난한 사람으로 사셨던 분이다.
오늘, 이땅에 예수가 계셨으면 이 쪽방의 사람들과 함께 계시지 않으셨을까?
2007.12.24 19:52 | ⓒ 2007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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