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07.12.26 21:10수정 2007.12.26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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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이다. 잘 지내냐?"
"그렇지 뭐. 근데 웬일이냐?"
"초등학교 동창회 한 번 하려고. 졸업하고 한 번도 안 했잖아."
"하긴 이제는 애들 다 결혼하고 자리 잡혔을 테니까 한 번 하는 것도 괜찮지."
"그래서 말인데, 이번 추석연휴 마지막 날에 학교에서 하려는데 어떠냐?"
"학교? 학교 폐교됐다."
"폐교? 언제?"
"한참 됐어. 지금은 어떤 사람이 학교를 사서 맨날 말 탄다고 하더라."
"그게 무슨 말이야? 학교를 개인이 샀다고? 그게 말이 되냐?"
"몰라. 아무튼 지금은 운동장에 가보면 말똥으로 가득 차 있어."
참으로 황당했다. 외지에서 생활하느라 자주 고향에 가지 못하는 이유도 있었지만 그 누구한테도 내가 졸업한 초등학교가 폐교되었다는 소식은 들을 수 없었다. 하지만, 유난히도 길었던 올 추석에 마음먹고 초등학교 동창회를 추진하기 위해 학교 인근 마을에 살고 있던 친구와 통화를 하던 중에 폐교 소식을 듣게 된 것이다.
충남 연기 금석초등학교 학생 부족으로 폐교... 2003년 마지막 졸업식 가져
내가 졸업한 초등학교는 충남 연기군 금남면 석교리에 있는 금석초등학교. 지난 60년 제1회 졸업생을 배출하며 인근 4개 마을(반곡리·봉기리·부용리·석교리)을 잇는 가교 역할을 했던 금석초등학교가 40여년(44년)의 장구한 역사를 뒤로 한 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된 것이다.
나의 모교는 지난 2003년 2월 44회 졸업생을 마지막으로 폐교가 되고, 이후 인근의 영대초등학교와 함께 금남초등학교(충남 연기군 금남면 신촌리 소재)로 통폐합되었다.
나는 지난 1987년 금석초등학교를 졸업한 28회 졸업생으로 초등학교에 대한 애착이 깊다. 아니, 나뿐만 아니라 이 학교를 졸업한 졸업생들은 하나같이 다 그럴 것이다. 왜냐하면 어린 시절을 함께 했고 또 수많은 추억을 만들어 주었으며, 더욱이 인근 4개 마을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버지와 아들이 한 학교를 졸업한 선후배 관계이기 때문이다.
이런 연유로 학교 총동창회를 하면 많은 사람들이 아버지를 대동하고 참석하기 일쑤였다. 심지어는 부모가 모두 같은 학교 출신이어서 온 가족이 총동창회에 참석하는 경우도 있을 정도였다.
이렇게 해서 한자리에 모이면 자식과 자식 같은 후배들에게 과거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추억에 빠지기도 했다. 예전에는 학생 수가 많아서 한 학년에 4~5반 정도씩 편성이 됐었는데 어느 순간인가부터 부쩍 학생 수가 적어 심지어는 한 반이 30명도 안 될 정도로 줄어들어 안타깝게 생각한다는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실제로 1980년대에 이 학교를 다닌 나도 1학년부터 6학년까지 줄곧 1반이었다. 그래서 졸업사진도 한 장밖에 없다. 사진 한 장 안에 학교의 전 선생님과 졸업하는 학생들이 다 들어갔으니 말이다. 그래서 폐교소식이 더 서운했을지도 모른다.
우리의 졸업앨범에는 추억이 없다. 달랑 한 장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 속에는 다른 학교처럼 6년 동안 학교를 다니며 친구들과 함께한 운동회며 소풍이며 운동장에서 뛰어놀던 모습 등의 추억이 들어있지 않다. 다만, 한 장의 사진을 보면서 한명 한명 볼 때마다 머릿속에 떠올리는 추억이 전부다.
비록 폐교된 건물 속에서 내가 학교 다닐 적의 예전 학교모습(학교가 기존의 건물을 허물고 재건축을 해 내가 다닐 때의 학교모습은 전혀 없다)은 하나도 찾을 수 없지만 그래도 막상 학교가 폐교되었다니 왠지 모를 서운함이 밀려오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폐교된 모교의 현재 모습은?
얼마 전 폐교소식을 듣고 친구들과 찾은 모교는 아직까지 예전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 채 정문에 '금석초등학교'라는 학교 간판 대신 '사랑의 일기 연수원'이라는 간판이 붙어 있었다. 학교가 연수원으로 둔갑한 것이다. 그리고 학교 인근에 사는 친구의 말에 따르면 가끔은 누군가가 말을 끌고 와서 운동장에서 말타기를 즐긴다고 귀띔해 주었다.
학교는 예전 그대로였지만 학생이 없는 학교는 말 그대로 폐교였다. 또한 학교 주변에서 계절마다 꽃을 피우며 눈요깃거리를 제공해 주었던 각종 꽃들도 주는 손길이 없어 모두가 말라 비틀어져 있었다.
그나마 겉모습으로 봐서는 모교가 다른 사람의 손에 넘어가서 죽은 것처럼 보이지만 그래도 학교 자체가 없어지지 않고 남아있어 예전의 추억도 기억할 수 있고, 또 연수원 이외에도 예비군 훈련 집합장소로, 선거 시에는 투표소로 활용되는 등 다양한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것에 위안을 삼고 있다.
특히 '설'이라든가 '추석' 등의 명절날이 되면 폐교는 다시 예전처럼 활기를 되찾고 이내 졸업생들의 단합의 장으로 변모한다. 명절이 되면 학교에는 인근 마을의 졸업생들이 하나둘씩 학교에 모여들고 이내 팀을 만들어 축구·족구경기 등을 즐긴다. 학교가 순식간에 동문체육대회 현장으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또 운동이 끝난 후에는 선배들이 사주는 술 한 잔씩 마시며 학교 다닐 당시를 회상하며 정겹게 이야기를 나누었던 기억은 앞으로도 두고두고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주장] 효율적인 폐교 활용방안은?
내 모교는 지금 현재 '사랑의 일기 연수원'으로 변모되어 있지만 투표소, 예비군 훈련장, 동문 단합의 장 등으로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다. 이러한 것들은 연중 지속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방안이 되지 못한다.
그렇다면 폐교를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은 없을까?
지금의 '사랑의 일기 연수원'이 들어오기까지 교육청과 지자체에서 나름대로 고민을 하고 검토를 했겠지만 현재 폐교의 위치와 농촌이라는 주변의 상황을 고려해 봤을 때 다른 방향으로 얼마든지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① 졸업생 모임공간
첫번째로는 졸업생을 위한 조성해 활용하는 방안이다. 일부 교실을 숙박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조성하여 졸업생들이 동창회를 할 때 이곳을 빌려줌으로써 동창회도 하고 동창생은 물론 함께 온 가족들이 같이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 활용하자는 것이다.
물론, 그렇게까지 조성하자면 많은 예산이 들어가겠지만 동창회비나 일부 지원을 받는다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공간이 조성되면 자녀들에게도 부모가 나온 학교를 보여주고 추억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써 인성교육에도 유익하리라 생각한다.
② 지역주민 스터디 공간
두 번째는 지역민을 위한 스터디 공간으로 활용하는 방안이다. 지금의 주변마을 상황은 대다수가 생업을 농사를 짓고 생활하고 있는 전형적인 농촌마을로서 젊은이들보다는 노인들이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이들은 봄·가을의 농번기 이외에는 소일이나 하며 시간을 보낸다.
이러한 분들을 위해 폐교를 정보화시대에 맞게 정보화교육장 등의 교육장으로 조성해 교육도 받고 여가생활도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자는 것이다. 컴퓨터도 설치하고 이곳에 교사, 관리인도 배치하게 되면 노인들이 교육도 받고, 일자리가 창출되는 등 일거양득의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추가로 지역 내에 산재되어 있는 '어린이집'을 통폐합시켜 어린이들의 꿈을 키울 수 있는 공간으로 조성하는 것도 바람직한 방안이라고 본다.
③ 민속박물관
세 번째는 민속박물관으로 활용하는 방안이다. 학교가 위치하고 있는 지역은 행정중심복합도시(이하 행복도시)가 들어서는 바로 외곽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따라서, 모교로 학교를 다니던 주변 4개 마을이 행복도시 내에 편입돼 있어 조만간 사라질 마을들이어서 폐교된 모교를 각 마을의 역사와 학교 역사의 흔적을 남길 수 있는 민속박물관으로 활용하게 되면 사라질 마을과 학교를 영원히 기억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지역의 흉물로 내버려둘 수는 없다
세 가지 모두를 조성하면 좋겠지만 이 중 한 가지라도 조성된다면 졸업생으로서 더 없이 기쁠 것이다. 이에 덧붙여 얘기하자면 지금처럼 모교를 방치해 두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지금처럼 방치해 둔다면 결국 폐교는 지역의 흉물로 전락하고 말 것임은 자명한 사실이다.
교육청도 그렇고 지자체도 그렇고 좀 더 적극적으로 검토를 해서 폐교가 지역내에서 발전적이고 희망적인 공간이 될 수 있도록 관심을 둬야 할 것이다.
어린 시절의 대부분을 보냈고, 그곳에서 꿈을 키웠던 나의 모교인 금석초등학교. 지금은 비록 폐교가 되어 있지만 예전의 모습 그대로 남아있는 한 영원히 나의 가슴 속에 추억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2007.12.26 21:10 | ⓒ 2007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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