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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월 첫 주 금요일 오후면 전주 팔복동에 있는 소망양로원을 방문한다. 몸이 불편해서 성당에 나오지 못하는 할머니 할아버지를 찾아가 병자봉성체(미사 때 축성된 그리스도의 몸)를 해준다.
오늘은 성탄을 축하하기 위해 산타할아버지 옷을 준비해서 두 형제님과 양로원을 찾았다. 서양란 화분과 남녀 공용 요술버선과 성탄 카드를 전해드리기 위해서다.
요한 형제님, 가난하고 소외받은 사람들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달려가는 전주교구 빈첸시오회 자선봉사단체 회장이다.
요한씨는 며칠 전 친어머니처럼 돌봐드리고 있는, 자식도 없이 남편과 사별하고 홀로 사시는 89세 안나 할머니를 방문했다. 할머니가 성탄이라며 10만원을 챙겨주셨다. 종자돈이 되어 마련한 남녀 공용 버선 200개, 성탄이면 더 외로운 이웃들에게 따뜻한 사랑이 되는 아름다움 나눔이 아닐 수 없다.
트럭에서 산타 옷을 입고 선물주머니에 버선을 넣어 서양란 화분을 들고 양로원으로 갔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모시고 성탄 재롱잔치가 한창이었다. 재활치료실 현관문을 열자, 사회자와 봉사자들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이 "와~ 산타 할아버지다!"하며 환성을 질렀다. 산타할아버지의 출현으로 양로원은 순식간에 유치원으로 돌변하고 말았다. 일제히 피어나는 달맞이꽃처럼 할머니들과 봉사자들의 입가에 행복의 미소가 화들짝 피어났다.
남을 위해 봉사하는 일처럼 아름다운 일이 어디에 있으랴. 양로원에서 직원으로 일한다는 것은 봉사의 마음 없이는 불가능하다. 때로는 식물인간처럼 움직이지 못하는 환자들의 변을 항문에서 비닐장갑을 끼고 손가락으로 파내기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할머니와 노래를 함께 부르는 직원들의 입가에 사랑의 미소가 가득하다.
비 내리는 호남선 남행열차에…, 차디찬 글라스에 빨간 립스틱….
직원들의 춤과 노래가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박수와 어우러져 흥겨운 잔치를 만들고 있었다. 산타할아버지가 선물을 전하는 사이에도 흥겨운 노랫가락은 멈추지 않았다. 망부석처럼 우두커니 창 밖을 보던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평소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노래방 기계의 흥겨운 가락에 끊어질 듯 이어지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유행가가 눈물겹도록 아름답다. 이 기쁨이 커지지 않은 행복의 불씨가 되었으면 좋겠다.
복도에는 종이접기, 크레파스 그림, 종이 찢어 붙이기 등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작품이 걸려 있었다. 공동 작업한 작품들도 여럿 있었다. 내년이면 90세가 되는 박선례 할머니의 '꿈의 집'도 눈에 띠었다. 매월 찾아뵙는 할머니의 작품이다. 해와 구름, 꽃과 집의 소박한 꿈처럼 행복했으면 좋겠다.
버선발로 현관 앞까지 나와서 배웅을 하는 할머니, 우리 트럭이 사라질 때까지 흔들던 손을 내리지 못했다. 외로움의 깊이가 자꾸 팔을 흔들어 윈도 브러시처럼 외로움을 닦아내고 있었다.
“이달에는 신부님 얼굴 두 번 보니까 너무 좋네요.”
백미러로 멀어지는 할머니의 모습에서 기쁨과 안쓰러움이 교차했다. 그것은 가까운 미래의 우리의 모습이기도 했다.
1톤 화물트럭의 다음 목적지는 버선 선물을 할 수 있도록 종자돈 10만원을 나누어 주신 독거노인 안나 할머니다. 서양란 화분과 털버선, 양로원 식당에서 싸달라고 한 할머니가 좋아하는 잡채와 여러 부침개, 조금씩 포장해서 냉동실에 넣어둔 사골국물 한 봉지를 챙겨 갔다. 할머니는 이틀에 한 번씩은 방문하는 요한씨를 알아보지 못했다.
"이 사람은 누구여!"
"안 알켜 줘요!"
"산타할아버지예요!"
요한씨가 사골국물을 냄비에 데워서 대접에 내온다. 사랑의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작은 접시에 잡채를 덜어드리자 후르륵후르륵 잘 드신다.
"매일 혼자 밥상에 앉는데 여럿이 둘러앉으니까 음식이 다 맛납네."
"할머니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이 뭔 줄 아세요?"
"내가 맛있는 음식을 먹어보지 않아서 모르지."
"제가 캐나다에서 3년 반 동안 교포사목할 때 혼자 자취하면서 발견한 음식인데 모르시죠?"
"그야 내가 캐나다에 가보지 않아서 모르지잉-"
"하-하-하-"
"그러네요.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은 '사람' 이에요."
"아하- 그러네요. 진수성찬도 혼자 먹으면 맛 없은께요."
안나 할머니는 잡채를 사골국물에 말아서 참 맛나게 드셨다. 다음에 드시기 편하도록 냉장고 옆에 잡채와 여러 전들을 상에 차려놓고 성탄 전야 미사에 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섰다.
독거노인 안나 할머니의 작은 나눔이 양로원과 동네의 독거노인들에게 훈훈한 자선이 되었다. 발이 따뜻하면 온몸이 따뜻하다고 한다. 속 털이 복슬복슬한 버선은 춥고 외로운 노인들에게 겨우내 따뜻한 사랑이 될 것이다.
2007.12.26 11:34 | ⓒ 2007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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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 기자는 정의구현 전국사제단의 일꾼으로, 불평등한 소파개정 국민행동 공동집행위원장으로 2000년 6월 20일 폭격중인 매향리 농섬에 태극기를 휘날린 투사 신부, 현재 전주 팔복동성당 주임신부로 사목하고 있습니다.
'첫눈 같은 당신'(빛두레) 시사 수필집을 출간했고, 최근 첫 시집 '지독한 갈증'(문학과경계사)을 출간했습니다. 홈피 http://www.sarang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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