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안희정씨가 자신의 홈피에 <우리는 폐족입니다>라는 글을 올려 화제가 되었다. 안희정씨가 노무현 대통령의 최측근 중 한 사람인데 그가 스스로 반성한다는 반성문을 올렸으니 언론의 관심이 집중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모든 눈물이 다 같은 눈물이 아니듯이 모든 반성이 다 같은 반성은 아니다. 그는 자신의 사고방식의 오류에 대하여 반성한 것이 아니라 단지 자신의 신념을 설득하는 방식의 오류에 대해서만 반성했을 뿐이다.
물론 그런 반성도 나쁜 것은 아니다. 자신의 설득방식에 대한 반성도 상당히 의미는 있는 것이니 말이다. 그러나 그런 반성은 친노 내부에서는 의미가 있을지 모르지만 국민들의 공감을 불러 일으키기에는 역부족일 것이다.
국민들 대다수는 왜 그렇게 친노를 싫어할까. 서민경제가 어려워서? 부동산 가격을 잡지 못하고 오히려 폭등시켜서? 조중동 등의 사기술에 속아서? 노무현과 친노들의 독선이 싫어서? 친노로 불리우는 사람들은 물론 이 중에서 “조중동 등의 사기술에 속아서”라는 항목에만 동의할 것이다. 반면 대다수 국민들은 그 항목만 빼고 다른 부분에 다 동의할 것이다.
나는 네 가지 항목에 모두 다 동의한다. 물론 사회과학은 가중치의 학문이므로 이들 항목들 간의 중요도 차이는 있겠지만 말이다.
노빠들 중 상당수는 “2만 달러 달성하고 수출 폭증하고 주가 폭등했는데 경제가 어렵다니 웬말이냐?”라거나 “해외여행객 폭증하고 차량소비 급증하는데 서민경제 어렵다니 웬말이냐?”라는 말을 함부로 하는데 이런 말들은 스스로 무덤을 파는 짓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노빠들은 노무현 대통령을 믿어달라고 하면서도 서민들의 말은 믿지 못하겠다고 한다. 경제가 너무나도 좋은데 서민들이 엄살을 떤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대한민국의 3000만~4000만 명의 서민들이 대부분 다 엄살쟁이들일까.
안희정씨가 주도했던 참평포럼은 청와대 비서실이 발간한 “있는 그대로의 대한민국”이라는 책자를 토대로 ‘서민들의 염장을 지르는 행위’를 반복하고 있는데 이들이 말하는 수치들이 과연 타당한 것인지 하나하나 검토해 보기로 하자.
(1)1인당 GDP가 2002년 11,504달러에서 2006년 18,392달러로 59.9%나 증가했는데 뭐가 불만이냐고?
참평포럼과 청와대 비서실이 달러로 표시되는 1인당 GDP 상승률 59.9%를 자랑이라 떠들고 다닌다면 이것은 정말 창피한 일이다. 왜냐하면 달러로 표시되는 1인당 명목GDP는 달러로 표시되었기 때문에 환율 요인에 의해 교란되고 명목 수치이기 때문에 물가 요인에 의해 크게 교란되는 수치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매우 흥미로운 자료를 하나 소개해 드리겠다. 1991년과 2000년 사이 미국의 연평균 성장률은 3.3%였고 캐나다는 2.9%였다.(양국의 연평균 인구증가율은 1% 내외로 유사하다.) 그런데 동기간 미국의 1인당 GDP는 46.9% 증가한 반면, 미 달러로 표시된 캐나다의 1인당 명목GDP 10.7% 증가에 그쳤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졌을까. 두 말하면 잔소리다. 미 달러로 표시된 캐나다의 1인당 명목GDP 수치에 환율교란 요인과 물가교란 요인이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환율교란 요인과 물가교란 요인이 소거된 정확한 1인당GDP 상승률은 어떤 것일까. 그것은 “자국화폐로 표시된 1인당 실질GDP”이다. 2002년과 2006년 사이 우리나라 1인당 실질 GDP는 16.4% 증가했다. 그리고 1991년과 2000년 사이 미국의 1인당 실질GDP는 24.1% 증가했고 캐나다는 24.4% 증가했다.
국민들의 실질소득 증가율을 비교적 정확히 반영하는 실질경제성장율과 1인당 실질GDP 성장률이라는 너무나도 정확한 수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참평포럼과 청와대 비서실이 환율교란요인과 물가교란 요인에 의하여 크게 과대평가되거나 과소평가되는 수치를 가져와서 국민들을 현혹하는 것은 득보다 실이 크다.
2002년과 2006년 사이 우리나라 1인당 실질 GDP는 16.4% 증가한 것이 분명하고 서민들도 피부로 그렇게 느끼고 있는데 59.9%라는 기괴한 수치를 가져와서 경제가 매우 좋아졌다고 우기면 서민들이 안희정씨 등에게 박수를 쳐 줄 것 같은가. 욕을 버는 짓이고 자기 무덤을 파는 짓이다.
노빠들은 경제가 좋아져서 원화가 절상된 것이니 자기들 말이 맞다고 우기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식의 논리는 전혀 타당하지 않다. 원화절상이고 나발이고 서민들의 소득에 실질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은 “1인당 실질GDP 상승률”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경제성장율”이라는 수치는 “자국 화폐로 계산한 것이고 물가교란요인을 제거한 실질GDP 상승률”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청와대 인사라는 자들이 “실질GDP 상승률”이라는 정확한 수치를 제쳐놓고 “달러로 표시된 명목GDP 상승률”을 자신들의 업적이라고 떠들고 다녀 보시라. 전세계 경제학자들이 박장대소하고 비웃어줄 것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달러로 표시된 명목 1인당 GDP 상승률”이라는 수치는 서민들의 경제적인 소득 개선효과를 전혀 반영하지 못한다. 4년간의 현실을 정확히 반영하는 수치는 16.4%인데 교란요인에 의해 크게 왜곡되는 수치인 59.9%를 가져와서 서민들에게 내밀어 보시라. 서민들은 설득당하기보다 오히려 크게 분노할 것이다.
(2)수출이 2002년 1625억 달러에서 2006년 3255억 달러로 100.3%나 증가했는데 뭐가 불만이냐고?
참여정부 수출 실적이 나쁘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자랑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 왜 그럴까. 2002년과 2006년 사이 전세계 각국의 총수출이 86.1% 증가할 때 우리나라 수출은 100.3%증가했다. 후자의 증가율이 전자의 증가율보다 1.165배 더 크게 나타난 셈이다.
그러나 이 성적은 1994년과 2002년의 수출 성적에 비해 특출하게 높은 수준은 아니다. 1994년과 2002년 사이 전세계 각국 총수출이 50.4%증가할 때 우리나라 수출이 69.3% 증가하여 양자의 증가율 배수 차이가 1.375배였기 때문이다. 이 수치는 2002년과 2006년 사이 양자의 증가율 배수 1.165배보다 더 높은 수치이다.
김영삼, 김대중 정부 하에서는 우리나라 수출증가율이 세계무역시장 확대율보다 1.375배 높았지만 노무현 정부 하에서 두 수치간의 배수가 1.165배로 줄어 들었으니 크게 자랑할 만한 수준은 아니라는 소리다. 물론 이런 배수 차이 둔화 현상을 근거로 무작정 참여정부 수출 실적이 나쁘다고 폄훼하는 것은 아니니 오해는 하지 말길 바란다.
그런데 참 안타까운 것은 노빠들이 결정적으로 “수출은 급증하는데 왜 경제성장율은 낮은지 그것에 대한 고민이 없다”는 것이다. 지금도 청와대 인사들 대다수는 무역의존도와 수출의존도라는 두 개념도 구별하지 못한다. 무역의존도도 70%, 수출의존도도 70%, 수출의 경제성장 기여율도 70%, 마구마구 섞어 쓴다. 그러나 이 세 가지 개념은 전혀 다른 것이며 수출의 경제성장 기여율이 70%라는 것도 전혀 근거없는 사기일 뿐이다.
하나하나 검토해 보자. 우리나라 무역의존도가 70%라는 말은 맞다. 수출액 300조원, 수입액 300조원, 무역액 600조원, GDP 850조원 정도이니 무역의존도(=무역액/GDP)는 70% 정도 된다. 그러나 수출의존도가 70%라는 것은 전혀 근거없는 것이다.
그 다음 수출의 경제성장 기여율이 70~100%라는 주장이 난무하는데 이것은 완전히 사기다. 2003과 2006년 사이 달러 표시 수출액 증가율은 각각 19.3%, 31.0%, 12.1%, 14.5%였고, 원화로 환산하고 물가교란요인을 소거하여 실질가치로 환산한 수출액 증가율은 각각 18.5%, 20.9%, 9.7%, 12.9%였다.
그런데 산업자원부와 무역협회가 발표하는 2003년과 2006년 사이 수출의 성장기여율은 각각 111.2%, 93.3%, 69.2%, 72.9%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두 수치를 근거로 산출되는 경제성장율은 얼마일까. 2003년 수출의 살질가치가 18.5%인데 수출의 성장기여율이 111.5%이니 (경제성장율/100%=수출증가율/수출의 성장기여율)이라는 비례공식에 따라 2003년 경제성장율은 (18.5/111.5=16.6%)가 된다.
이런 간단한 계산법에 따라 산업자원부와 무역협회의 사기극을 추적해 보면 2003년과 2006년 사이 경제성장율은 각각 16.6%, 22.4%,14.0%,17.7%라는 수치가 나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수치는 현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수치일 뿐이다.
그렇다면 어디에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산업자원부와 무역협회가 산출하는 (수출의 경제성장기여율=수출매출액 증가액/GDP 증가액)이라는 공식 자체가 엉망진창인 것이다. 분자는 매출액이요 분모는 부가가치액이니 이게 엉망진창이라는 것이다. 이런 공식은 국제적으로도 널리 통용되는 것이 아니다. 한국은행 담당자에 문의해 보니 일본과 우리나라만 이 공식을 쓰고 있다고 하는데 내가 과문해서 그런지 모르지만 일본 자료에서도 이런 것들을 본 적이 없다.
안희정씨 등이 산업자원부와 무역협회, 그리고 수출대기업들의 이런 사기극에 속아 한미FTA 전도사로 적극 나서고 있는 것이다.
(3) 주가지수가 2002년 말 628포인트에서 2007년 말 현재 1900포인트까지 상승했는데 뭐가 불만이냐고?
내가 얼마 전에 세계거래소연맹의 통계자료를 분석해 보았을 때 2002년과 2007년 사이 전세계 54개 주요 증시 중에서 우리나라 주가지수 상승률은 22위권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물론 이 성적도 그렇게 나쁜 성적은 아니다. 그러나 이것도 역시 그렇게 자랑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
왜냐하면 전세계 54개 주요 증시는 대부분 다 선진국에 포진해 있고 신흥개도국 중에서 증시가 개설된 나라는 매우 드문데 2000년대 주가상승을 주도한 나라들이 하나같이 신흥개도국이다 보니 선진국과 개도국 사이에 끼어 있는 우리나라 주가지수 상승률 순위가 상당히 높게 나타난 것 뿐이다.
지금까지 소개한 몇 가지 주요 통계만을 보더라도 노빠들이 진실-보통 수준의 성적-을 그대로 알리면 크게 손해 볼 것이 없다. 그런데 엉뚱한 수치들을 가져와서 경제가 매우 좋아졌는데 서민들이 엄살을 떤다느니 뭐니 하면서 그들의 염장을 지르니 내가 한심하다고 하는 것이다.
지난 5년간의 한국의 경제성장율이 평균 4.5%라면 크게 잘 한 것은 아니지만 보통 성적은 된다. 최근 전세계 평균 경제성장율이 4.9% 정도라고 하니까 평균에는 약간 못 미치지만 우리나라 산업구조가 선진국에 가까워지고 있으니 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OECD 평균보다 높다느니 어쩐다느니 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선진국에는 후발효과도 없고 초과수익 창출도 어렵기 때문이다.
노빠들이 우리나라 경제성장율 성적은 보통 수준인데 양극화 심화 속도가 너무 빨라서 걱정이다 라고 말을 한다면 국민들과 소통이 가능할 것이다. 그 말은 맞는 말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참평포럼을 주도한 안희정씨가 재기에 성공하려면 노무현 대통령이나 자신의 생각이 100% 항상 옳은데 다만 문제는 설득기술이었다는 오만과 독선에서 벗어나야 할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나 안희정씨의 생각이라는 것이 사실은 관료들이나 국책연구소,재벌연구소의 의견을 주로 참고하여 형성된 것인데 이들의 생각이 오류라면 노무현 대통령이나 안희정씨의 생각이라는 것도 많은 부분 오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참여정부 초기에 대통령 책상에 정부관료 보고서와 재벌연구소 보고서가 함께 올라갔다는 것은 널리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어떻게 노무현 대통령이나 안희정씨 생각이 100% 항상 옳을 수 있겠는가. 앞으로도 노무현 대통령이나 안희정씨 생각이 어느 정도 타당한지에 대해서는 충분한 검증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사실 진보진영에게 지금 절실히 필요한 것은 “더 많이 공부하는 것”이다. 머리에 든 것은 별로 없는 사람들이 설득의 기술만 탓하고 있으면 곤란하다. 한미FTA와 관련해서도 온갖 수치조작들이 넘쳐 났었다. 경부운하 효과를 뻥튀기하는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한미FTA 효과가 뻥튀기되었던 것이다.
글을 마치면서 안희정씨 등에게 당부드린다. 말도 안되는 수치 동원하지 말고 정공법으로 가시라. 그러면 재기도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말도 안되는 수치나 동원하며 서민들 염장이나 지르고 있으면 안희정씨가 재기하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대자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7.12.28 15:45 | ⓒ 2007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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