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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양시 아람미술관 아트숍에 걸린 모딜리아니 복제품. 미술관 입구의 모딜리아니와 잔느 에뷔테른의 사진. 두 작가의 눈에는 광기가 난다. 아래는 그림 해설하는 장면. ⓒ 김형순
▲ 고양시 아람미술관 아트숍에 걸린 모딜리아니 복제품. 미술관 입구의 모딜리아니와 잔느 에뷔테른의 사진. 두 작가의 눈에는 광기가 난다. 아래는 그림 해설하는 장면.
ⓒ 김형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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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 천재를 그리다-모딜리아니와 잔느의 행복하고 슬픈 사랑전'이 우리나라에선 처음으로 경기도 고양시 아람누리 아람미술관(일산)에서 3월16일까지 열린다.
전시는 '몽파르나스의 화가지망생, 잔느 에뷔테른', '몽파르나스에서 피어난 사랑', '그들만의 파라다이스, 니스', '죽음도 갈라놓지 못한 사랑', '모딜리아니와 잔느 에뷔테른의 삶과 사랑들(자료전시)' 등 5개 섹션으로 나뉜다.
이번 전에는 모딜리아니(1884~1920 애칭 모디)의 유화, 드로잉 45점뿐만 아니라 그의 연인이자 모델이며 아내인 잔느(1898~1920)의 유화, 과슈, 아크릴, 드로잉 65점도 선보인다. 작품 수는 잔느 것이 더 많다. 실제로 잔느가 어린 나이에도 모딜리아니 못지않게 비범한 화가였음을 보여준다.
여성을 이렇게 아름답게 그릴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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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깨를 드러낸 잔느 에뷔테른' 캔버스에 유화 66×47cm 1919. 애틋한 눈빛과 눈부신 살결이 모나리자처럼 신비하고 성모마리아처럼 성스럽다 ⓒ 김형순
▲ '어깨를 드러낸 잔느 에뷔테른' 캔버스에 유화 66×47cm 1919. 애틋한 눈빛과 눈부신 살결이 모나리자처럼 신비하고 성모마리아처럼 성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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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딜리아니처럼 여성의 내면에 흐르는 잔잔한 표정과 내밀한 욕망까지 담아 여성을 슬프도록 아름답게 세속의 성모마리아처럼 신비하게 그린 화가는 드물 것이다. 특이한 점은 여성을 사실적으로 그리지 않으면서 가장 여성스럽게 그렸다는 점이다.
모딜리아니의 많은 여인의 초상화 중 역시 잔느의 것이 최고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가 가장 아끼는 여인이었기에 헌신을 다했을 것이다. 그는 또한 그녀의 예민한 감성뿐만 아니라 미세한 숨소리도 놓치지 않았고 따뜻한 촉감까지도 그림에 고스란히 담았다.
이번 전의 포스터로 쓰인 '어깨를 드러낸 잔느 에뷔테른'를 보면 잔느가 무언중에 남편에게 "천국에서도 당신의 모델이 되어 드릴게요"라고 속삭이는 것 같다. 잔느는 이렇게 그의 뮤즈가 되어 그를 열렬히 지지하고 사랑했고, 예술가로서 신뢰와 존경을 보냈다.
모딜리아니는 유태인 특유의 우수를 풍기는 보헤미안으로 방탕했고 당대 최고의 미남이었다. 그래서 그 주변엔 여자들이 두루 많았다. 그러나 "천사와 같은 잔느가 모딜리아니를 구했다"라는 말처럼 그를 진정 구한 여자는 바로 잔느였다.
파리파 작가 중 최첨단 아방가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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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인의 초상' 캔버스에 유화 81×54cm 1918. 일체의 장식을 하지 않는 여인이지만 내면적 기품이 강하게 풍긴다. ⓒ 김형순
▲ '여인의 초상' 캔버스에 유화 81×54cm 1918. 일체의 장식을 하지 않는 여인이지만 내면적 기품이 강하게 풍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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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의 초상'을 보면 모딜리아니 그림의 특징이 잘 드러난다. 바로 절제된 단순함이다. 그냥 단순한 것이 아니라 그림의 입체적, 추상적, 원시적 요소들이 용광로에서 녹아 정화되듯 여러 과정을 거친 뒤에 나온 것이라 더 세련되고 우아한 단순함이다.
이런 그림이 나온 건 그가 파리의 인류학 박물관 등에서 본 이집트 유적, 캄보디아 불상, 아프리카 조각 등 토테미즘에 근거한 때묻지 않는 원시주의 미학에서 얻은 영감 때문이다. 또한 입체파를 열어준 세잔의 영향도 컸다. 그리고 그가 화가 이전에 조각가라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그는 대표적 '에콜 드 파리'파다. 당시 파리는 전 세계에서 온 예술가들의 집결지였다. 스페인에서 온 피카소를 비롯하여 브랑쿠시, 후안 그리스, 키슬링, 디에고 리베라, 샤임 수틴, 후지타 쓰구하루가 그들이다. 그는 이렇게 그들과 교류하며 코즈모폴리턴의 관점에서 세계미술계를 훤히 꿰뚫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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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 모딜리아니, 피카소, 살몽. 1916년 8월12일. 앙드레 살몽은 후에 모딜리아니 전기 <열정의 보엠>을 씀 ⓒ 김형순
▲ 왼쪽부터 모딜리아니, 피카소, 살몽. 1916년 8월12일. 앙드레 살몽은 후에 모딜리아니 전기 <열정의 보엠>을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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