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역시나 구름 위로 해가 떠올랐다. 작년 새해 첫날 가이드를 하면서 너무 혹독한 대가를 치뤄 올해는 쉴까 했는데 마침 볼 일도 있고 해서 다시 동해안을 찾았다. 우리가 간 곳은 경포대에서 양양 쪽으로 10분쯤 가면 있는 사천해수욕장. 양미리가 유명한 곳이다.
작년에는 경포대를 갔었다. 무박으로 가서 길목에 주차를 하려는데, 관광버스는 주차장이 따로 있다며 솔밭옆 대형주차장으로 모는 바람에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게 되었다. 그런데 해맞이가 끝나고 교통정리를 하는 경찰관은 길옆에 세워 놓았던 승용차만 계속 보내주었다. 이런 불이익이.
보다못해 직접 교통순경에게 가 따졌다. 여러 사람이 탄 관광버스를 먼저 보내줘야 하는 거 아니냐며. 그 결과 1시간 만에 경포대 탈출, 강릉 빠져 나오는데도 3시간. 무려 4시간이나 걸려 외곽으로 빠져 나오고 성산(구 영동고속도로 대관령구간 초입에 있는 마을)에 있는 식당에 아침 먹으려고 예약해 놨다가 1시에 점심을 먹고 대관령 양떼목장 들렀다가 서울에는 밤10시에 도착했다. 정말 지루한 여행이었다.
일출은 7시 40분이라는데 구름층이 꽤 두껍다. 새해 첫날 수평선에서 떠오르는 해를 보고 싶었지만 구름 위로나마 볼 수 있다는 것에 위안. 지난해는 구름 사이로 작은 붉은 빛을 봤을 뿐이었고, 고생은 고생대로 했다. 그러면서 왜 해맞이는 꼭 1월 1일에 해야 하나 계속 의문에 불만을 더해가며 서울로 돌아갔었다.
게으름을 부린 탓으로 이미 차를 댈 만한 곳이 남아 있지 않아 언덕진 구석쟁이에 아슬아슬하게 차를 박아 놓고 해를 가장 잘 조망할 수 있는 곳을 찾아다녔다. 모래사장 곳곳에 피워 놓은 모닥불가에는 사람들이 둥그렇게 모여 서서 햇님을 기다리고 있었고, 잔칫집처럼 하얀 포장을 쳐 놓은 자리에서는 양미리도 굽고 커피도 타 주고 떡국도 주었다. 그러나 사람은 많은 데다 주는 곳은 한 군데니 우리는 우리가 준비해 간 커피를 마시면서 붉은 기운이 서려 있는 수평선을 주목하였다.
드디어 구름 위로 빠알간 색채가 짙어지다가 해가 삐죽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순간 시선은 모두 한 곳에 집중되고 간절한 표정으로 눈부신 그것을 바라보았다. 각자 생각은 다르겠지만 소원은 거의 엇비슷. 모두 마음을 한 데 모으며, 해를 바라본다.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져 나오고, 그중에도 사진을 찍겠다며 햇님 앞에 나서는 사람에 공연히 멋쩍어 손을 한 번 비벼 보는 사람에 정말 가지각색의 모습으로 여태껏 기다려온 마음들을 햇님에게 전한다.
해는 둥실 떠오르고 차로 돌아와 갈길을 모색한다. 이미 길은 주차장. 차로 덮인 길을 속수무책 바라보다가 길이 조금씩 트이면서 사천해수욕장을 벗어났다. 벗어나는데 걸린 시간은 30분. 다행히 우리차가 앞머리에 있어 다른 차보다 빨랐다.
이번엔 묘안을 짜내 오후 늦게 출발하기로 했다. 다음 행선지는 동해. 고속도로가 강릉까지 정체되다가 강릉을 지나자 뻥 뚫린다. 서울쪽 도로는 겹겹이 차로 둘러싸여 있어 하품이 나올 정도. 우리는 룰루랄라 달린다. 동해로.
해맞이 인파가 빠져 나간 해변은 비교적 한산했다. 망상해수욕장과 대진해수욕장을 거쳐 묵호 까막바위 앞에가 섰다. 서울 남대문의 정동방에 위치하고 있는 어달리 까막바위는 의로운 호장(지금의 통, 리장)이 왜구와 맨손으로 싸우다 죽어 문어로 환생해 물리쳤다는 전설이 있다는 곳. 올려다보니 덩치 큰 갈매기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주변은 횟집으로 둘러쳐져 있는데 파도가 거센 바다는 이따금씩 바닷물을 한줌씩 내게 뿌린다. 어제 불던 바람도 자고 비교적 온화한 날씨다. 바다만 제 성에 못이겨 서로 몸을 부딪혀 가며 몸부림이다. 모퉁이를 돌아 묵호등대를 보고 등대 가는 길에 만난 황태 덕장을 찾았다. 생선 비린내가 풀풀 풍기는 덕장에서 덕장 주인을 만났다. 내 의문은 비가 올 때 이것들이 그냥 비를 맞아도 되나 하는 것.
"비가 오면 이 황태를 어떻게 하나요?"
"천막으로 덮습니다."
"그럼 비가 와도 나쁜진 않나요?"
"아니요. 비가 오면 황태 색깔이 확 달라집니다. 바람도 북동풍이 불어야 색깔이 아주 좋게 납니다."
"다 마르는데는 시간이 얼마나 걸리지요?"
"15일 정도 걸리는데 이제 이틀만 날이 좋으면 아주 빛깔 좋은 황태가 나올 겁니다."
내게 '비' 하면 떠오르는 풍경은 늘 농촌이었다. 모내기 할 때, 김장 심을 때, 가을겆이 할 때. 때문에 비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농사는 비를 기다리는 혹은 비가 그쳤으면 하는 내 마음에 적잖은 장애가 되었다. 그런데 이젠 황태 덕장도 하나의 장애로 떠오를 것 같다. 반가운 눈을 기다릴 때에도 말이다.
동해 여행을 끝내고 오후 늦게 출발했다. 강릉을 통과한 시간은 5시 40분. 전광판에 강릉 휴게소에서 면온까지 43km가 정체라고 나온다. 아뿔싸, 늦게 가면 나을 줄 알았는데. 기어이 도로에서 밤을 맞게 생겼다.
까만 밤, 고속도로에는 점점이 빨간 보석이 촘촘히 박혀 있었다. 크리스마스 트리 같기도 하고 네온사인 같기도 한 그 촘촘한 빨간등은 일렬로 늘어서서 느리게 움직인다. 도로가 둥글게 구부러진 곳에서는 환성이 흘러나올 정도로 아름답기도 했다.
1월 1일 하루, 동해바다에서 신나게 돌아다녔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이 불빛을 가진 많은 차들이 함께 같은 마음으로 돌아다녔다. 그리고 이렇게 비싼 대가를 치르며 힘든 몸을 차에 싣고 고속도로에 줄줄이 늘어서서 집으로 가고 있다.
지금은 비록 여행에 지쳐 힘든 몸이지만, 새해 첫날 탁트인 동해바다에서 활력을 얻어 돌아가는 것이다. 그 활력을 동력삼아 2008년을 씩씩하게 살아가기 위해 하나하나 작은 보석을 만들어 서로의 가슴에 달아 주면서.
2008.01.02 16:33 | ⓒ 2008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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