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아내리던 촛농은 자식들을 지키는 어머니의 마음처럼 독수리형상도 만들었다.
임윤수
며칠 밝히면 크기가 줄어줄고, 그렇게 타다 흔적 없이 사라질 거라고 생각했던 초가 3일째부터 양쪽으로 갈라지며 어떤 형상을 만들어 갔다. 녹아내리는 촛농을 다 태우지 못하고 흘러내리더니 마냥 아래쪽으로만 흘러내리지 않고 조금씩 뭉쳐지기 시작한다. 가닥이 잡힌 형상에 흘러내리는 촛농이 더해지면서 점차 안으로 휘어지더니 나흘 밤을 지내고 나니 연꽃 모양으로 피어나더니 하루가 지나니 하트 모양을 이루고 있다.
하트 모양을 하고 있는 촛농 덩어리에서 어머니의 정성이 느껴진다. 물기가 남아 있는 손으로 놋그릇이라도 만지려면 쩍쩍 손이 들어붙을 만큼 추운 한겨울에도 두 손 곱게 모으고 촛불 앞에 서 있던 어머니의 모습, 나이를 먹어가며 점점 그 느낌이 크게 다가오는 어머니의 두 손이 촛농으로 만들어져 있다.
일주일 가까이를 밝히니 팔뚝보다도 길었던 촛대는 거반 앉은뱅이 촛불이 되었다. 나이를 먹으며 점점 작아진 어머니, 꼿꼿했던 허리가 구붕해지며 더 작게만 보이던 어머니처럼 앉은뱅이 초가 되었다.
자식들 걱정은 늙어서도 놓지 못하는 어머니처럼 촛불도 앉은뱅이가 되어서도 밝음은 놓지 않았다. 자식들을 챙기느라 종종걸음을 치던 구부렁거리는 발걸음을 놓던 어머니처럼 미처 태우지 못하고 흘려보냈던 촛농까지 알뜰하게 태우려는 듯 생명을 다한 촛불도 모습은 흔들릴지언정 불꽃만은 놓지 않았다. 임종을 앞둔 아버지가 내쉬던 가쁜 숨처럼 헐떡헐떡 불꽃을 뿜어내더니 이제야 수명을 다한 듯 눈물 같은 촛농 몇 방울만 남긴 채 촛불은 사그라졌다.
더 이상 보이지 않는 촛불이지만 일주일간 집 안을 밝혔던 촛불은 자식들이 잘 되기를 빌던 어머니의 마음이며 정성이었다. 흘러내리던 촛농은 어머니의 삭신에 흐르던 고단함이며 가슴으로 흐르던 서러움의 눈물이었을지라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흘러내리던 촛농이 더없이 뜨거워진다. 세상의 어머니들은 오늘도 촛농보다도 진한 마음으로 자식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울컥거린다.
어머니의 두 손 같고, 아버지의 가슴 같은 촛불을 신년 벽두에 일주일씩이나 밝혔으니 올 한해 좋은 일만 있을 것 같다.
어릴 때 보았던 어머니의 모습이 그리워 피웠던 촛불에서 느끼는 정서는 햇살에 드러난 서릿발일지언정 이렇게 저렇게 덮어주려는 목화솜 같은 온화함이며, 동그라미 같은 끝없음이었다. 촛농 같은 눈물 뚝뚝 흘리는 부모의 마음이 되어 마침표를 찍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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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이 좋아하는 거 다 좋아하는 두 딸 아빠. 살아 가는 날 만큼 살아 갈 날이 줄어든다는 것 정도는 자각하고 있는 사람. '生也一片浮雲起 死也一片浮雲滅 浮雲自體本無實 生死去來亦如是'란 말을 자주 중얼 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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