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사가 나에게 보낸 사랑의 메시지

내 집 애물단지 고양이의 하소연

등록 2008.01.08 09:53수정 2008.01.08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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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우리 집 카사란 놈이 내 글방 앞에서 놀아달라고 보채고 있다.

우리 집 카사란 놈이 내 글방 앞에서 놀아달라고 보채고 있다. ⓒ 박도


모든 중생들은 슬프다


일찍이 부처님은 모든 중생들이 불쌍하다고 하였던가. 사람도 동물도 점차 살아가는 게 만만찮다. 문명은 날로달로 발전하지만 내 언저리를 둘러 봐도 사람들은 더 잘 살기는커녕 보통으로 살기도 어려운 것 같다. 동물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에게는 이 세상이 온통 블랙홀이다. 사람에게 사육당하지 않고 야생으로 살아가는 동물들은 그 종류도 수효도 점차 줄어들고 있다.

지난날 그 흔한 메뚜기조차도 이제는 보기 힘들고, 개구리 뱀도 들길 산길에서 찾아볼 수도 없다. 산에서 사는 야생 길짐승마저도 덫이나 올가미에, 밀렵꾼 등살에 목숨을 부지하기가 매우 힘드나 보다. 사람들의 눈길을 피해 한밤중에 먹이를 찾아 나서다가 싱싱 달리는 괴물(자동차)들에게 비명횡사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a  애절한 눈망울로 기다리고 있다.

애절한 눈망울로 기다리고 있다. ⓒ 박도


카사가 내 집에 온지도 벌써 다섯 해째다. 그동안 3년 남짓 방안에서만 키웠는데 지난 해  봄부터는 바깥에서 키우고 있다. 실내에서 얌전히 자라주면 좋으련만 그 놈은 틈만 있으면 밖으로 뛰쳐나가기에 우리 내외는 지친 나머지 마침내 바깥에서 기르고 있다.

카사에게는 함정이 많다. 내 집 앞으로 하루에도 수없이 지나다니는 자동차도, 인삼을 보호하고자 농사꾼이 놓은 쥐약도, 야생 살쾡이들도, 그에게는 생명을 앗아가는 무서운 존재들이다. 하지만 이놈은  우리 내외의 보호 아래 더불어 잘 지내고 있다.

a  그래도 기별이 없자 현관문까지 다가와서 보채고 있다.

그래도 기별이 없자 현관문까지 다가와서 보채고 있다. ⓒ 박도


내 일을 방해하는 애물단지


그런데 이즈음 들어서 부쩍 외로움을 느끼는지 저와 놀아달라고 보채는 빈도가 매우 잦다. 특히 아내가 집을 비울 때는 하루 종일 내 글방 언저리를 맴돌면서 같이 놀아달라고 울부짖는다. 나는 그 소리를 못 들은 척 내버려 두면, 창틀까지 뛰어올라 유리창 너머로 방안을 쳐다보며 슬픈 표정으로 저를 봐달라고 목청을 돋운다. 나는 그제야 하던 일을 밀치고 그 놈에게로 가서 안아주면 지그시 눈을 감고 좋다고 마냥 ‘그렁그렁’거린다.

밤에는 그런 보챔이 없었는데 이제는 한밤중에도 인기척만 나면 애절하게 ‘야옹’거린다. 생각할수록 그놈이 가엽기 그지없다. 어쩌다가 이 강원 산골까지 와서 평생을 혈혈단신으로 살아가는가. 그는 젖이 떨어진 뒤, 어미로부터 떨어져 나와 거세수술을 받고는 우리 아들에게 간택되어 내 집으로 온 것이다.


a  마침내 방문까지 다가와 사랑의 세레나데를 부르고 있다.

마침내 방문까지 다가와 사랑의 세레나데를 부르고 있다. ⓒ 박도


나는 고질의 비염을 가지고 있기에 솔직히 그동안 털 공해가 심한 그 놈을 달갑지 않게 여겼다. 하지만 그 놈과 단 둘이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자 서로 정이 깊어지고, 이 세상에 별처럼 많은 중생 가운데 어떤 연으로 한 집에 살게 되었는지, 아무래도 그 연분이 심상치 않은 것 같다. 아내도 그 놈이 어쩌면 돌아가신 조상이 환생해서 내 집을 찾은 지도 모른다고 한다.

아무튼, 하늘이 볼 때는 사람이나 고양이나 다 같은 생명으로 귀한 존재다. 오늘은 새벽까지 일을 하다가 차라도 한 잔 끓여 마시고자 덜그럭 거리자 그 놈이 용케도 알고서 울부짖는다. 차를 마시다가 심야보일러실 제 집에 가자 반갑게 ‘그렁그렁’하면서 내 품에 안긴다. 한참 동안 그 놈과 놀아준 뒤 제 집으로 돌려보내면서 잘 자라고 타일렀다.

그 놈은 내 말귀를 알아들었는지 더 이상 소리가 없다. 그 놈은 내 일을 방해하는 애물단지다. 아마도 그 녀석이 나에게 좀 쉬어가며 일을 하라는, 내 건강을 염려하며 보내는 사랑의 메시지인지도 모르겠다.  

a  제 놈에게 다가가자 마당에 누워 애무를 기다리고 있다.

제 놈에게 다가가자 마당에 누워 애무를 기다리고 있다. ⓒ 박도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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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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