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대 후반 늙은이가 목욕탕에서 느끼는 일들

선진국으로 가는 계단은 멀구나

등록 2008.01.14 10:37수정 2008.01.14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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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벼운 등산이나 걷기 운동을 두 세 시간하고, 대중 목욕탕에 가는 것을 즐긴다. 시간을 여유 있게 보낼 수 있어 행복하고, 밥맛이 더 생겨서 건강에 좋다. 그런데 워낙 물자가 귀한 시대에 살았고, 전직 교사인 탓인지, 젊은이들의 목욕하는 모습이 마음에 거슬린다.

 

나는 샤워를 한 뒤 온탕에 들어가, 20분간 반신욕을 즐긴다. 샤워를 하는 젊은이 중에는 물을 전혀 아껴 쓸 줄 모르는 이가 많다. 내가 다니는 목욕탕은 짧은 시간 켰다 자동으로 꺼졌다 하는 개폐식이 아니고, 손님이 켜고 끄고 하는 수동식이다. 샤워기의 수도꼭지를 계속 틀어놓아 물이 목욕탕 바닥으로 기운차게 떨어진다. 젊은이는 샤워기에서 떨어지는 물을 피해 서서, 면도를 하거나 몸에 비누칠을 한다. 바닥으로 떨어지는 물은 한 방울도 젊은이의 몸에 닿지 않는다. 아마도 3분 넘게 물을 헛되게 흘려 버렸을 것이다. 자기 집에서도 이렇게 할까?

 

나는 보다 못해, 그젊은이에게 다가 갔다. 아주 부드러운 말씨로 "아저씨! 미리 사과하고 말씀드립니다. 수도꼭지를 끄고, 면도를 해도 되지요? 나중에 켜고 씻으면 되지 않을까요요?" 미리 사과하는 이유는 기분좋게 목욕하는데 공연히 간섭한다는 오해를 말아 달라는 뜻이다. 대개 머리가 허연 늙은이가 하는 말을 받아 들여, 수도꼭지를 얼른 잠그고, 면도를 하거나 비누칠을 한다. 나는 "고맙습니다. 내 뜻을 이해해 주어서…"라는 인사를 했다.

 

그러나 아주 더러는 내 말을 들은 척, 만 척, 하던 면도나 비누칠을 계속한다. 샤워기에서 나오는 아까운 물은 그의 몸에 한 방울도 닿지 않고 바닥으로 흘러 떨어진다. 나는 마음이 괴롭지만 참고 다음 말을 잇지 않았다. 계속 말을 하면 험한 말이 나오거나 심하면 주먹이라도 날아올 듯하다. 이런 손님이 허비하는 물값을 목욕탕 주인이 물어야 하고 그래서 목욕값이 오르는 원인이 되리라고 생각해 본다.

 

그의 표정은 '재수없게 별 거지같은 늙은이가 아침부터 간섭이야'하는 듯 보였다. 나 자신도 '전직 교사라서 직업 근성 티를 벗지 못하는구나'란 생각이 들어 속으로 웃었다. 요는 물을 절약하는 일이 습관화되지 못한 것과 '내것이 아닌데 뭐 막 쓰면 어때' 하는 안이한 생각에서 그럼 모습들이 나오는 것이리라.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마음은 점점 편치 않다.

 

샤워기와 수도꼭지 옆에 비누 놓는 그릇이 있다. 거기에는 면도를 하고 난 손님이 다 쓴 면도기나 칫솔들이 버려져 있다. 바로 옆에 있는 휴지통에 버려야 하는데, 손님은 자기 편한 대로 그냥 버리고 나갔다. 몸을 닦고 난 수건도 수도꼭지 위나 비누 그릇 안, 목욕탕 바닥 여기저기에 마구 버렸다. 다 쓴 수건을 수거하는 큰 대바구니가 저만큼 위치에 있는데, 꼭 이사한 뒤의 집구석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마음이 어지러워 계속 목욕할 마음이 없어진다.

 

이런 것을 치우는 일은 목요탕 종업원이 할 일이지, 손님인 자기가 할 일이 아니라고 착각하고 있을까? 나는 그만 목욕을 끝낼까 하다가 참고서, 그 어지럽게 널린 수건, 칫솔, 면도기를 걷어다가 휴지통과 대바구니에 담았다. 산란한 주위가 좀 정돈되니, 기분이 안정되었다.

 

목욕을 끝내고 마른 수건으로 몸을 닦으려고 화장대로 갔다. 선풍기 두 대가 쓰는 사람이 없는데도 계속 돌아간다. 손님이 몸을 말릴 때 쓰고 나서 껐다가, 다른 사람이 쓸 때에 다시 켜도 되늘 일을, 하루 종일 계속 돌아가나 보다. 아무도 그냥 돌아가는 선풍기를 끌 생각을 안 한다. 이번에도 내가 선풍기를 껐다. 옆에 있는 젊은이들이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 보는 듯하다. 어느 쪽이 정상이고 어느 쪽이 비정상인지 착각할 만하다.

 

옷을 입으려고 옷장 앞에 섰다. 마루 바닥에 먼저 간 손님들이 제 몸을 닦은 수건들을 마구 버렸다. 실내를 둘러보니 화장대 여기저기, 손님들이 쉬면서 앉는 평상 위에도 다 쓴 수건이 어지럽게 버려져 있다. 이번엔 그걸 치울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여간한 인내심으로는 목욕의 전과정을 마음 편히 끝내지 못한다.

 

기본적인 상식이 통하지 않는 세상이 되었다. 공동체 사회에서 개인이 해야 할 최소한의 역할도 피한다. '대통령 각하'라고 말해야 신변이 안전하던 세상에서, 대통령을 아무데서나 욕해도 별 탈 없는 세상이 되었다. 이것도 자유의 신장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자신은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부동산 투기에 열을 올리는 사람일수록, 정부가 부동산 대책을 잘못 세워서 국민의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쉽게 말한다.

 

세상이 잘못 되어도 너무 잘못 되어 간다. 공동체 의식은 점점 희미해지고, 나 혼자만, 우리 가족만 부자가 되어, 돈 많이 쓰고, 잘 놀러 다니고, 재미있게 살면 가장 성공한 사람이라고 착각한다. 이 국민 의식의 타락이 도를 넘으면, 양극화는 더 심해지고, 사회적 갈등은 수습할 수 없는 지경이 되지 않을까 두렵다.

 

교육의 근본을 다시 검토햐야 한다. 교육의 목표를 점수를 잘 따서 나 혼자 '성공하는' 인간이 아니라, 공동체 사회를 더 행복하게 만드는 인생으로 사는 것에 두어야 한다. 선진 복지 국가는 혼자만 잘 사는 나라가 아니다. 이웃과 함께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사회다.

덧붙이는 글 | 일상에서 느끼고 생각한 바를 적었습니다. 젊은이들에게 절약하는 마음을 길러 주어야겠다는 생각입니다.

2008.01.14 10:37ⓒ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일상에서 느끼고 생각한 바를 적었습니다. 젊은이들에게 절약하는 마음을 길러 주어야겠다는 생각입니다.
#늙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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