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죽걸랑 태우지 말고 너 입거라"

[엄마하고 나하고 35회]

등록 2008.01.15 12:01수정 2008.01.15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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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회에 이어서)

 

이쯤 되면 현실과 허구를 구별 한다는 것이 무의미하다. 딸자식을 몇 년 키우다 보니 아들로 변했고 그 덕에 윗도리 옷을 얻어 입었다는 어머니 이야기는 내가 쓴 노인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이야기였다. 애를 낳고 사흘 지나서 또 하나 더 낳았다는 것도 소설 속에서나 볼 수 있는 이야기다.

 

그게 사실이었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어머니랑 나는 눈물까지 찔끔거리며 웃다말다 하였다. 소설 읽는 재미를 어머니 이야기 속에서 다 누리고 있었던 것이다. 어머니 말씀은 그것 자체로 훌륭한 구연소설이었다. 어머니가 이야기를 계속 이어가게 하고 싶었다.

“어무이. 그란데 해동띠기 딸래미가 아들 놀 낀 줄 어떻게 알았어요?”
“알긴 뭘 알어. 나도 모르기 씸벅 행기 마장기지.”


“그러면 불쑥 말씀 하신 게 그렇게 다 맞았단 말에요?”
“인자 시집 강기 눈이 붓도록 우능기 하도 보기 딱해서 그냥 보고 있을 수가 있어야제. 쪼끼난닥 카는데 오짜노.”

“그래도 그렇죠. 아들인지 딸인지를 어떻게 알아맞힌단 말이에요. 의사도 아니면서.”
“나는 엄는 얘기 안 지낸다.”

“그래도 그렇죠. 아들인지 딸이지 어찌 알아요.”
“아니. 그럼 내가 지금 거짓말 한단 말가? 이놈이요!”


“아뇨, 아뇨. 그게 아니고요.”
“의사락꼬 다 아는 줄 아나. 병은 딱한 마음이 있어야 나수는 기지 약 각꼬 나수는 기 아이다. 딱한 마음이 크믄 누구라도 다 맞추는 기라.”


“옷은 진짜로 받았어요?”
“그때 받았던 옷은 나한테 좀 커서 너그 큰 누야 줬다 아이가. 장롱 속에 지금도 있는지 몰라.”

a 웃옷 나 입으라고 어머니가 주신 조끼

웃옷 나 입으라고 어머니가 주신 조끼 ⓒ 전희식

▲ 웃옷 나 입으라고 어머니가 주신 조끼 ⓒ 전희식

나는 누나가 그 옷을 입고 다니는 것을 본 적이 있다고 맞장구를 쳤다. 어머니는 그 보라는 듯이 기세가 올랐다. 그러더니 입고 계시던 조끼를 벗어서 나 입으라고 주시는 것이었다.

 

“저 입으라고요? 아유. 안돼요. 지 에미 옷을 사 드려도 모자랄 판에 어머니 옷 뺏어 입는다고 사람들이 나 흉봐요.”


“에미 입던 거 자식 입히는 거는 예사라. 흉은 누가 본다고 그라노. 입거라. 에미 자식은 한 몸이닥 카는기다.”

“네?”

“너는 날 보믄 맘 상할끼고 나도 너 고상하는 거 보믄 맘 상하고. 내가 가기 전에 개 한 마리 사다가 너 꼬아주고 가야 될낀데 아이고오 오찌 될랑고. 입그라. 응? 곧 추워지는데 따시기 입거라.”

어머니 목소리가 바뀌는가 싶더니 분위기도 바뀌기 시작했다.

 

“젤 불쌍항기 너라. 묵을끼 남아 있어도 묵으락꼬 안 카믄 묵을 줄도 모르고, 형들 안 묵었닥꼬 냉가두고.”

 

하는 수 없이 나는 어머니의 누르스름한 조끼를 입었다. 등짝이 넓적한 게 보기 좋다며 어머님이 내 등을 쓸어내리며 좋아 하셨다. “내가 죽더라도 이거는 태우지 말고 니가 입거라”고 하셨다. 나는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했다.

“누가 머락카믄 그래야. 우리 어무이 생각나서 어무이 옷 입는닥꼬.”

 

그렇게 말 하겠다고 대답했다. 말 뿐이 아니라 닳아 못 입을 때까지 어머니가 주신 조끼를 입기로 마음먹었다. 어머니를 ‘의식화’ 시키겠다고 책을 읽혀 드리고 노인 소설을 직접 쓰기까지 하면서 얻은 답례품(?)이었다.

 

(36회에 계속)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한국농어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8.01.15 12:01ⓒ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한국농어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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