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여행수칙은 무엇인가요?

[평범한 아줌마 선생의 인도여행 16] 여행 수칙을 어기고 끌려간(?) 어느 게스트 하우스

등록 2008.01.15 21:24수정 2008.01.16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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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7일 화


라다키 소녀 돌마

 

아침인 것 같다. 이곳이 어디일까? 그래도 편안하게 누워 있으니… 노크소리.

 

“……………?”
“들어와 봐요. 이야기 좀 해줘 봐요. 여기 게스트하우스 이름은요?”
“#@%&$#게스트하우스…”
“?… 아가씨, 이름이 뭐예요?”
“돌마…”
“돌마?…돌마!”

 

라다키 소녀 돌마  그녀의 센스와 정성이 동시에 느껴져서 많이 행복했습니다. 지금 봐도 웃는모습이 예쁘네요. 참, 이곳의 설탕은 왕소금처럼 굵고 큰데 설탕물 맛이 깔끔하고 개운합니다.
라다키 소녀 돌마 그녀의 센스와 정성이 동시에 느껴져서 많이 행복했습니다. 지금 봐도 웃는모습이 예쁘네요. 참, 이곳의 설탕은 왕소금처럼 굵고 큰데 설탕물 맛이 깔끔하고 개운합니다. 신영미
▲ 라다키 소녀 돌마 그녀의 센스와 정성이 동시에 느껴져서 많이 행복했습니다. 지금 봐도 웃는모습이 예쁘네요. 참, 이곳의 설탕은 왕소금처럼 굵고 큰데 설탕물 맛이 깔끔하고 개운합니다. ⓒ 신영미

 

그녀가 들고 들어온 따뜻한 설탕물을 마셨다. 그녀는 대접에 뜨거운 물을 담고 그 안에 컵을 넣어 설탕물이 식지 않도록 했다. 나름대로의 살뜰한 배려였다. 다시 잠이 들었다. 달콤하고 깊은 잠이었다. 

 

얼마나 잤던 걸까? 목 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얼마나 흘러내렸던 걸까? 베개머리가 눅눅하다. 창 밖을 바라보았다. 장미 한 송이가 예쁘게 피어 있다. 보기에 참 아름답다.

 

침대 머리맡 위 창문에 걸린 커튼이 바람에 흔들린다. 바람에 노랑물이 들었던지 커튼 그림자에 노랑물감을 뿌렸는지? 포근한 오후의 햇살이 창가에 가득하다. ‘메리 골드 같네…’ 그 노란빛은 꼬리를 달 듯 방안 깊숙이 길게 스며들어왔다. 그 빛이 닿은 밝은 곳과 닿지 않은 잿빛의 공간은 분명히 달랐다. 빛과 어둠의 경계가 너무 날카로워 눈이 아려온다.

 

창가 옆 장미 꽃  이곳의 햇살은 유난히 투명해서 꽃빛도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창가 옆 장미 꽃 이곳의 햇살은 유난히 투명해서 꽃빛도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신영미
▲ 창가 옆 장미 꽃 이곳의 햇살은 유난히 투명해서 꽃빛도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 신영미


“안녕! 정말 고마웠어요!”

 

 다시 게슴츠레 눈을 뜨니 어둔 공간 한가운데 뭔가 눈에 들어왔다. 소파에 뉘어 있는 배낭.

 

 ‘나는 여행 중이었어…’ 그리고 어제 밤 간신히 레의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던 일과 그 어려운 여정을 함께 했던 일행들, 연실씨, 대진씨, 정혁씨, 희라씨의 얼굴들을 기억해내려 애썼다.

 

“정말 고마웠어요. …여러분이 없었다면……”
“이스라엘 속담에, 결혼식에 가서 많이 웃었느냐? 그러면 그 만큼 장례식에 가서 울어야 한데요. 만남과 이별도 본래 하난가봐요.”
“괜찮으시겠어요? 숙소는 미리 정해놓으셨나요? 너무 깜깜한데요.”
“언니쌤! 잘 가세요! 그리고 우리가 처음 그랬던 거처럼, 우연히 다시 만나겠죠?”

 

우린 그렇게 작별의 인사를 나누었다. 그리고 불빛 한 조각 없는 칠흑 같이 어둔 버스터미널. 여행자들은 어둠 속으로 삽시간에 사라져버렸다. 덜컹 겁이 났었다. 게스트하우스 호객꾼들이 다가오는 것을 피하려 일부러 걸음을 빨리하며 앞으로만 걸었다. 마치 어디 갈 데를 이미 정해둔 사람처럼.
 
‘그랬었지, 그 후에 어떻게 해서 이곳에 누워 있게 된 거였더라?’

 

어둠속의 낯선 사람  
 
터미널을 빠져나오니 눈빛이 강한 현지인들, 이들의 배회하는 듯 느릿한 걸음에 자꾸 신경이 쓰였다.


‘정연이와 만나기로 한 게스트하우스는 경찰서 근처라 했으니 찾기는 쉬울 거야. 일단 그곳까지만 가면… 설마 경찰서야 금방 물어보면 알겠지.’


과일 가게에서 토마토 열 알을 사면서 경찰서의 위치를 묻고 싶었지만, 가게점원 표정이 수상하게 칙칙하고 퉁명스럽다. 차마 물어볼 엄두가 나지 않는다.

 

제법 걸었는데도 게스트하우스 간판의 레온사인 뿐, 발밑이 보이지 않을 만큼 어둠은 무겁고 깊었다. 지나는 사람1, 2… 한참 후에…3 … 번번이 물어야 하는 타이밍을 놓치고 있다. 한 남자가 정지한 채 서 있다. 이번엔 내 쪽에서 움직여 가면 그에게 닿을 수 있다.


그는 지나치다 싶을 만큼 상세히 설명한다. 도무지 기억도 다 못하겠다. 더구나 이 깜깜한 밤중에 표식 하나 없다. 난감한 표정을 읽었던지, 

 

“타세요!”
“네??”

 

어둠 속에 고체덩어리, 오토바이가 한대 서 있었다.

 

여행수칙을 어기다

 

‘이를 어째? 타? 말어? 나의 여행 수칙 하나. 해 떨어지면 외출하지 않는다! 수칙 둘. 불편하더라도 최대한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아니면 차라리 걷거나 확실한 사람하고만 동승한다. 수칙 셋, 앞의 두 가지 수칙을 꼭 지킨다! 후회보단 예방이 최선의 정책이니까. 그런데 그럼, 세 가지 수칙을 다 어기는 건데… 게다가 이곳 지리조차 전혀 모르고… 하지만, 이 사람이 먼저 접근하지 않았었어. 왠지 평범한 사람일 거 같아. 나와 같은. 저 기다리는 표정 좀 봐. 어쩐다?’

 

“네… 감사합니다….”

 

이 무슨 입방정인지. 감사가 저주가 될지 누가 알리… 벌써 튀어나온 말 주워 담을 수도 없고. 아무튼 이성적 판단보다 세치 혀가 더 빨랐다. 그리고 난 너무 너덜너덜 지쳐 있었다. 돌아보면 그 순간 걷지 않아도 된다라는 유혹, 그 달콤한 최면에 걸렸던 걸까?

 

푸르릉~~냅다 질주하는 오토바이맨와 겁없는 배낭녀!

 

“꼬레아라구요? 어디 찾아가는 거예욧?”
“레인보우 게스트하우스요…”
“경찰서에서 어느 쪽인지는 알아욧?”

“아니요. 일단 가보면….”

 

일단 도착했지만 어둠만 끌고 왔을 뿐 변한 건 아무것도 없다.

 

“정말로… 감사했습니다. 이거… 토마토예요…”

 

토마토 세 알을 내밀었다. 그는 쑥스러운 듯 거절한다. 다시 받아줄 것을 간곡히 청했다. 아무튼 이곳까지 무사히 온 것 만해도 충분히 감사할 일 아닌가? 진심은 통하는 법이지. 세 알을 받아 호주머니에 넣는다. 
  
그런데, 그의 친절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말이 어눌한 외국인을 대신하여 지나는 사람을 붙잡아 레인보우게스트하우스를 묻는 것이 아닌가?

 

'여행 수칙을 어긴 결과 치곤 너무 좋은 거잖아…!'

 

‘혹시 만일’ 있을 수 있을 법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마음으로 원하였으나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던 것은 내 의지완 무관한 일이었다. 그건 그의 뜻이었고 그의 의지였다. 내가 결과하지 않은 일이 내게 미소 짓는 일은 늘 감사였고 감동이었다. 그것이 아무리 사소하다 할지라도 마음은 그 사소함을 묻지 않았다. 본질은 본질로서 답했다.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나는 희미하게나마 섭리 같은 걸 느꼈던 거 같다. 신의 이름은 그렇게 우리 곁에 찾아온다는 섭리. 나는 마음 속으로 그에게 감사했고 신에게 감사했다.

 

그런데, 경찰서 셔터문은 굳게 닫혀있고 인적이 뚝 끊겼는지 더 으슥했다. 경찰서하면 24시간 불을 밝히고 근무태세를 갖추고 있을 줄 알았다. 그리고 경찰관아저씨들은 근처 게스트하우스 지도를 꿰차고 있을 줄 알았는데. 그럼 이곳은 밤엔 범죄가 없는 걸까? 밤에는 술 취한 사람들의 주사로 시비가 붙거나 작은 교통 분쟁도 없나? 레(Lhe)는 라다크의 수도로 번화한 곳이 아닌가? 그런데도 경찰서가 저리 졸고만 있다니….

 

작은 늪 같은 연못이 나타났다. 연못 안에 붉으스레한 풀들만 우거지고 물은 말라버린 거 같아 갈증만 더하고 있었다. 배낭의 무게가 어깨를 짓누른다. 다시 큰 길 쪽으로 오토바이를 타고 천천히 내려왔다.  

 

“저기요! 너무 신세를 지는 거 같아 안 되겠어요. 오늘 밤 묵을 게스트하우스를 이 근처에서 정하는 것이 낫겠어요.”

 

캣우먼과 돌체

 

그 때 서양가죽 옷을 입은 캣우먼 같은 여자가 지나고 있었다. 둘은 아는 사이 같았다. 나를 힐끗 보며 뭔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그리곤, 다시 또 청바지 차림의 남자가 뒤에서  나타났다. 여자는 이 청바지 남자를 잘 아는 모양이었다. 이 남자 이름은 돌체였다.

 

“돌체! 일루 오슈! 냉큼! 잘 만났어. 이 분이 오늘 밤 묵을 방이 필요하대. 돌체네 게스트하우스로 가면 되겠네. 저기요! 이봐요! 일박에 150루피 어때요? 괜찮어요?”
“네… 이곳에서 멀지만 않으면요….”


돌체에게서 약간의 알콜냄새가 나는 거 같았는데, 


“뭔 소리? 우리 방은 200루피야.”
“뭘 그래? 이 밤중에 여자 분이 가실 곳이 필요하다는데…. 어짜피 비어 있는 방이잖어. 50루피 깎어!”


서양가죽옷을 입은 여자는 괄괄하게 혼자 교통정리를 다한다.

 

돌체는 그만 졌다는 표정으로,


“그럼, 타시죠?”
“네? 또 타요?? 타고 싶지 않은데….”
“뭐라고요? 차로 가면 10분이면 됩니다.”
“네? 네….”

 

벌써 몸과 배낭은 따로 따로 떨어져 차에 실렸다. 10여분은 길고도 긴 시간이었다. 차의 엔진냄새가 심하게 났다. 창문을 좀 열어달라고 했다. 헐렁한 푸대자루 모양 창문에 기대어 어둔 창 밖만 바라보았다. 돌체가 백미러로 늘어져 있는 배낭녀를 다 보고 있었던지 넌즈시 이곳은 불교의 땅이니 아무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불교의 땅!이라고…불교의 땅!….'

 

나는 그 뜻을 쉽게 이해했다. 그리고 다시 신의 섭리를 떠올렸다.

 

그는 나의 배낭을 짊어지고 침착한 걸음으로 걸어갔다. 그에게 어떤 인연의 끈에라도 끌려가듯 이끌려 정원이 있는 게스트하우스로 들어갔던 거 같다. 어둔 정원에는 나무들이 많이 심어져 있었다. 나무들 사이를 지날 때 아주 달콤하고 향긋한 냄새가 풍겨왔다. 무슨 나무였을까? 안내해주는 방에 들어가자마자 침대에 뉘여졌다. 다시 속이 심하게 뒤틀려지고 있었다. 눈을 감아버렸다. 
 
잠시 후 누군가가 뜨거운 차를 마시도록 일으켜 세웠다. 입 안 가득 뜨거운 생강물이 고이고 목을 타고 넘어갈 때 잠시 눈을 떴었다. 어린 여자아이 같았다. 다시 눕혀지고 불이 꺼졌다. 꿈도 꿀 수 없었다.
 
새로운 여행 수칙

 

어젯밤의 일들은 또렷하지만 아직도 내겐 이곳이 낯설기 만하다. ‘휴우~ 종일 누워만 있었구나.’ 앞으로의 여행이나 당장 내일 뭘 할까하는 생각은 오리무중. 지금 필요한 것은 휴식이었다.

 

다시 울렁증. 걷잡을 수 없게 되어, 방문을 열고 오른쪽으로 돌아 막다른 곳에 있는 화장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갔다. 바닥이 너무 차갑다. 아직도 게워낼 것이 이렇게 남아 있었다니. 뭘 더 쥐어짜내야… 몸 안에 끊임없이 출렁이는 뭔가를… 그것이 무취의 맑은 물이라면 좋겠다. 기다시피해서 다시 문을 열고 나오니, 대기하고 있었다는 듯이 돌마가 부축해준다. 몸과 맘은 이제 아무 데도 갈 수가 없다.  

 

“추워요!” 그리고 뜨거운 생강차와 토마토수프를 마셨다. 다시 뉘여졌을 때, 담요가 하나 더 덮어지고 이마에 닿는 손길이 따뜻한 느낌이다.

 

침대에 누워 다시 지난 시간을 곰곰이 추억했다. 그리고 여행수칙을 하나 더 추가했다.


여행수칙 하나 추가. 모든 여행수칙에 최우선하는 것은 순간의 느낌에 충실할 것. 불필요한 두려움과 피해의식으로 찾아오는 친절을 피해가지 않기. 그것이 사실은 가장 안전한 방법일지도 모른다.

 

한밤중의 빛의 세레나데

 

한밤중에 갑자기 깨었다. 누군가 깨우기라도 한 걸까? 오싹한 추위로 소름이 돋아 몸을 웅크리며 말려진 담요를 다시 끌어다 덮었다. 창문을 바라보니 커튼 사이로 노란 불빛이 보인다. 마당의 테이블 곁 나무 위에 매달아논 백열등 불빛. 바깥 풍경이 궁금해서 숄을 단단히 두르고 마당으로 나섰다. 하늘지붕 아래의 밤은 어떨까? 낮에는 빛에 가려 보이지 않던 뭔가 있겠지.

 

불빛 아래 하루살이인지 날벌레들이 주변에 어지럽다. 그런데 이곳의 전력사정이 좋지 않은 탓일까? 깜빡깜빡 하더니 사방의 불이 모두 나가버렸다.

 

순식간에 암흑천지가 되었다. 그러자 방금 전까지도 알아보지 못했던 별들이 일제히 머리위로 소낙비처럼 쏟아져 내려오는 것이 아닌가? 수없이 많아서 떨어져 내리는 별빛들 중 어느 별빛을 받아야 할지 알 수도 없었다.

  

“우아아…!” 오늘 저녁부터 이 별들이 쏟아져 내렸단 말이지? 그것도 모르고 잠만 쿨쿨 잤고?

 

잠시 후 다시 전등이 들어왔지만, 더 이상 백열등은 나의 관심에서 멀어져 버렸다. 이젠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진정한 빛은 저 어둠 넘어 하늘에 변함없이 항상 우리 머리 위에서 빛나고 있었단 것을 말이다. 

 

별 맥간, 마날리에서는 몬순으로 별볼일 없었는데요. 이곳은 별천지였어요. 노을이 지면 하나 둘 별이 나타납니다. 어찌나 크고 밝던지요. 그 별빛을 우리나라에서도 볼 수있다면 참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합니다.
맥간, 마날리에서는 몬순으로 별볼일 없었는데요. 이곳은 별천지였어요. 노을이 지면 하나 둘 별이 나타납니다. 어찌나 크고 밝던지요. 그 별빛을 우리나라에서도 볼 수있다면 참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합니다. 신영미
▲ 별 맥간, 마날리에서는 몬순으로 별볼일 없었는데요. 이곳은 별천지였어요. 노을이 지면 하나 둘 별이 나타납니다. 어찌나 크고 밝던지요. 그 별빛을 우리나라에서도 볼 수있다면 참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합니다. ⓒ 신영미
2008.01.15 21:24ⓒ 2008 OhmyNews
#인도여행 #라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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