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서구 문명과의 접촉이 어떻게 라다크 전통사회를 급속하게 그리고 밑바닥에서부터 철저하게 붕괴시켜 왔는지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했다. 도중에 그녀의 목울대가 잠시 울렁이기도 했던 거 같다. 아무튼, 그녀는 라다크의 변화를 목격하면서 라다크 사람들에게 서양문물과 서양문명의 어두운 면들을 정확히 알려주는 것이 자신의 일이었다고 했다. 그 결과 라다크사람들은 서양식 개발의 폐해가 라다크만의 문제가 아니라 지구 곳곳에서 앓고 있는 고통임을 인식하게까지 되었다고 했다.
라다크 사람들도 이제 알 것 다 알고 무척 똑똑해졌다고. 이제는 돌이킬 수 없이 관광산업에 의존적인 경제상황이 되어버렸지만 경제적 자립의 기초인 로컬경제를 일으키고, 자신들의 문화와 전통을 이어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결국, 라다크 사람들은 허물어지는 그 자리에서 다시 일어서고 있고 그 증후는 이미 상당히 진척되고 있다고 했다.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자각하면서 미래의 구체적인 대안을 찾아 가기 시작했다고.
그리고 서구를 향해 그리고 인류의 미래를 위해, 과거로부터 이어져온 오래된 라다크 문화가, 이들의 삶의 원형이 우리 모두에게 얼마나 소중한 자산인지 강조했다. 이들의 노력은 단지 라다크에 국한되지 않고 우리 모두에게 희망의 메시지가 될 거라고. 또 현재는 무엇보다 세계 곳곳에서 지속가능한 생태적 삶을 지키기 위해 연대하는 것이 필요함을 힘주어 말했다. 그 연대적 실천을 위해 올해 11월 20일에는 우리나라에 방문할 예정이라 했다. 훌륭한 강연이었다.
그녀는 느리지만 분명한 목소리로 말함에 주저함이 없고 막힘이 없었다. 아마 수도 없이 이런 질문에 대해 답해왔을 것이지만, 이 새로운 사람들 앞에서 처음처럼 새로웠으리라.
관심
라다크여성연대를 나와 게스트하우스로 돌아가는 길에서 나는 뭔가 허전하다는 느낌을 떨져버리지 못했다. 뭘까? 이 허전함이란…. 그리곤, 이번에는 내 자신에게 질문한다.
'그녀는 과연 자신을 낳아준 서구의 시선을 실제로 얼마만큼이나 극복했을까?' 잘 모르겠다. '라다크 사람들과 함께 한 30년, 그 세월이 흘렀어도 그녀가 처음 순수의 땅 라다크에서 받은 그 느낌을 그대로 갖고 있을까? 이들에 대한 진심어린 애정을 처음처럼 갖고 있을까?' 역시 모르겠다. '어쩌면, 그녀가 서구의 학자라는 위상 덕분에 더 많이 알려지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설득력을 얻고 있는 건지도 몰라.'
하지만, 묻고 답하는 순간 이런 것들은 내겐 관심밖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의 관심은 그녀에게 있지 않았다. 그녀의 학자로서 그리고 이제는 생태운동가로서 특이한 인생여정에 있지 않았다. 라다크의 현재와 미래 운명은 과거에도 그러했듯이, 한두 사람에 의존해 좌우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닐 터이다. 그러므로, 나의 관심은 온전히 라다크였다.
라다크의 문제는 라다크 사람들이 가장 절박할 것이다. 그리고보니, 저런! 이미 나는 희망의 싹을 보았던 거였다. 헬레나에게서 듣고 싶었던 바로 그것, 희망이란 실은 이미 내가 경험하고 있었던 거였다. 돌마와 젬마, 돌체, 돌체의 아버지, 이웃들, 돌마의 고향식구들과 마을사람들, 그리고 그 외 만났던 이름 모를 라다크 사람들에게서…. 갑자기 기분이 마구 좋아지기 시작했다.
'지켜보고 싶다. 희망이 아직은 있으므로 기회 닿는 한 지켜보고 싶다. 라다크사람들은 깨어나고 있으므로. 물질적 풍요 이전에 ‘행복’이 우리들 삶의 목표라고 한다면 이들은 그 감각을 누구보다도 더 잘 갖고 있었으므로. 또한, 만일 라다크가 자신의 실험들을 실패한다면, 우리 모두도 결코 이 시대로부터 자유롭지 않을 것이므로.'
1. 지역문화를 존중해주세요.
· 짧은 바지, 어깨나 횡경막뼈가 드러나는 옷을 삼가주세요. 특히 사원에서.
· 집이나 마당에 들어설 때, 사진을 찍을 때는 묻고 허락을 받도록 하세요.
2. 플라스틱, 비닐제품을 팔 경우 사지 말고, 거절해주세요.
· 새것보다는, 당신의 빈병을 이용하여 리필하세요.
· 비닐이나 플라스틱으로 포장된 식료품을 사지 마세요.
3. 물을 아껴써 주세요.
· 가능한 한 수세식화장실 대신 라다키 변소를 사용하세요.
· 친환경 세탁방법을 사용해주세요.
· 개울에서 바로 세수나 세탁을 하지 말아주세요.)
4. 에너지를 아껴주세요.
· 가능한 한 태양에너지를 이용한 샤워시설을 사용하세요.
· 재생 전기에너지를 위한 시설을 지원해주세요.
5. 차량 사용을 절제해 주세요.
· 가능한 걷거나 자전거를 타거나 함께 나눠 타세요.
6. 쇼핑이나 음식물을 지역의 것을 이용하여 그 지역경제를 지원해주세요.
· 그 지역특산 공예품, 자연제품을 구입해주세요.
· 지역 고유 식품을 먹어주세요.
· 다국적기업의 생산품을 피해주세요.
7. 지역단체를 지원해주고, 생태적 삶에 관심과 실천을 해주세요.
· 오래된 미래나 다른 다큐멘터리를 관람해주세요. 단, 일요일은 제외.
Spread the Word JU-LE!
줄레-줄레(감사합니다!)란 말을 자주 사용하여 퍼트려주세요.
시장통에서
시장 구경을 하다 Airtel 간판을 보자 들어가 다이얼을 돌렸다. 배탈과 설사로 이대로 있다간 정말 무슨 사단이 날 것 같다. 델리의 아시아나 항공사직원과 통화하고 15일 새벽1시 비행기표로 리컨펌했다. 그리고 서대장님의 권고대로 스리나가르로 내려올 생각에 공영버스터미널에 가서 스리나가르행 버스를 예매했다. 일정을 너무 급하게 잡는 건 아닐까? 아무래도 좋았다.
히말라야제품으로 감기약과 관절약을 몇 통 사고, 엽서, 입술 트는 데 바르는 립스틱과 살구기름을 샀다. 대부분의 로컬제품들은 포장과 용기가 단순 투박하다. 아예 광고문구란 찾아볼 수 없다. 간단한 제품 설명이면 그만.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이 정도의 포장 물건을 본다면 불량품 내지 시쳇말로 싸구려 삼류제품이라고 거들떠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물건 하나를 사면 그 물건에 묻혀서 개인적인 공간에까지 깊숙이 묻어 들어오는 각종 현란한 문구들로부터 우리는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 가끔 나는 고급제품 세련된 제품에 기가 죽을 때가 있다. 물건들의 홍수에 허우적거리면서.
게스트하우스 식구들
골목 앞에 돌체아버님이 쭈그려앉아 지나는 사람을 구경하고 계셨다. 나를 발견하시곤 오늘도 물으신다. 저녁밥 먹었느냐고. 헌데, 젬마가 배를 움켜쥐곤 땀을 흘리고 있었다.
“젬마! 젬마! 왜 그래?”
“속이 답답해요….”
“언제부터 아팠어?”
“점심 나절에….”
그러면서도 약국도 병원에도 가려고 하지 않는다. 그저 나아질 거란 말만 되풀이 한다. 하는 수 없이 바늘로 양손 엄지손가락 끝을 찔러 피를 내주었더니 겁내 하면서도 빙그레 웃기만 한다. 저녁 무렵이 되어 젬마와 저녁을 먹는 둥 마는 둥 짜이를 마시며 인도영화를 보고 있다. 불쑥 돌체가 들어왔다. 젬마의 얼굴이 먼저 환해진다. 그러나 돌체는 역시나 지쳐있는 표정.
“깜짝이야. 느닷없이 나타나시는데 뭐 있으시네요. 열심히 일했군요. 오늘도.”
“네... 그렇죠...”
무 토막 같은 짧고 굵은 대답과 함께 철푸덕 쇼파에 몸을 던지더니, 묻는다.
“술 좀 하시나요?”
“저런. 전 아직 술 마실 상태 아니랍니다. 역시 비즈니스 타입이지 의사타입은 아니시군요. 젬마는 술 좀 하나요?”
곁에 앉아 듣고 있던 젬마가 수줍은 듯 웃기만 한다.
“라다키 여성은 술을 마시지 않아요.”
“그래요? 어쩐지 불공평한데요. 그런데 돌체는 술을 좋아하나 봐요?”
“네… 특히 오늘같이 피곤한 날은 한 잔하고 잠자리에 들게 돼죠. 오늘 관광객 데리고 엄청 투어했어요. 운전하느라 힘들었어요. 저녁도 못 먹었어요.”
“저런, 뭐 좀 먹어야겠어요. 술 말고 밥이요.”
“하하… 네…. 그러죠.”
젬마가 준비해 놓은 볶음밥과 술안주로 과일을 깎아내왔다. 백열등 노란 불빛이 방안에 낮게 깔리면서 젬마와 돌체 얼굴의 반을 가려버리고 그 자리에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졌다.
“집에 돌아오면 무엇을 제일 원해요?”
“릴렉스죠. 하하.”
“지금 돌체는 일이 우선이죠? 집에 돌아오면 다음 일을 위해 잠시 퍼져 있는 거구요.”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예요?”
“돌체에겐 뭐가 제일 중요해요? 일?”
“사실 이 일을 좋아하진 않아요. 오늘은 게다가 공항 가서 유럽인이 잃어버린 여행자 가방까지 챙겨 와야 했어요. 시즌이 거의 끝나가는 것이 위로가 될 지경이에요.”
“하지만, 누가 그렇게 바쁘게 살라했어요? 돌체 아버님은 종일 방에 누워계시면서 사람냄새를 그리워하시는 거 알아요? 젬마는 배가 아파 식사도 못했어요.”
“…….”
“제가 너무 한가한 투정을 하고 있는 건가요? 그렇다면 미안해요.”
“하하하… 됐어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아버님과 젬마 제겐 소중한 사람이에요.”
그의 표정이 겨우 좀 진지해지고 있었다. 젬마에게 뭐라 라다키말을 건네는 거 같았다. 그러자, 그녀는 자연스레 돌체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다. 돌체는 그런 그녀를 위로하며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비로소 조금 안심이 되었다.
“이곳도 자본주의 바람이 불어서 예전의 라다키들의 삶의 가치가 도전받고 있지 않나요? 이제는 다들 돈 벌려고 노력하잖아요? 돌체씨도 게스트하우스에, 식당에, 여행사 운영에… 그래서 바쁜 것이구요.”
“네… 변화하고 있는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제겐 돈 버는 거 자체가 목적은 아니에요. 돈? 관심 없어요. 로컬푸드 레스토랑 운영에 대해서는 간섭하지 않아요. 하루 한 시간 정도 앉아 있다 나오는 게 고작이에요. 인도영화 좋아해요?”
“나름대로 매력 있는데요. 생각보다 무척 화려하네요. 여러 가지로.”
“전 저런 인도영화 뭐 재미는 좀 있지만… 글쎄요. 만일 저 배우들이 이곳에 오면 우리들은 마음을 열고 이야기하진 않아요. 오히려 불쌍하게 생각해요. 그들은 과도하게 사치스런 것들이 쓸모없다는 걸 모르니까요.”
밖으로 나왔다. 별들은 여전히 아름답고 빛나고 있다. 미루나무 사이로 별들이 보인다. 오늘은 별똥별이 떨어지는 순간 소원을 빌지 않으려 한다. 그저 무심하게 바라보는 것만으로 족했다. 별들의 별자리 이름은 모르지만, 이제 좀 눈에 익으려는 데 이곳의 모든 것들과 이별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차라리 무심한 편이 낫겠다싶다. 젬마의 속앓이가 가라앉지 않아 걱정이다. 염주알을 꺼내어 돌려본다.
“옴마니 밧메홈… 옴마니 밧메홈….”
2008.01.24 10:25 | ⓒ 2008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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