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근도둑 이야기> 포스터
연극열전
사실 연극 <늘근도둑 이야기>는 '대학로의 간장게장'으로 불러도 무방할 스테디셀러다. 맛깔 나는 풍자극으로 유명한 극단 '차이무'의 이상우가 극본과 연출을 맡고 강신일과 문성근이 출연한 <늙은도둑 이야기>이라는 제목으로 초연한 것이 1989년 4월.
이후 김영삼 정권이던 1996년과 1997년,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이 막집권한 2003년까지 명계남, 박광정, 유오성, 정은표, 이대연, 박철민, 최덕문 등 연극판의 실력파 배우들이 거쳐 가며 매진사례를 일궈낸 바 있다.
특히 2003년 4월, 노무현 대통령이 명계남이 '더 늙은 도둑'으로 두 번째 출연했던 4번째 작품을 관람해 화제를 모았다. 절대 권력인 '그 분'을 가감 없이 풍자하는 이 작품을 보고 대통령이 파안대소 했다는 것이 그 요지였다.
<화려한 휴가>의 김지훈 감독이 연출을 맡은 2008년의 <늘근도둑 이야기>. 이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은 극의 구조는 심심할 정도로 단순하다. 도둑질과 사기로 평생을 살아 온 두 노인이 한밤 중, 고가의 미술품이 즐비한 '그 분'의 집에 잠입했다 경비견에게 들켜 붙잡힌다는 내용. 주요 공간도 '그 분' 저택 거실과 취조실 단 두 곳이요, 주요 등장인물도 수사관까지 합이 셋이다. 그러나 이 단출한 연극의 힘은 속사포처럼 쏘아대는 '언중유골'의 매력에 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내가 대통령을 여덟 분 다 모신 도둑놈이야. 이승만 때는 미군부대 전문적으로 털어먹고, 박정희 때는 금고 전문가로 데뷔해 가지고 전국 수사기관에서 나 모르는 사람이 없었어. 최규하 때는 꿈에 떡 맛보듯 지나가서 내가 제대로 못 모셨어. 전두환 때는 비행기 타고 다니면서 전국의 부잣집 금고만 털어먹었지. 노태우 때, 김영삼 때, 김대중 때는 죽 안(감방)에 들어가 있었다고!" '더 늙은 도둑'의 걸쭉한 입담에서 쏟아져 나오는 대사들은 '절대 권력'의 이름을 거론하는 것만으로 묘한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