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몰입 교육에 몰입한 <조선일보>

[백병규의 미디어워치] 영어만 잘해도 이젠 군대 안간다?

등록 2008.01.28 09:08수정 2008.01.28 10:25
0
원고료로 응원
a 영어몰입교육을 적극 지지한 <조선일보> 28일자 사설.

영어몰입교육을 적극 지지한 <조선일보> 28일자 사설. ⓒ <조선일보> PDF



"영어 잘하면 군대 안간다."

결국 여기까지 왔다.

1월 마지막 주 월요일(28일) 아침 신문 역시 '영어교육' 문제로 어지럽다. 영어만 잘해도 군대 안갈 수 있다는 충격적인(?) 내용은 <중앙일보> 1면 머리기사 제목이다. 확실치는 않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관계자'의 말이다. 믿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하지만, 기사 내용이 구체적이다. "학교에 '영어교육요원(가칭)'을 배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으며 "30일 공청회에서 발표되는 방안에 포함될 것"이라고 한다. "현역 판정자 중에서 영어를 가르칠 수 있는 능력 등을 평가해 병역특례를 주는 방안이 될 것"이라고 한다.

인수위 "안된다고만 하면 끝이 없다"

<조선일보> 1면 머리기사는 영어 교사들에게 상당한 충격이 될 것 같다. '서울 초·중학교 수업시간 2배로 확대/인수위, 실력 미달 영어교사 3진아웃제 추진'으로 돼 있지만, 기사 내용을 보면 실력 미달 영어교사에 대한 '3진 아웃제'가 주요 내용이다.


이주호 인수위 사회교육문화분과 간사가 <조선일보>와 직접 인터뷰한 내용이다. 영어 교사들에게 5년 동안 여러 차례 평가를 받게 한 후 세 번 이상 평가에서 일정 수준에 미달하면 영어 수업을 맡지 못하게 하는 '3진아웃' 시키는 ‘법안’을 추진 중이라고 한다. 이들 삼진아웃된 교사들에게는 다른 과목으로 전과할 수 있는 기회를 주도록 한다는 것이다.

한나라당 의원인 이주호 인수위 간사는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영어교육 개혁은 청계천 복원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이주호 간사는 "안 된다고만 하면 끝이 없다, 영원히 못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조선일보>는 28일 사설('10년 배워 입도 벙긋 못하는 영어 교육 확 고치라')에서도 새 정부의 영어몰입교육 방침을 전적으로 지지했다. 능력있는 영어 교사의 확보나 수준별 분반 수업의 필요성을 지적하기도 했지만, 어려서부터 영어를 접하는 환경을 만들어 줄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고, 영어 조기교육이 국민의 주체성이나 정체성에 혼란을 줄 수 있다는 우려는 '공연한 소리'라고 일축했다.

새 정부의 영어몰입교육에 <조선일보>도 올인한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조선일보>만 보는 분들이라면, 오늘(28일) 같은 날은 <한겨레>를 한 부 사볼 필요가 있겠다.

기러기 아빠들 "단지 영어 때문에 외국 보낸 거 아니다"

a  <한겨레>에서는 기러기아빠를 비롯한 영어교육 이해당사자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아 눈길을 끌었다.

<한겨레>에서는 기러기아빠를 비롯한 영어교육 이해당사자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아 눈길을 끌었다. ⓒ <한겨레> PDF


<한겨레>는 영어교육혁신안에 대한 '집중 분석 시리즈'를 싣고 있다. 오늘은 두 번째다. 세가지를 짚었다.

첫째, 학급당 학생수(초등 28.7명, 중 35.3명, 일반고 33.7명)가 30명을 넘는 상태에서 영어는 물론 수학이나 사회, 과학 등을 영어로 가르치겠다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아무리 영어 교사의 수준을 높인다고 하더라도 현실적인 한계가 너무 분명하다는 지적이다.

둘째, 영어로 하는 영어수업 방침은 자율형 사립고 허용 등 '고교 다양화 300방안'과 결합될 경우 경제력 있는 계층에게만 그 혜택이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학생 수가 비교적 적고, 학생들의 수준이 일정 수준 이상인 특목고나 자율형 사립고, 기숙형 공립고 같은 경우에는 일정하게 효과를 볼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일반고교에서는 효과를 거두기 힘들 것이라는 전망이다.

셋째, 영어 몰입교육을 하더라도 '기러기 아빠'들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한겨레>가 '기러기 아빠'들에게 영어몰입교육에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기러기 아빠’들은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기러기 아빠들의 한결같은 이야기는 "아이들을 외국에 보낸 것은 입시위주의 무한 경쟁 때문이지, 단지 영어를 배우기 위해서 보낸 것은 아니다"는 것이다.

<한겨레>는 사설('영어 몰입교육, 학교교육 망친다')에서도 영어몰입교육의 비현실성과 그 폐해를 지적했다.

이른바 영어 몰입교육이란 것을 도입한 나라들이 캐나다와 홍콩·필리핀 등 영어를 '국어'나 '공용어'로 사용하고 있는 나라라는 점, 일부 대학에서 실시하고 있는 영어 수업이 기대만큼 효과가 나고 있지 않다는 점 등을 지적했다.

무엇보다 영어몰입교육이 초래할 '우리말 파괴'에 대해 우려했다. 어려서부터 영어로 사고하고, 인식하도록 요구받을 때 그 문화적·지적 능력이 어떻게 될지 우려했다.

<한겨레>는 "성적순 입시제도부터 혁파하고, 맞춤 교육이 가능하도록 교실당 학교수를 대폭 줄이고, 우수 교사 육성과 지원에 혁신적 대책을 마련하는 등 기초부터 다지"라고 조언했다.

그러나, 새 정부는 영어 몰입 교육을 적극 추진할 것 같다. 오늘 <중앙일보>나 <조선일보> 기사를 보면 그렇다. 별 고민은 없어 보인다. 이들에게 민족이나 문화 정체성 같은 말은 사치스럽거나 거추장스러워 보인다.

영어 잘 하자는데 뭐라 하랴만...

영어를 잘 할 수 있게 된다면 이를 마다할 사람들이 있을까? 그것도 학교 교육을 통해서 그럴 수 있다면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그 방안이 현실적이지 않을 때 그것은 많은 폐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에서 신중할 필요가 있다. 최소한 현실적 여건이나 우려되는 여러 가지 교육적 부작용 등에 대해서도 충분한 고려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이는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영어 콤플렉스’를 자극해 무리한 정책을 일방적으로 추진하려 한다는 의심을 살 수 있다.

<한겨레>는 "영어 과외 안받아도 대학 갈 수 있게 하겠다"는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의 발언이나, "고교 졸업하면 외국인과 의사소통할 수 있게 하겠다"는 이경숙 인수위원장의 발언은 "다분히 '정치적 효과'를 겨냥한 선전일 뿐 교육적인 접근은 아니"라는 평가를 내놓았다. 바로 이런 대중동원적 선동주의 경향을 우려한 것이다.

하지만, 제동은 그리 쉽게 걸릴 것 같지 않다. 브레이크 없이 질주하는 영어몰입교육 정책, 일단 그 구상의 결론이 어떻게 날지가 궁금하다.
#영어몰입교육 #영어 병역특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얼굴 창백한 계산원을 보고 손님이 한 행동 얼굴 창백한 계산원을 보고 손님이 한 행동
  2. 2 유럽인들의 인증샷 "한국의 '금지된 라면' 우리가 먹어봤다" 유럽인들의 인증샷 "한국의 '금지된 라면' 우리가 먹어봤다"
  3. 3 알고도 대책 없는 윤 정부... 한국에 유례 없는 위기 온다 알고도 대책 없는 윤 정부... 한국에 유례 없는 위기 온다
  4. 4 체코 대통령, 윤 대통령 앞에서 "최종계약서 체결 전엔 확실한 게 없다" 체코 대통령, 윤 대통령 앞에서 "최종계약서 체결 전엔 확실한 게 없다"
  5. 5 "윤 정권 퇴진" 강우일 황석영 등 1500명 시국선언... 언론재단, 돌연 대관 취소 "윤 정권 퇴진" 강우일 황석영 등 1500명 시국선언... 언론재단, 돌연 대관 취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