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육과정평가원 모습인수위는 29일 오후 3시부터 서울 삼청동 한국교육과정평가원으로 다음날 공청회에 참석할 10명의 토론 패널 대부분을 불러 공청회 진행 등에 관해 논의했다.
문경미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의 기관이 일정한 사항을 결정함에 있어서 공개적으로 의견을 듣는 형식."
'공청회'에 대한 사전적 개념이다. 여기에 "국민을 참여시킴으로써 민주주의의 요청에 부응한다"는 내용이 추가된다. 특정 청중을 설득하기 위해 사업 목적이나 계획 등을 발표하는 '설명회'와는 근본적으로 차원을 달리한다.
그런 점에서 30일 대통령직인수위 주최로 열리는 '영어 공교육 완성을 위한 실천방안' 공청회는 여러모로 이상하다.
"토론자들도 발제문 읽기만 하고 들고나가지 못해"29일 오후 3시, 대통령직인수위가 위치한 서울 삼청동 금융연수원에서 약 500미터 정도 떨어져 있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일단의 사람들이 속속 모이기 시작했다. 다음날 있을 공청회 토론자들이다. 이날 오전 인수위측으로부터 급하게 통보를 받고 모였다.
인수위측은 이날 모임과 관련 사전에 어떤 공식 발표도 한 바가 없다. 공청회를 하루 앞두고 주최측이 토론자들과 사전모임을 잡은 것 자체가 이례적이다.
"토론자와 발제자가 미리 만나 회의를 갖는다면 그 자체가 토론의 사전 검열", "군사독재 때나 할 수 있는 발상", "토론내용 자체를 '기획'하려는 것"(전교조) 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그래서인지, 모임 장소인 별관1층 제5협의실에 미리 도착해 있던 김영숙 대구교대 교수 등 토론자들은 명함을 건네며 인사를 하는 기자에게 "나중에 인사하자", "어떻게 알고 오셨느냐"며 마땅치 않은 표정을 지었다.
역시 토론자인 이경자 인간교육실현학부모연대 운영위원의 뒤를 이어 공청회 발제를 맡은 천세영 충남대 교수가 도착했다. 그는 인수위 사회교육문화분과 자문위원이기도 하다. 기자를 발견한 천세영 교수는 "여기는 공개되는 자리가 아닌데…"라며 기자에게 나가 줄 것을 요청했다. 비공개 모임이라는 뜻이다.
기자가 회의실을 나가는 도중에 임동원 청운중학교 교장과 마주쳤고, 이후에도 시간에 늦은 토론자들이 급하게 회의실로 들어갔다. 10명의 전체 토론자 중 개인 사정을 이유로 불참한 사람을 빼고 7-8명이 모인 셈이다.
회의실 앞에서 만난 김윤정 사회교육문화분과 정책연구위원은 "현재 7명 정도 왔고 바쁜 분들은 나중에 오실 것"이라며 "한 시간 동안 발제문을 강독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김윤정 연구위원은 "사전에 발제문을 기자들에게도 공개하느냐"는 질문에 "토론자들도 발제문만 읽고 들고 나가지는 못한다"고 답했다.
"아시지 않느냐. (토론자들에게) 이메일로 보내서 공개할 수가 없었다. 기자들이 너무 관심들을 가져서... 토론자 명단도 언론에 보도가 됐다는데, 해당 교수분들이 항의 전화를 하신다. 왜 알려줬느냐고... 기자들이 얼마나 전화를 하는지..."사전모임만 비공개가 아니라 발제문 자체가 비공개였다. 일반적인 공청회 절차에 따르면 사전에 공청회 참석자들에게 발제문을 보내주고, 그에 대한 토론 내용을 준비하도록 돼 있다. 결국 발제문 유출을 막기 위해 토론자들을 인수위쪽으로 불러들인 셈이다. 공청회를 앞두고 발제문에 대해 마치 '군사기밀'인양 철저한 보안을 유지하는 것 역시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인수위측은 토론자 명단 조차도 29일 오후에나 공개했다. 그 명단도 언론에 보도되자마자 곧바로 수정됐다. 인수위의 '영어 공교육 정상화' 방안에 대해 가장 앞장서 반대의견을 편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측 인사가 단 한 명도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교조가 "편파적 토론자 구성"이라고 즉각 반발하자, 당초 토론자 명단에 있던 교원단체총연합회 소속 이명균 선임 연구위원을 토론자 명단에서 삭제했다. 급한데로 '땜질'을 했지만 여전히 토론자 구성 기준에 대한 의문은 남는다.
인수위측 한 관계자는 "인터넷에서 영어교육과 관련된 전문가들을 찾아서 학계 절반, 교사 현장 절반으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반대 의견을 가진 패널이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에 대해선 "'고교 졸업 이후 영어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하겠다'는 인수위 캐치프레이즈에 공감하지 않은 분들을 어떻게 부르겠냐"고 잘라 말했다. 인수위 안에 대한 반대자는 애초부터 토론 대상이 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