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건건 충돌하는 미-러... 제2 냉전 오나

[심층진단] 불안한 미-러관계와 세계질서의 미래

등록 2008.01.30 16:51수정 2008.01.30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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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 MD에 대한 경고의 수위를 높여왔다. 오른쪽은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 MD에 대한 경고의 수위를 높여왔다. 오른쪽은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 로이터/연합뉴스

미국과 러시아 관계가 심상치 않다. 부시 행정부는 양국 간의 긴장이 별 것 아니라고 하고 있지만, 푸틴 행정부는 오히려 미국과의 갈등을 즐기는 양상이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미-러 관계가 냉전 해체 이후 최악의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고, 개선될 가능성도 높지 않다고 진단하고 있다. 또 다시 냉전의 망령이 지구촌을 배회하고 있는 것이다.

기실 냉전이 해체되고 미국 주도의 단극체제가 등장하면서 러시아는 국제정치 무대에서 뒷전에 밀리는 듯 했다.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로의 이행은 극심한 경제난을 수반했고, 국제정치의 여러 현안에서도 찬밥 신세로 전락했던 것이다.

이에 따라 21세기 세계질서를 전망하는데 러시아는 핵심 변수가 아니었다. 국제정치 전문가들은 21세기가 미국의 세기가 되거나, 미국-유럽연합-중국을 초강대국 그룹으로 하는 다극체제의 등장 가능성을 점쳤다. 냉전 시대 미국과 양극체제를 이뤘던 러시아는 낄 자리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전망을 비웃기라도 하듯, 푸틴의 러시아는 국제정치 무대의 전면에 복귀하고 있다. 막대한 오일 달러를 바탕으로 경제력, 군사력, 외교력을 배가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란, 미사일방어체제(MD), 나토의 확장, 코소보 및 그루지아 문제 등에 있어서 사사건건 미국과 충돌하고 있다.

이란, MD, 나토 확장, 코소보... 충돌 또 충돌 

부시 행정부는 미국과 러시아는 적대관계가 아니라며, 대테러전쟁, 북핵 문제 등에 있어서 양국은 긴밀히 공조하고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시야를 넓혀보면, 미국과 러시아가 얼마나 많은 지점에서 충돌하고 있는지를 잘 알 수 있다.

먼저 이란 핵문제이다. 러시아는 미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작년말에 이란 원자로에 핵연료를 제공했다. 또한 중국과 함께 미국 주도의 대이란 유엔 안보리 결의안에도 제동을 걸고 있다. 미국은 강력한 경제제재와 필요하다면 무력 사용도 가능한 결의안을 추구하고 있는 반면에, 러시아와 중국은 이러한 결의안이 사태만 악화시킬 것이라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코소보 독립 문제도 뜨거운 쟁점이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들은 코소보의 독립 노선을 지지하고 있는 반면에, 러시아는 코소보 독립이 세르비아의 무력 개입을 야기해 발칸 반도를 또 다시 전쟁터로 만들 우려가 크다며, 세르비아를 지지하고 있다.

특히 러시아는 미국이 코소보 독립을 공개적으로 지지하면, 러시아는 미국과 동맹관계에 있는 그루지야의 아브하즈 자치주의 분리독립을 지지하겠다고 경고하고 있다. 아브하즈 자치주가 분리 독립을 선언할 경우, 그루지야와 아브하즈 사이의 무력 충돌은 불가피해진다. 더구나 이 지역에는 러시아군이 주둔하고 있다.


미국이 추진하고 있는 동유럽 MD(Missile Defence: 미사일방어체제) 배치도 갈등 요인이다. 미국은 폴란드에 요격미사일을, 체코에 레이더 기지를 건설한다는 계획인데, 러시아는 자신의 뒷마당에 MD가 배치되는 것을 좌시할 수 없다며 강력히 반발해왔다. 이러한 와중에 폴란드의 새로운 정부는 MD 배치를 재고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러시아는 나토 특사에 대서방 강경파인 드미트리 로고진을 임명해, 나토의 확장을 저지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러시아, 미국 단극체제에 도전장 내다

이처럼 미-러 양국이 사사건건 충돌하면서 양국 관계는 냉전시대에 버금가는 갈등관계로 빠져들고 있다. 미국의 LA타임즈가 29일자 신문에서 "미국은 러시아와의 갈등을 봉합하는 반면에, 러시아는 미국과 동맹이 아닌 적대국이 되는 것을 더 편하게 느끼고 있다"고 진단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특히 일각에서는 미국과 러시아가 코소보와 그루지야 문제로 무력 충돌까지 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주목되는 것은 러시아 대전략이다. 옐친의 러시아는 시장경제와 민주주의 도입을 통해 서방세계와의 통합을 추구했다. 이는 21세기에도 미국 단극체제가 유지될 것이라는 전망을 낳게 한 주요 요인이었다. 그러나 극심한 경제난과 함께 국제 무대에서 냉대를 당하고 있다는 불만이 누적되면서 '푸틴의 러시아'는 국내적으로는 권위주의로, 국제적으로는 미국과의 대결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이렇게 방향을 바꾼 데에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으로 유가가 폭등하면서 러시아가 막대한 오일머니를 챙겨 물적 기반을 갖추게 된 것이 주효했다. 또 국제사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라크 침공을 강행하는 등 미국의 일방주의 외교노선에 대한 국제사회의 불만도 러시아의 부흥을 가능케 한 요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미국의 이라크 침공의 최대 수혜자는 러시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돈과 자신감을 갖게 된 러시아는 이제 미국 단극체제에 도전장을 내고 자신을 포함하는 다극체제를 지향하고 있다. 냉전 해체 이후 미국이 약해진 러시아의 위상을 이용해 유일 초강대국으로 행세했던 것처럼, 이제는 러시아가 약해진 미국의 위상을 틈타 초강대국으로 복귀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미러관계가 제2의 냉전으로 귀결될 것이라고 단정할 필요는 없다. 이미 사회주의냐, 자본주의냐의 체제 경쟁은 끝났기 때문이다. 또한 미국의 쇠퇴와 러시아의 부흥은 부시 행정부의 대외정책에서 기인하는 바가 크기 때문에, 부시 이후의 미국이 어떤 모습을 보이느냐에 따라 미-러관계가 예전처럼 복원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근본적인 긴장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단극체제를 유지하려고 하는 반면에, 러시아가 이에 파열음을 내면서 다극체제를 추구하려고 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러한 러시아의 대전략은 중국의 부상과 유럽통합의 가속화 등과 맞물려 상당한 파장을 낳을 전망이다.

공교롭게도 이러한 세계질서의 근본적인 재편기에 한국의 새로운 정부는 '한미동맹 강화'와 '한미일 공조체제 강화'를 대외정책의 핵심 목표로 내세우고 있다. 이러한 정책 목표가 혹시 '21세기도 미국의 세기가 될 것'이라는 주관적인 믿음에서 나온 것은 아닌지 반문해봐야 할 시점이다.
#미러관계 #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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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북한, 평화, 통일, 군축, 북한인권, 비핵화와 평화체제, 국제문제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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