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호는 형의 설명을 경청했다. 형은 학교 교사들에게서 들을 수 없었던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형은 제국주의의 어원부터 설명하기 시작했다.
제호는, 제국주의의 어원인 임페리엄은 원래 ‘법에 의한 명령’을 뜻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로마가 지중해의 패권을 장악한 이후에는 ‘로마에 의한 타 민족 지배’라는 뜻을 새로 가졌다. 하지만 이 말이 세계화된 것은 불과 40년 전 유럽에서라고 했다. 1870년경 영국의 어느 신문은 나폴레옹의 몰락을 보도하면서 나폴레옹의 제2 제정을 가리켜 처음으로 제국주의라는 용어로 칭했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제국주의는 전제정치와 같은 개념으로 쓰였었지. 그러나 요즈음의 제국주의는 많이 다른 거란다.”
제호는 멀리 있는 한강과 가까운 아래에 있는 이태원 쪽을 한 번 내려다보더니, 작심한 듯 강의식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필호는 필기도구가 없는 것이 조금 아쉬울 정도였다.
제호는 제국주의를 민족주의, 자유주의와 비교하면서 설명했다. 제국주의는 다른 민족을 침략한다는 점에서 민족주의와 대립되고, 전제정치라는 점에서 자유주의와 대립된다. 그런데 유럽의 열강과 일본은, 자국민에게는 자유를 누리게 하고 민족주의를 강화하면서 다른 민족에게는 그 두 가지를 모두 억압하는데, 이 이중성이 곧 제국주의의 실상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제국주의란 ‘주의’라고도 할 수 없었다. 굳이 말로 한다면, 강도 근성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자연과학의 발달을 산업혁명으로 연결시킨 유럽 국가들은 예전에 없던 생산의 과잉 문제에 부닥치게 되었다. 제품이 팔리지 않는다면 생산자는 고스란히 손해를 떠안게 될 것은 불문가지였다. 그래서 그들은 새로운 시장을 찾게 되었는데, 시장을 찾고 보니, 그곳에는 값싼 원료와 노동력까지 있는 거였다. 일석이조가 아닐 수 없었다.
그래서 개척이라는 미명 하에, 군사력이 약하고 빼먹을 게 많은 나라 순서로 침략하기 시작한 것이 식민지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식민지를 갖고 있는 나라를 제국이라고 한다는 거였다. 게다가 그곳을 점령하고 보니 노예와 여자까지 얻을 수 있게 되어서 그야말로 금상첨화가 아닐 수 없었다.
필호는 제호의 설명을 금세 이해했다. 그는 잊지 않기 위해 세 단어를 꼭 기억하기로 했다. 필호의 기억법은 좀 특이했다. 그는 불문가지와 일석이조와 금상첨화를 연결하여 기억하면 된다고 마음먹고 있었다.
산업혁명과 자본주위 체제 확립에 성공한 영국은 19세기 중엽 이미 자기네 영토보다 75배를 넘는 50개 이상의 식민지를 경영하고 있었다. 그들은 군사력을 앞세워 세계 전역에 걸쳐 통상권을 지배하면서 영토를 확장해 나갔다. 그들은 ‘대영제국의 영토에는 해가 지지 않는다’는 말을 하고는 했다.
더욱 황당한 말은 ‘셰익스피어를 인도와 바꾸지 않겠다’였다. 물론 이 말은 그들이 얼마나 인도를 황홀히 여겼는지를 역설적으로 짐작케 하는 바가 있었다. 하지만 이 말에는 인도를 자신의 소유물로 인식하는 그들의 강도 근성이 나타나 있었다.
이런 영국도 19세기 후반에 들면서 독일, 미국, 프랑스 등의 도전을 받게 되었다. 유럽과 미 대륙은 바야흐로 자본주의 강국끼리의 각축장이 되어 가고 있었다. 게다가 1870년대 초부터 시작된 유럽의 경제 불황은 이런 경쟁을 더욱 첨예하게 만들었다. 제국주의의 종주국 영국은 광범위한 식민지의 결속을 다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수에즈 운하 주를 대량으로 사들이고 인도 지배를 강화했으며 영연방 자치령을 본국과 결합하려 하였다. 한편 불황이 장기화되자 유럽의 제국들은 더 많은 식민지를 얻으려 하는 과정에서 빈번한 분쟁과 충돌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특히 1880년부터 30여 년 동안 아프리카를 나눠 먹는 과정에서, 외교적 대립과 군사적 충돌은 끊임없이 발생했다. 1898년 영국의 장군이 지휘하는 군대와 프랑스의 대령이 통솔하는 군대는 수단의 나일 계곡에 있는 파쇼다에서 일촉즉발로 대치하게 되었다. 이것은 영국의 종단정책과 프랑스의 횡단정책이 교차점에서 충돌한 사건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금세 야합하기로 합의했다. 영국은 이집트를, 프랑스는 모로코를 각각 먹는다는 것으로 묵계가 이루어졌다. 그러자 이번에는 독일이 모로코에서 프랑스에 시비를 걸었다. 추악한 이전투구였다. 오스트리아와 세르비아의 지역 전쟁도 결국 식민지 분할 전쟁이었다. 남의 나라, 남의 영토를 놓고, 선점한 제국과 우리에게 부스러기라도 떼어 달라는 후발 제국이 벌이는 분쟁과 대립은 더러운 아귀다툼이라고밖에 달리 표현할 말이 없었다.
필호는 다시 이전투구와 아귀다툼이란 말을 기억하기로 했다. 모두가 알고 있듯이, 제국들은 식민지 경영의 명분으로, 대상국의 질서 유지와 문명 혜택을 내세웠다. 그러나 이것은 약탈과 학살로 나타났다. 하나의 예를 들자면 벨기에의 군인은 고무 채집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는 콩고 주민의 팔 다리를 잘랐다. 이런 일들은 식민지 침략과 지배 과정에서 어디서든 예외 없이 빈번히 나타났다.
영국은 금과 다이아몬드가 새로이 발견된 땅을 빼앗으려고 보어전쟁을 일으켰다. 그런데 보어인 게릴라들은 무섭게 저항하며 영국군에게 적지 않은 타격을 입혔다. 보어인을 우습게 안 대영제국의 자존심을 할퀸 것이었다.
그러자 영국은 보어인 섬멸 작전을 무자비하게 펼쳤다. 영국은 인구 50만, 병력 7만인 나라에 45만 명의 정규군을 투입하여 모든 전답과 가옥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비전투원이 대다수인 보어인 21만 명을 집단 수용소에 넣었다. 시설과 대우가 최악이었던 이 수용소에서는 불과 열 달이 안 되어 2만 구의 시체가 처리되었다.
이제 제국주의의 배후에는 과잉 생산자보다 더 무서운 것들이 그림자를 치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들은 거대 금융 자본가와 무기 산업자들이었다. 전자는 금융 자본을 산업 자본으로 손쉽게 전환하기 위하여, 후자는 매출의 지속과 확대를 위하여 극우주의자들과 결탁, 유착되어 가고 있었다.
현재 영국과 프랑스가 어림잡아 각각 20개국 전후, 독일과 스페인과 러시아가 10여 개국, 미국, 네널란드, 벨기에가 5개국 정도의 식민지를 차지했고 그 밖에 이탈리아, 포르투칼, 노르웨이, 덴마크, 그리고 일본 등이 제국주의 열강에 합세하고 있었다. 특이하게도 일본은 동양에서 유일한 제국주의 국가였다.
“인류는 머지않아 대 재앙을 맞이할 것이다.”
제호가 제국주의 강의의 맺음말로 한 것이었다. 필호의 얼굴에는 감동의 빛이 돌았다.
“형님은 언제 그렇게 공부를 많이 하셨습니까?”
제호는 필호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동문서답으로 대꾸했다.
“저기 이태원에 내려가 보자.”
목멱산 남쪽 이태원의 풍광은 아름다웠다. 골짜기가 깊고 수목도 풍성했다. 형제는 가벼워진 봇짐을 어깨에 메고 나란히 산길을 걸어 내려갔다. 소쩍새 울음소리가 들렸다. 까마귀 떼가 낮은 하늘에서 맴돌고 있었다. 그 두 새들의 음향은 아주 이상한 불협화음을 내고 있었다.
“필호야!”
“예.”
“어머님 잘 보살펴야 한다.”
제호는 어린 동생에게 어머니를 맡기는 자신이 안타까웠다.
“그리고 필호야.”
“예.”
“이런 세상에 살려면 책만 읽어서는 안 된다.”
“아, 예.”
“건성으로 대답하지 마라.”
“예.”
“스낄, 즉 기술을 하나는 가져야 한다.”
필호는 형의 말을 알아들었다.
그들은 이태원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태(梨泰)원은 원래 여행자들의 숙소인 원(阮)이 있던 곳이었다. 홍제원, 보제원, 전관원 등과 함께, 한양에 출입하는 관리나 여행객들에게 숙식을 제공하던 장소였다. 이태원이란 이름은 배나무가 많아서 지어진 것이었다.
임진왜란 당시 한양까지 들어온 왜적은 조선의 부녀자들을 수도 없이 겁탈했다. 조선의 여인들은 대부분 겁탈 전후에 자결하거나 대항하다 죽었다. 이태원에 운종사라는 비구니 절이 있었다. 왜군은 이 절에 머물면서 비구니들에게 밥과 빨래를 시켰다. 그리고는 비구니들을 욕보였다. 많은 비구니들이 절벽 아래로 몸을 던지거나 우물에 빠져 죽었다.
왜적이 물러간 후 살아남은 몇몇의 비구니들은 배가 불러 왔다. 한양 성중에서도 왜군의 아이를 낳는 부녀자가 동네마다 있었다. 조정에서는 그들을 위해 이 운종사에 보육원을 만들어 주었다. 그래서 다른 씨를 배었다는 뜻의 이태(異胎)원이란 말도 생겨났다고 했다. 또한 임진왜란 때 포로가 되어 귀화한 일본인들이 이곳에 자리 잡고 살기도 했다. 일제는 1906년 이곳에 군대를 주둔시키면서 조선 민간인들을 내쫓고 있는 중이었다.
“아무튼 이태원은 외국인과 관련이 많은 곳이지?”
“그렇군요.”
“필호야.”
“예.”
“너 사귀고 있는 숙녀가 있지?”
“앗, 알고 계셨군요?”
“하는 짓을 보면 안다.”
“아, 예.”
“여자는 누구나 한 번 이상은 남자에게 시련을 준다는 것을 명심하고 현명하게 대처해야 한다.”
“아직 그럴 단계까지는 못 이르렀습니다.”
“단계라고? 남녀는 좋아서 한 번 만나면 다 된 것이다.”
“아, 예.”
“배신하기 전까지는.”
“배신이라고 했습니까?”
“알면서 묻지 마라.”
“아, 예.”
제호는 필호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그리고 자신이 섰을 때 형을 만나러 오너라.”
“꼭 가겠습니다.”
형제가 약수 고개를 넘어 동대문이 보이게 되었을 무렵에는 해가 기울고 있었다. 나무 그림자가 길게 늘어져 작은 길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날은 생각보다 빨리 어두워져 갔다. 뜸부기 울음이 들렸다. 조금 더 걸으니 발밑은 온통 풀벌레 소리로 가득해졌다. 형제는 풀벌레 소리를 발로 차면서 개운한 저녁 공기의 맛을 느끼며 걸었다. 유다르게 반짝이는 큰 별 하나가 그들의 이마 위에서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일주일 후 형은 떠나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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