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누구 보고 '역주행'이라 하는가

[고태진 칼럼] "무조건 따르라"는 이명박-이경숙 종교적 리더십

등록 2008.02.01 08:43수정 2008.02.01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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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11월 한반도대운하연구회 주최 심포지움에서 이명박 후보가 '한반도대운하 국운융성의 길'이라고 적힌 대형 현수막이 내걸린 행사장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06년 11월 한반도대운하연구회 주최 심포지움에서 이명박 후보가 '한반도대운하 국운융성의 길'이라고 적힌 대형 현수막이 내걸린 행사장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권우성
2006년 11월 한반도대운하연구회 주최 심포지움에서 이명박 후보가 '한반도대운하 국운융성의 길'이라고 적힌 대형 현수막이 내걸린 행사장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권우성
현 시점에서 이명박 차기 정부에서 가장 중점적인 정책을 꼽으라면 아마도 한반도 대운하와 영어 교육을 들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두 정책을 실현시켜 나가려는 이 당선인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모습을 보면 공통점이 있다. 어떻게 보면 신앙에 가까울 정도로 확신을 가지고 반대 의견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모습이 그것이다.

 

한반도 대운하는 1987년 노태우 대통령 당선인이 상공회의소를 방문한 자리에서 이명박 당선인이 처음 제안한 것으로 되어있다. 그 후 1996년 신한국당 의원 시절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경부 운하를 제안하기도 했으며, 2002년에도 대선 공약으로 내놓자고 주장했다고 한다. '대운하를 만들어야 국운이 융성해진다'는 생각은 한 마디로 역사가 오래된 이명박 당선인 신념의 결정판인 것이다.

 

현재 한반도 대운하에 대해서는 많은 반대와 비판이 있으나, 결국 불도저라는 이명박 후보의 별명에 걸맞게 삽질을 하고야 말 것이라는 예측이 많다. 20년 전에 구상했던 국책 사업을 지금까지 신념으로 간직하고 마침내 대통령에 당선되고 난 뒤 밀어붙이는 그의 일관성과 추진력이 걱정에 앞서 일단 놀랍다.

 

대운하와 영어 올인, 두 개의 국운 융성론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이경숙 위원장이 30일 오전 서울 삼청동 인수위 대회의실에서 열린 '영어공교육 완성을 위한 실천방안 공청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이경숙 위원장이 30일 오전 서울 삼청동 인수위 대회의실에서 열린 '영어공교육 완성을 위한 실천방안 공청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이경숙 위원장이 30일 오전 서울 삼청동 인수위 대회의실에서 열린 '영어공교육 완성을 위한 실천방안 공청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한편, 어마어마한 의욕을 담은 '영어교육 로드맵'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이경숙 위원장의 신념이 많이 작용하는 것 같다. 흡사 인수위가 아니라 '국가영어위원회'가 아닐까 착각할 정도다. 이경숙 위원장은 "10년 뒤 아시아에서 가장 영어를 잘하는 나라가 되길 간절히 바란다"며 "영어교육은 국가경쟁력과도 직결된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한반도 대운하와 함께 또 다른 '국운 융성론'인 셈이다.

 

그런데 두 가지 정책은 나라의 장래를 결정하는 큰 일인데도, 반대나 비판의 의견을 '반대를 위한 반대', '역주행'이라고 일축하기를 서슴지 않는다. 이 당선인의 측근이자 대운하TF 상임고문인 이재오 의원은 1월 초 언론 인터뷰에서 "대운하는 할 것이냐 안 할 것이냐는 문제가 아니다, 이 당선인의 의지가 확고하고 공약에 대해 국민들이 이미 선택한 것이니까 바로 시작하는 것"이라고 대운하 추진을 기정 사실화한 적이 있다.

 

그런데 '영어교육 로드맵'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비판적인 사람들을 배제하고 찬성 측 일색인 패널만 모여서 공청회라는 것을 형식적으로 하고 난 뒤에 이경숙 인수위원장은 "내용도 모르고 양극화가 심화된다든지 기러기 아빠가 양산된다는 비판은 터무니없다"며 "찬반 논란은 끝이고, 이제는 여론을 수렴하는 과정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도무지 새로운 정부를 이끌고 갈 이 사람들의 이런 터무니없을 만큼 자기 확신적이며 일방적인 태도는 어디에서 연유한 것일까? 그것은 혹시 오랜 종교적, 신앙적인 믿음이 내면화되어 정치적·사회적 태도에까지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종교에는 토론과 비판과 회의가 없다. 오로지 믿어야 한다. '대운하면 국운 융성이요, 영어 올인이면 선진국'인 셈이다.

 

큰 재앙 초래할 수 있는 "믿고 따르라"식 독선적 태도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의 인맥을 이야기할 때 소망교회 인맥이라는 것이 등장한다. 이명박 당선인은 그 교회의 장로이며, 이경숙 인수위원장은 권사라고 한다. 알다시피 이명박 당선인은 예전 서울시장 시절에 서울시를 하나님께 봉헌하겠다는 발언으로 구설에 오른 적이 있을 만큼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며, 이경숙 위원장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차기 정부의 주요 인물 중에 그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개인의 종교를 문제 삼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국가의 장래에 중요한 사안을 "우리 신을 믿고 우리 말에 따르라"는 식의 기독교적 방식으로 밀어붙인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명박 당선인이나 이경숙 위원장은 선지자도 아니고 성직자도 아니다. 오래된 개인의 경험이나 신념에서 비롯된 국가의 정책을 신앙의 방식을 떠올릴 정도로 독선적으로 추진해나가는 것은 국가의 장래에 큰 재앙이 될 수 있다. 

 

더구나 '영어교육 로드맵'은 선거 공약으로 꾸준히 논란이 되어왔던 한반도 대운하와는 달리 교육이나 영어전문가도 없는 인수위에서 자본 투입에 따른 산출이라는 경제적 논리로 급조된 감이 있다. 영어 광풍을 불러일으킬 위험이 있는 이 정책은 흡사 우리나라를 '영어 신'에게 봉헌하여 선진국을 얻고자하는 것과 같이 터무니없다.

2008.02.01 08:43ⓒ 2008 OhmyNews
#이명박 #이경숙 #국운융성 #영어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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