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호 아저씨, 잘가~ 다음에 또 봐"

아이들과 치즈만들기 체험장을 다녀와서

등록 2008.02.05 11:00수정 2008.02.05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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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호 아저씨, 잘 가~ 다음에 또 봐."


집으로 돌아가는 횡단보도 앞에서 아이들과 신호를 기다리는데 초등학교 다니는 여자친구(?)가 내게 작별의 인사를 건넨다.

진주여성회에서 마침 전북 임실에서 열리는 치즈만들기 체험 행사를 주관하기에 얼른 신청했다. 아들 3명, 조카 2명과 함께. 아내는 토요일 근무로 함께 가지 못해 아쉬웠지만 그것은 관광버스에 오르는 순간, 잊었다.

2시간 넘게 내달려 도착한 전북 임실. 치즈 만들기에 관한 설명과 숙성이라는 시간마저 단축 시키며 치즈를 이용해 만드는 피자까지… 체험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오븐에서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피자는 이제껏 먹어본 피자 중에 제일 맛있는 것이었다.

배는 부르고 이제 밖에서 진행하는 소달구지며 경운기 타기 체험이 기다리고 있었다. 물론 재미있었다. 경운기를 타고 시골 동네 한 바퀴를 돌 때 4살난 막내와 같이 탔다. 승용차의 안락함은 아니지만 덜컹,덜컹 개구리처럼 위로 살포시 어깨를 들썩이듯 움직이는 청량감이 좋다.

경운기의 배출가스를 가지고도 즐겁게 장난치며 놀았다. 요즘 막내가 즐겨 부르는 만화영화 주제가 <파워레인저 매직포스>의 첫 구절인 "파 파 파 파 파 파워레인저" 부분을 엄청 강조하며 침 튀기며 불렀다. 그랬더니 침 사례를 받은 초등학교 꼬마친구들이 까르르 웃는다.


한 꼬마친구가 "아저씨는 어린이약을 먹고 왔어요?"라고 내게 묻는다. 씨익 웃었다. 항상 어른들은, 부모들은 좋은 말만 하고 근엄한 표정을 짓는 것으로 이미지가 굳어버렸나. 비록 지금 세월의 흔적으로 너보다 키도 크고 몸도 무겁고 돈을 벌기 위해 직장을 다니지만 나 역시 슈퍼맨처럼 망토를 걸치고 높은 언덕을 내달리며 두 주먹을 하늘로 치켜들고 지구의 정의를 지켰는데….

송아지에게 젖을 먹이는 체험도 있었지만 그 옆 썰매장에 눈길이 먼저 간다. 풀밭을 내달리는 비록 10여m 남짓의 완만한 언덕에 있어 한 눈에 봐도 근사한 눈썰매장에 비해 초라해 보였다. 그렇다고 내 가슴속 장난기를 멈출 수 없었다. 막내를 앞에 태우고 내 어릴 적 비닐포대를 대신해 나온 플라스틱으로 만든 썰매를 타고 신나게 내려왔다. 내려오면서 "야~호"하며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나가신다…", "이랴, 이랴"


내 목소리에 꼬마 친구들도 다들 놀라는 표정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나는 이미 고함지르며 풀썰매 타는 재미에 빠져버린 것을. 막내가 언덕을 올라가길 힘겨워 하기에 올라오는 틈을 타서 혼자 타기도 여러 번. 출발선 옆에 앉은 꼬마친구들과 누가 더 멀리 가는지, 누가 더 큰소리로 야호를 외치는지 경주도 했다.

날이 춥다며 관광버스에 일찍이 들어간 어머니들은 예정시간보다 빨리 가길 바라는 눈치다. 하지만 30분을 앞당겨 가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다. 이제 한껏 달아오르는 즐거움을 뒤로 하기엔 내 살아온 서른일곱 해가 아쉬움으로 남을 듯했기 때문이다.

아이들보다 더 즐겁게 고함치며 풀썰매를 타는 모습에 아이들은 내 고함의 메아리마냥 야호를 합창한다. 풀썰매의 경쾌함도, 야호의 고함 소리도 시원하다. 함께 한 엄마들의 만류로 단체사진을 끝으로 썰매타기를 멈췄다. 제사보다 잿밥에 더 관심이 쏠린 사람처럼 체험이 뭐 별건가 즐겁게 놀면 되지.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이들은 피곤한지 출발하자 잠이 든다. 엄마들은 요즘 유행한다는 <태왕사신기>며 <이산>이라는 드라마를 위성으로 차례 차례 불러 보고 있다. 도착해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가는 길에 함께 시합했던 초등학교 다니는 꼬마 여자 친구가 내게 말을 건넨다

"야호 아저씨, 잘 가 다음에 또 봐"

집에 돌아오니 아내가 묻는다.

"당신 목소리가 왜 그렇게 쉬었어?"
#풀썰매 #김종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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