횃불처럼 당당한 석탑, 내 안을 달군다

경남 진주 효자리 묘엄사지 3층석탑

등록 2018.02.12 11:13수정 2018.02.12 11:16
0
원고료로 응원
a

경남 진주시 수곡면 효자리에 있는 고려 시대 ‘묘엄사지 3층 석탑’ ⓒ 김종신


바람이 차다 못해 살을 엔다. 잠바 뒤편에 있는 모자로 머리를 푹 덮어도 차가운 바람을 제대로 막지 못한다. 그런 추위에는 2월 5일, 경남 진주시 수곡면으로 떠났다. 가는 동안 만난 진양호 덕분에 마음은 차분해졌다. 지나온 일상들을 가는 동안 곱게 접어두었다.


a

경남 진주시 수곡면 효산 마을 경로당에는 어르신들과 함께 온 보행보조차들이 나란히 서 있다. ⓒ 김종신


수곡면사무소 가기 전 요산마을이 나온다. '진주 묘엄사지 삼층석탑(晋州妙嚴寺址三層石塔)' 이정표를 보고 차를 세웠다. 마을 경로당 앞에는 어르신들이 끌고 온 보행보조차들이 나란히 서 있다.



a

경남 진주시 수곡면 효산마을 주택 사이로 우뚝 솟은 ‘묘엄사지 3층 석탑’ ⓒ 김종신


300여m를 들어가면 10여 채의 주택 사이로 우뚝 솟은 탑이 보인다. 탑 앞 주택 처마에 놓인 메주가 햇살에 익어간다. 석탑 주위는 깔끔하게 정비가 잘 되어 차를 세우기 좋다. 보물 제379호인 석탑은 고려 시대 화강암으로 만든 높이 4.6m의 삼층 석탑이다. 탑 주위에 흩어져 있던 주춧돌과 석주, 부도의 덮개돌로 추정된 팔각형의 석재가 시간의 흔적을 품은 채 말이 없다.


a

경남 진주시 수곡면 효자리에 있는 고려 시대 ‘묘엄사지 3층 석탑’ ⓒ 김종신


안내판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상층 기단 중석은 모두 4매의 판석으로 되어 있고 우주와 탱주(우주와 우주 사이의 기둥, 撑柱)가 조각되어 있다. 탑신부는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다른 돌로, 몸돌에는 층마다 우주가 모각되어 있으며 초층의 몸돌에는 방광문내에 창살이 있는 두 짝의 문비(門扉)와 고리가 양각되어 있다. 지붕돌은 덮개돌이 두꺼운 편이며 처마 선은 위아래가 모두 수평을 이루나 네 귀에서 완만하게 솟아 있으며, 낙수면은 급한 경사를 이루고 있다. 현재 탑의 상륜부는 남아 있지 않다."

a

진주 ‘묘엄사지 3층 석탑’ 1층에는 빛바랜 염주가 놓여 있다. 고려 사람들의 간절한 바람이 시간을 뛰넘어 우리에게 전해지는 기분이다. ⓒ 김종신


안내판을 읽고 난 뒤 찬찬히 탑을 바라본다. 탑 1층에는 빛바랜 염주가 놓여 있다. 고려 사람들의 간절한 바람이 시간을 뛰넘어 우리에게 전해지는 기분이다. 나도 모르게 슬며시 두 손을 모으고 합장한다.

a

진주 묘엄사지 3층 석탑 주위에 있는 주춧돌과 석주, 부도의 덮개돌로 추정된 팔각형의 석재. ⓒ 김종신


'대체로 3층 이상의 다층이 많아진다. 지붕돌은 얇아지고 낙수면의 경사는 완만해지고, 지붕돌의 모서리끝이 날카롭게 치켜올라가는 현상이 나타난다'는 고려 시대 석탑 특징을 떠올려 요모조모 살핀다.



a

경남 진주시 수곡면 효자리에 있는 고려 시대 ‘묘엄사지 3층 석탑’ 탑신부 ⓒ 김종신


석탑의 중석 모서리 기둥(隅柱, 우주)에는 괴임이 있고 지붕(옥개석) 위에 빗물이 흘러내리도록 경사진 면(낙수면)을 요리조리 살핀다. 기단(基壇) 맨 밑바닥은 파묻혀 정확한 모습을 알 수 없다.


a

경남 진주시 수곡면 효자리에 있는 고려 시대 ‘묘엄사지 3층 석탑’에 새겨진 문비(門扉) ⓒ 김종신


2층 기단 위에 세워진 삼층석탑 중 1층 서쪽에는 두 짝의 문비와 고리가 돋을새김(陽刻, 양각)되어 있다. 문비(門扉)는 끼워서 여닫게 된 문짝을 가리키는데 석탑의 규모가 작아지면서 탑 속에 사리장치를 봉안하고 있다는 표시로, 실제 문짝 대신 상징적으로 몸돌에 문비 장식을 새기게 된 것이라 한다. 돋을새김된 문을 열고 안을 들여다보고 싶어졌다.


a

경남 진주시 수곡면 효자리에 있는 고려 시대 ‘묘엄사지 3층 석탑’은 하늘을 향해 날아갈 로켓처럼 당당하다. ⓒ 김종신


올해는 고려 건국 1100년이 되는 해다. 지나간 시간이 색다른 풍경으로 '고였던 마음'을 흐르게 한다. 묵묵히 잘 견뎌온 석탑 위로 햇살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석탑 앞에 서면 깊은 시간이 내 마음의 문을 두드린다.


a

경남 진주시 수곡면 효자리에 있는 고려 시대 ‘묘엄사지 3층 석탑’을 아래에서 바라보면 파란 하늘을 향한 횃불을 닮았다. 추위를 몰아간다. 내 안을 뜨겁게 달군다. ⓒ 김종신


하늘을 향해 날아갈 로켓처럼 당당하다. 아래에서 바라보는 석탑은 파란 하늘을 향한 횃불을 닮았다. 추위를 몰아간다. 내 안을 뜨겁게 달군다. 덩달아 '내 안'의 무언가도 꿈틀댄다. 머물다 떠나는 구름이 탑 위에 걸쳤다. 쉬었다 움직이는 길손처럼 한참을 그대로 멈췄다 간다.
덧붙이는 글 경상남도 인터넷뉴스 <경남이야기>, 진주지역 독립언론 <단디뉴스>, <해찬솔일기>에도 실렸습니다.
#묘엄사지삼층석탑 #고려 석탑 #요산마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캐나다서 본 한국어 마스크 봉투... "수치스럽다"
  2. 2 황석영 작가 "윤 대통령, 차라리 빨리 하야해야"
  3. 3 300만명이 매달 '월급 20만원'을 도둑맞고 있습니다
  4. 4 '25만원 지원' 효과? 이 나라에서 이미 효과가 검증되었다
  5. 5 샌디에이고에 부는 'K-아줌마' 돌풍, 심상치 않네
연도별 콘텐츠 보기